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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루틴커피 대표“각자의 속도로 하루의 루틴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안암의 아침을 여는 ‘루틴커피’ 숫자와 자본의 세계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이제는 사람들의 하루를 여는 커피를 고민한다. 어머니의 모교이자 익숙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고려대학교에서 그는 ‘루틴커피’라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단순한 카페를 넘어 학생들과 진로와 창업을 이야기하는 멘토링 공간. 그는 캠퍼스 속 작은 카페가 누군가에게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Q. 새로 리모델링한 학생회관 1층에서 ‘루틴커피’를 운영하고 계시죠?A. 고려대학교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루틴커피 공동대표 이동현입니다. 김성덕(원예85) 교우 아들이기도 합니다(웃음). 저는 캐나다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M&A, 프라이빗에쿼티, 그리고 IPO를 준비하던 핀테크 회사에서 일했어요. 숫자와 구조를 다루는 일을 오래 했지만, 항상 관심은 ‘사람들이 실제로 매일 쓰는 것’, 그중에서도 소비재(consumer)쪽에 있었습니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니 어느 도시든 가장 일상적인 소비재로 ‘커피’가 눈에 띄더라고요. 특히 한국만큼 ‘저가 커피’가 치열하게 발달한 곳이 드물었죠.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저가 커피야말로 퀄리티나 브랜드를 프리미엄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 호기심에서 루틴커피가 시작됐습니다. Q. 루틴커피는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는데, 다른 대표님들도 소개해 주세요.A. 처음부터 완벽한 팀을 꾸렸다기보다는, 유학생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동창들과 자연스럽게 시작한 팀에 가깝습니다.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는 만큼, 각자 강점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저는 재무이사(CFO)로서 브랜드의 방향성과 구조, 장기적인 그림을 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팀 구성도 단일한 배경이라기보다는 컨설팅, 사업, 운영 등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래서 더더욱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창업 장소로 ‘고려대학교’를 염두에 두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고려대학교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드나들던, 개인적인 추억이 많은 공간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머니의 모교인지라(웃음)…. 고대 출신은 아니지만 고대 문화에 상당이 익숙했죠.학생시절 국제하계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그때 느꼈던 학생들의 분위기와 캠퍼스의 에너지가 꽤 인상 깊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섞이고, 이야기하고, 머무는 느낌이 강한 곳이었어요. 창업을 고민하던 시점에 마침 학생회관에서 기회가 생겼고, 저희에게는 그게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지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해보면서 메뉴, 가격, 공간의 분위기까지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커피라는 게 결국 사람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매개체다 보니, 같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생기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장면들이 대학이라는 공간과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어디에 매장을 낼 것인가’보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시작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고, 그 출발점이 고려대였습니다. Q. 브랜드 네이밍을 ‘루틴커피’로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A. 루틴커피는 이름 그대로 사람들의 하루 루틴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러 가는 카페라기보다는, 출근 전이나 수업 사이, 혹은 잠깐 숨 돌리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들의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편하게 올 수 있을까’를 가장 중요하게 고민했습니다. 공간은 쉬어갈 수 있지만, 커피는 최대한 빠르게 나올 수 있도록 메뉴를 의도적으로 단순화했고, 동선과 준비 과정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카페, 그러면서도 커피의 기본적인 퀄리티는 놓치지 않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메뉴 역시 과하게 튀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되, 가격 대비 퀄리티에서 ‘생각보다 괜찮다’는 인상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참깨 카라멜 라떼’처럼 고려대만의 시그니처 메뉴도 시도하고 있어요. Q. 대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등 사회적 기여에도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A. 캠퍼스 안에 있다 보니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창업, 진로, 해외 경험 같은 이야기들을 격식 없이 나누는 자리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흔히 말하는 ‘커피챗’ 형태의 멘토링 세션을 진행해,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다양한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1대1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주선했습니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라고요(웃음). 앞으로는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모시고 취업 준비나 인터뷰 팁, 이력서 검토처럼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해 보고자 합니다. 아직 작은 시도들이지만, 루틴커피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학생들에게 잠깐이나마 방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Q. 교우회에도 멘토링 제도가 있고, 최근 (사)고려대학교 교우 사회공헌봉사회도 발족한지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네요.A. 루틴커피가 잠시 쉬어가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 혹은 누군가에게는 작은 계기나 전환점이 되는 장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우회에서 운영 중인 멘토링 제도나 사회공헌봉사회와도 방향이 맞는 지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나누는 작은 자리들부터 함께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모교 교우와 재학생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A. 