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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개교 120주년 자전거 국토종주팀 60명과 승명호 교우회장, 타이거바이크(타바) 교우들이 함께하는 라이딩 행사가 4/27(일) 개최되었다.이날 아침7시 고양에서 춘천까지 이동후 청평에 도착한 고양팀과 4월22일 부산을 출발하여 5박6일간의 라이딩을 진행해온 81학번 팀들이 함께 참가한 라이딩은 11시30분 청평을 출발하여 12시 20분 동화 컬쳐빌리지에 도착하였다. 이후 14시 30분까지 문정란 전 타바 회장(간호 83, 현 간호대 교우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오찬행사에서는 승명호교우회장의 격려사와 타바 정기현 회장(전자88), 정성훈 명예회장(원예87)의 답례사가 이어진 가운데1) 승명호 교우회장이 제주도와 낙동강에서 각각 라이딩중인 70년대, 82학번 연합팀과 KUBT(재학생 자전거 동아리)팀에 화상전화를 통한 격려 이벤트2) 한윤상 교우회 수석부회장의 국토종주 라이딩 중간 보고(4.27 현재 국토종주 라이딩 계획의 80% 완료)3) 81종주단(단장 농학 81 임광수)의 교우회장께 단복 증정4) 오현주(독문83), 김혜연(가교88), 송현정(간호97) 교우로 구성된 줌바댄스팀의 여흥5) 한창환 교우(사회81)의 큰붓 서예시연과 붓글씨 작품을 교우회에 기증에 이어 참석자들은 교가, 교호를 힘차게 외치며 행사를 마무리하였다.한편 이번 국토종주라이딩은 4월18일에 모교에서 출정식을 가졌고, 연인원 150여명이 참여하여 전국 주요자전거길 2,025Km를 주행하는 대장정으로, 단순한 라이딩을 넘어 모교의 뜻깊은 120주년을 기념하고 지역교우회를 함께 방문하는 의미있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며, 오는 5월5일 개교기념식날 모교 중앙광장에서 국토종주 라이딩 참여교우들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는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20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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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교우회 의료봉사회(회장 이향애 의학65, 단장 최경숙 의학 68)는 4월 19일(토) 14:00~18:00간 양천구 소재 신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 취약계층 60여명을 대상으로 제138차 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이날 환자들은 내과, 가정의학과, 척추신경외과,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및 초음파검사, 심전도검사, 각종혈액검사, 흉부 X-RAY 결핵검사, 골밀도검사 등 검진 및 투약과 영양수액 등을 제공받았다.한편 이날 행사에서 교우회 봉사회 의료진과 사회봉사단 교우 외에 고대 안암/구로병원 전현직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방사선사등 40여명이 참여하였다. 다음 제139차 교우회 의료봉사는 오는 5월 17일 공군 오폭사고로 피해를 입은 포천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 예정이다.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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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4일 81학번 입학 40주년 돌벤치 제막식에서 한창환 교우가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를 일필휘지 하고 있다. 서예가 한창환(사회81) 교우 인터뷰세종학당 등지에서 한글 붓글씨 퍼포먼스 펼치며과학 철학 미학적으로 탁월한 한글 우수성 알리러 갑니다 한글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자동차 세계여행을 떠나는 교우가 있다. 세계 곳곳 한글학교 세종학당 등지에서 한글 붓글씨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외국인들에게 과학적 철학적 미학적으로 탁월한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한창환(사회81)교우가 그 주인공이다.8월 초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하는 53개국, 약 7만 km, 13개월의 대장정이다.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와 중동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되돌아 온다. 그는 대학3학년이던 1988년 지도와 배낭만 들고 유럽의 덴마크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3,000 km의 거리를 90일간에 걸쳐 도보로 여행을 하며 고대인이 패기를 널리 알렸던 인물이다. 국내 최초였다. 당시 유럽도보종단기가 스포츠서울에 상당기간 연재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지금 그는 서예가, 붓글씨퍼포먼스작가, 캘리그래퍼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모교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는 5월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대학생이던 한창환교우의 유럽도보종단기가 연재를 시작한 1988년 스포츠서울 지면.-자동차 세계여행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한글 서예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인류의 문화유산임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훈민정음은 표음문자이자 자질문자로 그 우수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15세기까지의 자연철학과 동양사상을 관통하는 요소들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평등과 평화라는 핵심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한글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자 공존과 화합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K팝이나 한류가 가져온 효과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글의 철학적 가치까지 깊이 있게 접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에 저는 붓글씨 퍼포먼스를 통해 한글의 미학과 철학을 직접 소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습니다. 붓을 들고 종이에 먹을 내리긋는 순간,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닌 하나의 예술이 됩니다. 한글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문화의 전령사인 세계 곳곳의 세종학당을 비롯해서 한국문화원, 한국교육원, 한국학이 개설되어있는 대학교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한글교육 관련한 곳을 방문하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현지 학생들과 함께하는 붓글씨 체험을 통해 한글의 철학과 미학을 직접 전달하고자 합니다.”2024년 한글날 연세대 한국어학당 외국인백일장에서 외국학생 한글이름 써주기 퍼포먼스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한창환교우. -그동안 추구해왔던 서예와 붓글씨 퍼포먼스 작품의 주제는 뭔가요.“제 작품의 핵심 주제는 생명평화입니다. 평화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입니다. 서예 퍼포먼스의 시작도 평화였습니다. DMZ 239km 세계평화유산 및 평화순례길 만들기를 기원하는 작업과 세계평화교육페스티벌, 유엔NGO평화포럼 외 한강생명문화제, 지구가 먼저다, 평창동계올림픽 행사 등 서예작품을 포함해 3만 여점이 있습니다. 모교 붓글씨 퍼포먼스 행사로는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추모문화제, 공대 60주년 기념식, 고우체육회 체육인의 날, 81학번 입학40주년 돌벤치 제막식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한글 싣고 자동차 세계일주는 한글 서예퍼포먼스를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첫 번째 시도입니다. 이 여행 경험을 통해 저 뿐만 아니라 한글을 사랑하는 여러 문화예술인이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작은 역할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한글 속에 담겨있는 평화철학을 기반으로 이를 작품화하는데 정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자동차 여행을 선택한 이유와 여정은.“서예와 붓글씨 퍼포먼스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여러 곳을 방문하기 때문에 롤한지, 화선지, 붓, 먹물 등 족히 100kg가 넘는 물품을 효율적으로 운반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동이 편리한 자동차 여행이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한글 싣고 자동차 세계일주’ 여정은 동해에서 러시아로 가는 선박에 차를 선적하면서 시작됩니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의 출발입니다. 총 22코스 중 첫 코스는 러시아 연해주입니다. 이곳에서 1937년 고려인 18만명이 강제 이주를 당했던 경로를 따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로 향합니다. 다시 실크로드 스탄5개국을 돌아 이란을 경유하고 코카서스3국을 거쳐 튀르키예 들어갑니다. 동서양을 잇는 길목인 이스탄불을 지나면서 동유럽, 발칸3국, 북유럽, 서유럽을 돌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다다릅니다. 여기에서 페리를 이용 튀니지로 들어가면서 북아프리카3국 마그레브 지역을 횡단합니다.모로코에서 스페인을 통과해 유럽을 가로질러 파리를 경유합니다. 이곳 파리에서는 유네스코를 방문하여 ‘세계평화유산’을 위한 서예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후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의 경로를 지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몽골 횡단 후 출발지였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면 여정은 종료됩니다. 총 53개국을 경유하며 약 70,000km를 주행합니다. 여행기간은 약 13개월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한글 서예와 붓글씨 퍼포먼스의 의미를 설명한다면.“‘한글 싣고 자동차 세계일주’의 슬러건은 ‘한글사랑, 평화사랑’입니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컨텐츠가 필요로 합니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문자입니다. 한글 속에 담긴 철학를 더해 보다 심도 깊은 내용으로 전달하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학생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학은 물론 한글의 글꼴과 서예,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높습니다. 글씨를 잘 써서 표현한다는 것은 예술적인 추구의 기본입니다. 한글공부를 깊이 있게 다가가는 방편 중에 한글 서예가 으뜸입니다. 외국인이 서예를 배우게 되면 한글 속에 담겨있는 철학과 사상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한글 붓글씨 퍼포먼스는 각종 행사에서 추구하는 메시지를 축약해서 그 핵심 문구를 현장에서 전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흔한 현수막과는 다르지요. 