무엇이든 빨리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기에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았는지, 지금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이제와 돌아보면, 그 모든 고민이 내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잘 버티고, 어떤 리듬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더라고요. 루틴커피라는 이름도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되, 너무 조급하지 말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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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진(미디어14) 교우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작가 지식을 나누는 일의 기쁨콘텐츠로 삶의 쓸모를 만들다차민진(미디어14) 교우는 모교 미디어학부를 졸업하고 국어교육 석사 과정을 밟으며, ‘전달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꾸준히 탐색해 왔다. ‘연고티비’ 활동을 시작으로 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경험했고, 이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맞춤법과 책, 언어를 소재로 자신만의 콘텐츠 세계를 구축했다. 국어 강사, 크리에이터, 작가라는 여러 정체성을 거쳐온 차 교우의 선택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배운 것과 느낀 것을 혼자만 쌓아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차 교우는 모교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는지와 더불어, 확성기를 통해 ‘쓸모있느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글. 송다연 기자- 학사에 이어 석사까지 모교에서 공부 중이십니다. 교우님에게 모교란 어떤 의미인가요.“저에게 모교는 ‘나를 찾아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주변에 열정적인 친구들이 정말 많았고, 덕분에 모두가 공부든 놀이든 각자 이것저것 찾아서 해보는 분위기였거든요.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섞여 여러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학부 시절에 느꼈던 모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대학원 진학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재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꼽자면요.“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모여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던 ‘연고티비’ 활동이에요. 기획부터 촬영까지 다 직접 했고, 활동비도 거의 없었어요. 기업 채널이 아니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열정과 사명감으로 뭉쳤죠. ‘대학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친구들끼리 계속 고민하고 부딪쳤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한 단체의 특성상 부딪치기도 하고 갈등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재미를 살릴지, 유익함을 살릴지 등 방향성에 관한 의견 차이가 꽤 있었죠. 저는 끝까지 설득해서 제 쪽으로 맞추는 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양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조직이 굴러가려면 팔로우십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래도 각자 강점이 분명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으로 이어져서 늘 잘 해결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갈등을 조정해 가는 과정에서 더 돈독해졌어서, 지금은 모두 소중한 추억이에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어떤가요.“저한테는 굉장히 잘 맞는 직업이에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확성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이 일이 제 확성기가 됐어요. 제가 생각하고 배우는 것, 알고 있는 걸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삶의 유용성도 중요해졌는데, 시간적인 균형 면에서도 만족스럽습니다.”- 최근 교우님의 유튜브 채널은 숏폼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처음엔 저도 숏폼을 거의 안 봤어요. 단편적인 재미 위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맞춤법 콘텐츠를 숏폼으로 만들어 봤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맞춤법이나 책 추천은 짧고 정확한 형식이 더 잘 맞더라고요. 콘텐츠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껴서, 요즘엔 제 채널의 특징에 맞는 숏폼 영상 위주로 제작하게 됐죠.”- 국어 강사 경험도 인상적인 이력입니다.“‘연고티비’ 영상을 통해 처음 강의를 제안 받았는데, 정말 소중했던 경험이에요. 그런데 국어 강사는 지식을 넘어서 가치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어요. 한 마디로 부담이 컸던 거죠. 다만 그 경험을 통해,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맞춤법에 진심인 편》을 출간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숏폼 영상 이후 출판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대신 맞춤법 책이라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영상으로는 담기 어려운 설명을 책에서는 충분히 풀 수 있었고요. 학교 추천 도서로 선정되거나 교재로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인생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아버지가 늘 해주시던 말이 있어요. ‘남의 덕 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 그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고, 돌아오면 또 더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립심이 흐려진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 삶의 기본값은 늘 ‘내가 하는 것, 내가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남과 뭔가를 해서 잘되길 바라기보다는, 혼자서도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관계에서도 살갑지는 못한 편이에요. 친구들 자체는 정말 좋지만, 목적이 있어서 관계를 맺는 건 잘 맞지 않더라고요.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도 서툰 편이고요. 그럼에도 아직은 ‘남의 덕 볼 생각 없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제가 조금은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도 비슷할까요.