한글과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이것을 예술화시킬 수 있는 우수한 외국인이 양성된다면 좋을 일입니다.2025년 초 한글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한글서예가 단순한 글씨 쓰기가 아니라, 한글을 붓과 먹으로 표현하는 전통 지식과 문화적 의미를 아우르는 예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한글서예의 가치와 의미를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가까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우리나라와 겨레의 얼을 심는 디딤돌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것은 한글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만큼 한글사랑이 중요합니다. 한글에는 평화사상이 담겨있습니다. 한글을 통해 평화를 배우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여행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53개국을 경유하는 긴 여행인 만큼 자동차 주유와 숙식외 각 나라 통관과 자동차보험 운송 및 관리비용도 경비 부담도 상당합니다. eSIM 준비, 차량 정비외 현지 한글학교와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서예 퍼포먼스에 필요한 재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글 붓글씨로 재능기부를 하며 떠나는 의미 있는 여정입니다.‘한글 싣고 자동차 세계일주’는 평화와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는 플랫폼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1차 세계일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후 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으로 확대하는 2차, 3차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한글서예 퍼포먼스와 전시를 진행하며 한글을 사랑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한글의 가치를 전파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한글철학과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이번 여정에 뜻을 함께하는 81학번 동기들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으며,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후원회도 결성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교우회 여러분들의 다양하고 다각적인 조언과 후원도 부탁드립니다.” 서창훈 수석기자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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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기(경제61)교우가 막걸리 탄생의 비화를 얘기하고 있다. 선형기(경제61) 교우 인터뷰친구끼리 하숙집에서 막걸리 마시며 개사“원곡 작사가 조지훈 선생께 용서를” 매년 학기 초면 학생회관과 각 과방에 울려 퍼지는 막걸리 찬가. 이 막걸리 찬가가 들려 오는 어느 봄날, 편집국으로 한 교우가 찾아왔다. 바로 막걸리 찬가를 처음 구전시켰다고 주장하는 선형기(경제61) 교우. 고우체육회 지도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선 교우는 막걸리 찬가 역사의 시작을 몸소 증언했다. 역사의 많은 장면이 이루어진 1960년대, 막걸리 찬가의 역사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막걸리 찬가는 언제,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나요.“때는 1961년, 제가 새내기 때였습니다. 지방 출신으로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설렘도 잠시, 곧 5·16 군사정변 사태가 일어났지요. 시위, 휴교 등으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1963년, 3학년이 되던 해, 취업 준비와 학점, 병역 등 문제로 고민이 깊어져 ‘그룹 스터디’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친구·선후배들과 저녁마다 하숙집에 모였죠. 당시 지방 출신은 대부분 하숙집에 살아서, 모이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부가 끝나면 늘 막걸리를 마셨고, 노래도 빠질 수 없었어요. 그 때 응원가를 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막걸리 찬가를 개사한 주인공들은 누구인가요.막걸리를 마시던 어느 날, 지금은 작고한 동기 최공의(경제61)가 ‘강산에 빼난 정기 온누리에 떨쳐라’를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만 마신다’로 바꿔 부르더군요. 그래서 ‘그런 멋진 건 어디서 배웠니’ 물어보니 ‘옆 하숙집 친구 이경재(행정61), 변선의(법학61) 등이 부르더라’ 하더군요. 그래서 그 노래를 우리 하숙집에 드나들던 친구 문규환(경제61), 김중광(경제61), 유준상(경제61), 문황규(경제62) 등이 같이 배워서 몇 번씩 가사를 수정했고, 매일 목이 쉬어라 불렀어요. 당시 유행하던 ‘신라의 달밤’, ‘두만강’ 이런 흔한 노래만 부르다가 응원가를 개사해서 부르니 재미있더군요.- 개사한 노래가 학교에 퍼지게 된 계기는.친구들과 운동을 즐겨 했는데, 운동이 끝나면 술자리에서 으레 이 노래를 합창하며 체육부를 시작으로 슬슬 전교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대놓고 부르진 않고, 우리끼리 막걸리를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 익었을 때만 불렀어요. 