“앞으로의 목표도 거의 비슷합니다. 콘텐츠 업계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목표거든요. 숏폼 콘텐츠는 대부분 흥미 위주로 소비되지만, 그 안에 아주 한 방울이라도 유용한 게 담길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 일상에서 대화 소재로라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우회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후배분들께는, 돌이켜보면 대학생 시절이 필연적으로 불안정하고 고민이 많은 시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그럴수록 조급해하지 말고,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정말 편하고 잘 맞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감각이 든다면, 거기서 벗어나도 된다는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선배님들께는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선배님들께서 길을 잘 닦아주셨기 때문에, ‘고려대’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지식을 전달하며 일할 수 있어 든든합니다. 학연이라고 하면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공동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앞으로도 저 역시 모교의 이름을 달고 제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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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기(법학91) 교우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웅크리지 않고 삶의 궤적을 확장해 가다법에서 삶으로 확장된 ‘범죄와 사회’의 10년 홍영기(법학91) 교우는 모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독일 베를린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현재는 모교로 돌아와 법학전문대학원 기획대외부원장을 맡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중 교양 강의 ‘범죄와 사회’는 2015년에 처음 개설돼 벌써 10년째, 매 학기 수강 신청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만큼 학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범죄를 단순한 법률문제가 아닌,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홍 교우는 책과 영화, 음악 등 일상의 문화적 경험을 법학적 질문으로 확장하며, 학생들과 함께 사고하는 수업을 만들어왔다. 이번 인터뷰에서 홍 교우는 강의를 대하는 태도와 모교에 대한 애정,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야기한다.글. 송다연 기자- 학사와 석사를 모두 모교에서 마치고 현재는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교우님에게 모교는 어떤 공간인가요.“학부 시절에는 솔직히 제가 ‘고려대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혼자 조용히 책 읽고 클래식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고대인이 돼 있더라고요. 재작년쯤 연구비 신청 기한을 놓쳐서 받지 못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별로 아깝지 않더라고요. ‘어차피 학교가 다른 곳에 알아서 쓰겠지’라는 생각에서요. 아버지에게 용돈을 조금 덜 받아도 가족 돈이니까 괜찮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 감정이 들 때, 이곳이 이제 저의 ‘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학 시절을 돌아봤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요.“중앙도서관에서 1800년대 고서들을 읽던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와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던 경험이 지금 저의 학문적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도서관을 좋아하던 거 말고는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학부 4학년을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건 꽤 특이한 선택이었기도 하죠. 당시 학과 학생이 300명 정도였는데, 학문을 진지하게 해보겠다고 대학원에 간 사람이 아마 저 혼자였을 거예요. 시기와 운이 잘 맞았어서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게 됐답니다.”- 모교에서 학위를 마친 후 넘어간 베를린대학교에서의 박사 과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당시 대학원에 가서 처음 독일어를 접했는데요. 그때는 학원에 가지 않으면 접할 기회도 없었기에, 두꺼운 독일어 사전을 뒤적이며 공부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이렇게 공부할 필요성이 줄어든 시대라, 그때를 떠올리면 아련한 감정이 들어요. 그리고 베를린은 조용하면서도 서울처럼 활기가 있는 도시였죠. 외국인도 많고 문화가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아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시위 문화였습니다. 큰 도로를 점거해도 ‘불편하다’기보다는 ‘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있구나’ 하고 지켜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연관된 독재와 전쟁을 겪었던 역사 때문인지,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태도가 사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시민들이 법을 존중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습니다. 단속이 없어도 대부분 표를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든요.”- 현재까지도 독일에 자주 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교우님에게 독일은 어떤 곳인가요. “저에게 잘 맞는 공간입니다. 한국에서도 잘 지내지만, 독일에 가서도 크게 불편함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지 않는 문화가 편합니다. 경제적 사정과 상관없이 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옷차림이나 생활 방식에 서로 간섭하지 않죠. 그리고 저는 클래식 음악이나 연극 공연을 좋아해서, 이러한 문화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좋아요. 그뿐만 아니라 독일 대표 음식인 소시지와 맥주까지 좋아해서, 음식도 잘 맞는답니다(웃음).”-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처음부터 법학이 잘 맞았던 건 아닙니다. 고시 공부랑도 잘 안 맞았고, ‘왜 이걸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많았죠. 그런데 배종대(법학70)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법학이 단순 암기가 아니라, 사건과 개념을 설명하는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그리고 강의를 통해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고, 어떤 법 개념을 적용하는지를 풀어내는 일이 제 적성에 맞았어요. 평소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키워드로 메모해 두고,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그때그때 설명을 조정하곤 해요. 