왜냐하면 성스러운 우리 응원가를 모욕하는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이 자리를 빌려 원곡의 작사가인 조지훈 선생께 용서를 빕니다. 졸업 후 영양 조씨 선생님 묘소에 참배 갔을 때 용서를 빌기도 했습니다.- 주요 개사 포인트는 무엇인가요.응원가 중 ‘천지를 흔들어라 젊은피 솟구치는 날래고 용감한 이 기세를 보아라’를 ‘막걸리 부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 같이 취하자’로,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를 외치는 후렴 부분은 ‘고려대학교 막걸리대학교 촌놈대학교 엽전대학교’로 바꿨습니다. 또 후렴구 중 ‘승전고를 울려라 꽃다발을 받아라’ 부분은 ‘막걸리잔 부어라 막걸리잔 마셔라’로 개사했죠. ‘이대생은 우리 것 숙대생도 양보 못한다’ 부분도 있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문규환 동기가 가장 반대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고연전 경기장에서 후배들이 이 부분을 ‘태평양은 우리 것 만주 땅도 양보 못한다’로 바꾼 것을 듣고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외 남기고 싶은 말씀은.내가 학교 다닐 때는 일상이 막걸리였어요. 교문 앞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은 길 옆으로 온통 막걸리 상점이 있었죠. 학교 안 운동장에선 드럼통에 담긴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 마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막걸리를 마시며 부르던 응원가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모교 후배들은 응원가와 막걸리 찬가를 통해 힘을 얻고, 원곡의 작사가인 조지훈 선생의 큰 뜻을 가슴에 새기길 바랍니다.이해린 선임기자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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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9일 박준구(왼쪽) 우신켐텍 회장이 고려대 문과대학 발전기금 및 철학연구소 연구기금 기부 약정식에서 김동원 고려대 총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고려대 제공 추모합니다.故 박준구(철학 62) 교우, 우신켐텍 명예회장(1944∼2025) 3월 23일 타계 거구(巨軀)에 배어 있는 온화함과 이타심 럭비나 유도 선수 출신인 줄 알았다.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체격, 큼직한 얼굴과 우람한 손. 2005년 봄, 고대 문과대 교우회장으로 그가 취임하면서 각 학과 대표들과 상면하는 자리에서의 첫인상이 그랬다.(저분이 문과대? 철학과? 게다가 문과대 교우회장이라니)전통적으로(?) 유약한 '文科人' 이미지를 떠올리던 내게 그의 장대한 풍모는 적지않이 의외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착시는 오래가지 않았다. 안경 속 부드러운 눈매, 얼굴 가득 넘치는 순박한 미소,예단과는 전혀 딴판인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더 나아가,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도 후배들에게 일절 하대하지 않는 언어 습관하며. (고대 사회의 속성상 불편하다고 남들이 조언을 해도 후배를 대하는 그의 공대는 늘 변함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함께 공감하려 하고, 누구든 애로사항을 말하면 예사로이 흘려듣지 않고 끝까지 도와주려 애쓰는 자상한 배려, 이타심까지. 때때로 크고 작은 모임에서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시나브로 감동하게 되는 그분의 진솔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善한 선배’로서의 인상만 한동안 지니고 있었다. 철학도가 세운 굴지의 정밀화학기업 ‘우신켐텍’ 주변에선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우려하기까지 했다. 철학도인 그가 1974년에 무역회사를 창업했을 당시. 그것도 정밀화학이란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 그러나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화학분야 전문 무역상사로서의 독보적 입지는 물론 개발과 생산라인을 갖춘 부품·소재 전문기업으로도 이미 국내외 관련 업계의 정상에 우뚝 서 있다. 회사명부터 ‘새롭고 또 새롭게 (日新又日新)’에서 따왔다. 그의 철학도 다운 심지가 스며든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천부적 인품, 탁월한 역량, 불굴의 노력이 어우러져 그는 마침내 진정한 자수성가의 신화를 이뤄냈으니, ‘사람 좋은 高大 선배’에서 ‘성공한 기업의 CEO’로 한 단계 또 다른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인문 융합과 미래 인재 양성의 초석을 놓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2014년 회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장학재단을 세우며청소년 시절부터 품었던 평생의 포부를 펼치기 시작한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인문 융합 인재 양성과 인문학 총서 간행 사업’을 지정해 바야흐로 인문학 르네상스의 봉화를 지펴 올린 것.그에 따라 영문학과 뇌과학을 융합한 강좌가 개설됐고(2016년), 그의 이름을 딴 인문 교양 총서가 줄이어 간행되었다. 이어서 ‘삶/죽음/그리고 기억’이라는 독창적 주제로 의학/건축학/인문학 교수들이 아울러 융합 세미나를 여는 등 획기적인 탐구 어젠다가 각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21년 12월 하순. 