이렇게 문화적 경험을 강의에서 설명할 때 수업의 전달력도 높아지고, 그 과정이 다시 제 연구와 직업적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교수’라는 직업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교양 강의 ‘범죄와 사회’를 어느덧 10년째 가르치고 계십니다. 교수님께 이 강의는 어떤 의미일까요.“형법이나 형사소송법 같은 다른 법학 강의는 진도를 나가야 하고 법학을 전문적으로 다뤄야 하다 보니, 보다 구체적으로 사안을 포섭하는 데 집중합니다. 반면 ‘범죄와 사회’는 사회 현상이나 인생 이야기도 함께 다룰 수 있어서, 다루는 규모와 결이 조금 달라요. 그래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라기보다 제가 삶 속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법’이라는 틀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창구입니다. 그렇기에 정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 ‘범죄와 사회’가 매년 인기 있는 강의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덕업일치(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웃음)? 저는 원래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이런 매체에서 만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문제의식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제가 진심으로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학생들도 그걸 느끼는 것 같아요. 점수를 후하게 주는 수업도 아니고 편한 강의도 아니지만, 수업이 끝난 뒤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그 진심 때문일 겁니다. 저는 매 학기 강의를 하지만, 그 시기에 맞춰 늘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해요. 어떠한 새로운 사건을 마주하더라도 ‘범죄와 사회’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며 진심으로 수업에 임할 뿐입니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가 있다면요.“혼자 웅크리고만 살지 않는 삶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만나는 폭이 좁아지고, 그러다 보면 외로워지기 쉽더라고요. 요즘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지만, 10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그 시간을 모두 혼자 견디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기반을 넓히려고 해요. 사람도, 생각도요. 나이 들어서도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살고 싶습니다. - 제자들에게는 이를 어떻게 전달하나요.“이러한 가치관과 연관해, 제자들에겐 대학 시절에 가능한 한 많은 체험을 해보라고 말해요. 20대에 넓힌 세계는 평생을 갑니다. 서른이 넘으면 바빠서 새로운 걸 시도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요. 음악도 새로운 장르를 잘 듣지 않게 되고,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서지도 않게 되죠. 저 역시 책 취향이나 음악, 분위기가 점점 고정됐습니다. 이제 와서 시집을 읽으려 하면 어색하고, 국악이 좋다는 건 알지만 어릴 때 접했더라면 더 자연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국 이십 대에 얼마나 다양한 공간을 밟아봤느냐가 이후의 삶에도 그대로 남기에, 경험의 폭이 좁으면 익숙한 것만 반복하게 되는 거겠죠. 그런 점에서 ‘고려대’는 젊은 시절을 넓게 써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제자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모교 선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고연전에 가서, 재학생석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학생들을 보면 ‘이렇게 멋진 학생들이 내 제자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고 감사해집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반대편 교우석을 보면 ‘이런 선배님들이 계셔서 지금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이곳도 고맙고 저곳도 전부 고마운 마음이에요. 모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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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영문82) 교우 前 SBS 기자현장에서 배운 방송기자의 본질후배들에게 전하는 공감, 배려, 감사배재학 교우는 35년간 SBS에서 기자, 앵커,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방송 현장을 지켜온 언론인이다. 속보와 특보의 최전선에서 뉴스를 전달했고, 유럽 지역 특파원으로 유럽의 굵직한 사건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정년퇴직 이후에는 멘토로서 후배들과 만나 언론인의 본질과 인성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배 교우는 모교에서 시작된 자신의 언론 인생과 방송 현장의 치열함, 그리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글. 송다연 기자- 모교에서 기억에 남는 추억과, 현재 교우님에게 모교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합니다.“제 인생에서 모교는 절대적인 크기를 가진 공간입니다.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오래 했지만, 결국 제 몸에는 여전히 크림슨색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느껴요. 저는 어디에 있든 고려대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해외 특파원으로 파리에 있을 때도 교우 모임에 나가면 가족처럼 느껴졌어요.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모교는 출신 학교를 넘어, 삶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무엇보다 고려대는 ‘사람의 학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이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 선배들이 먼저 밥부터 사주던 문화가 자연스러웠어요. 인성과 기본을 잘 닦아온 후배라면, 선배들이 크림슨의 피로 기꺼이 맞아주는 공동체입니다.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재학 시절의 추억도 소중하게 남아있어요. 중앙도서관에서 시험 기간마다 새벽에 줄 서서 자리를 잡던 기억, 법대 후문 하숙집에서 살며 500원짜리 국밥과 학식을 먹던 일상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험 기간 중앙도서관 자리 잡기는 정말 별 따기였죠.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도 만났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그 인연으로 가정을 꾸려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대학 시절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인생의 기반이 된 시간이죠.”- 모교 졸업 후 방송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고등학생 때부터 방송에 대한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정보가 많지 않았어요. 