그는 다시 고대에 5억 원을 기부한다. 인문사회관 건립과 디지털 인문학 교육을 위한 용도다. 타고난 겸손함과 수줍음의 그가 모처럼 취지를 밝혔다."학문 간 융합으로 청년들이 쉽게 인문학을 접하고 내적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거시적 안목의 학문융합·미래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과연 어느 누가 착상하고 앞장서 내놓을 수 있었을까. 어느덧 그는 이 나라 선지자들의 교육구국 정신을 계승한, 꿈꾸고 실천하는 '실용적 교육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과 CEO의 역할 범주를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과 집념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이라 하겠다.소리 없이 인자하고 수줍은 듯 겸손한 스타일어느 해 8월 중순,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저녁. 아들 생일이라 축하 파티를 냉면으로 하기로 하고, 마포에 있는 유명 냉면집엘 식구들과 갔더랬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다 들어가 자리에 앉고 보니 좀 떨어진 곳에 낯익은 분이 냉면을 들고 계시다. 반가움에 틈새를 비집고 찾아가 잠깐 수인사를 나눴다. 워낙 북새통이라, 나온 냉면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언뜻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일행은 벌써 자리를 뜬 후다. 우리는 등지고 앉은 위치라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식사 후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웬걸 “앞에 나가신 분이 다 하고 가셨어요” 그런다. 순간 가족 앞에서 면구스럽게 된 건 아닌가 싶었으나, 정작 함께 있던 아들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멋진 선배님을 모시고 계시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빙긋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몇 해 전 그 추억이 떠올라 해묵은 감사 전화를 드렸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아들 녀석이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잘살고 있답니다.” “그랬던가요? 기억하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선하디 선한 성품 그대로였다. '잘 살고 품격 있는 조국을 향한 기여'가 평생의 꿈 그의 삶은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일제의 막바지 침탈기에 태어나 광복과 독립, 분단과 6.25, 그리고 4.19, 5.16에 이어 군부독재와 문민시대를 거쳐 마침내 이 땅에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이룩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역사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의 발자취다.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일제의 징집을 피해 경북 봉화의 오지로 이주하면서 산나물과 버섯을 따며 생계를 이어가는 빈농의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학업의 뜻을 굽히지 않아 안동의 안동사범병설중학교를 거친 후 홀로 상경해 경복고등학교에 진학, 60년대 초반 정치적 격변기에는 한때 문학청년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이후 민족사학의 교육이념에 이끌려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고, 가정교사로 학비,생활비를 벌면서도 '자진근로반'이란 봉사서클에 가입해 매년 농촌봉사와 청량리 전농동 야학 교사로 젊음을 불태웠다.ROTC를 자원, 졸업 후 전방 소대장으로 복무하면서도 그의 염원은 '잘 살고 품격 있는 문화 조국을 향한 기여'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알차고 강한 기업을 적수공권으로 이루어내고, 그 여력으로 인문학 발전에 힘을 쏟은 것이다.시대의 격랑을 헤쳐오면서 성실하게 국가와 민족, 사회와 이웃, 그리고 미래를 짊어질 새 세대를 위해 혼신의 정성을 다해온 여든 한 해 삶. 모르긴 해도 그에겐 아직도 갈증이 더 남아있었으리라. 평화롭고, 정이 넘치고, 문화가 춤추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무언가 더 해야 할 바를 숙고했을 것이다. "고대에의 기부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행복" 지난 2023년 8월. 그는 또 5억 원의 인문학 발전 기금을 고대에 기부했다. 그가 ‘고대 TODAY’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기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요? 극빈 가정은 아니었지만 저 역시 꽤 어려웠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회에 신세를 진 만큼 갚는 것이고 이로 인해 느낀 보람은 저의 행복입니다.” 그의 그런 고귀한 뜻은 지금도 우리 곁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필생의 꿈인 '학문의 융합'도 곧 안암의 언덕에서 활짝 꽃을 피우게 되리니. 영원한 고대인.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거인, 박준구 선배님. 이제 오랜 병고에서 벗어나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후배 이강식 (사회 71) 고대 언론인교우회 상임고문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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