문학은 제 성향과 맞지 않았고요. 그러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MBC 방송기자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직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정적인 일보다 현장을 뛰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특히 취재를 마치고 자신의 이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회 초년병인데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진다는 것, 즉 자기 목소리로 세상에 말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와 닿았어요.”- SBS 기자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면요?“앵커 생활을 오래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치열한 취재기자로서 현장에 더 오래 있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앵커라는 자리 역시 방송기자의 숙명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앵커를 하던 시절은 속보 경쟁이 정말 치열했습니다. 뉴스는 단 한 초라도 먼저 나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분장도 못 하고 바로 방송에 들어가야 했고,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를 가장 많이 말한 앵커 중 한 명이었을 겁니다.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24시간 내내 속보를 진행했습니다.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단 한 명이라도 생존 소식을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방송에 임했어요. 지금도 큰 사건·사고 뉴스를 방송으로 접할 때 갑자기 온몸으로 반응하거나, 아무런 원고 없이 뉴스를 진행하는 아찔한 순간을 꿈꾸는 것을 보면 ‘천상 방송기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특파원 시절의 경험도 인상 깊을 것 같습니다.“유럽 특파원으로 갔을 때 정말 사건이 많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바로 가습기 사건 살균제 사건 피해자 취재를 나가며 특파원 생활이 시작됐죠. 이후 브렉시트, 니스 테러, 샹젤리제 거리 총격,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 테러 등 여러 사건을 사건·사고를 연이어 취재했습니다.특파원의 기본은 어떻게든 현장에 있는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전쟁과 다를 바 없죠. 한 달에 8시 리포트를 20번 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밤에 혼자 숙소로 돌아오면 정말 힘들었어요. 게다가 파리에 처음 갔을 때는 한 달 가까이 비만 내렸습니다. 센강 수위가 올라 루브르 박물관이 폐쇄됐고, 제 첫 리포트도 장화를 신고 센강에 들어가서 전한 홍수 보도였습니다.”-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뉴스를 전하던 순간도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참 행복했어요. 나이트라인 마지막 방송 날이었습니다. 밤 12시 반에 뉴스를 시작해 1시 10분 클로징 멘트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왔는데, 15명의 후배가 서 있더군요. 미디어월 뒤편을 제가 여태까지 만난 분들로 채워주고 마지막을 함께 축하해줬어요. 미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준비한 깜짝 서프라이즈였어요.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직업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기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순간을 언제 또 경험할 수 있었을까 싶었죠.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때의 고단함마저도 모두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저는 주저 없이 방송기자의 길을 선택할 겁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역량은 무엇인가요?“방송기자의 처음과 끝은 인터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마음을 열고 말하게 만드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카메라가 많고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해야 합니다. 또한 방송기자는 결국 공감 능력이 핵심입니다. 아이컨택을 잘 하고, 추임새를 잘 넣고, 상대를 존중하고, 함께 호흡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태도는 방송 현장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드러납니다. 길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문을 잡아주는 작은 행동들이 결국 사람을 드러냅니다.”- 방송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요즘 후배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걸 해보라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언론사에 들어오면 기존의 것을 비우고 다시 배우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다릅니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해보세요. 그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됩니다.요즘은 기자 한 줄, 한 마디가 바로 검증됩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비판의식, 책임의식, 소명의식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성입니다. 방송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카메라, 편집, 그래픽, 제작진 모두와 함께 만드는 종합예술이죠. 결국 조직에서 오래, 잘 가는 사람은 인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 정년퇴직 이후에는 멘토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정년퇴직 이후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던 중, 한국장학재단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방송기자를 꿈꾸는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삶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 생각보다 큰 기쁨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그 경험을 계기로 교회에서도 ‘신촌 멘토링 스쿨’이라는 청년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IT, 의료,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년층 멘토와 청년 멘티를 연결하는 구조인데, 무엇보다 공감과 감사, 배려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멘토링은 가르치고 이끄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수평적인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도 청년 멘티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운입니다. 그렇게 멘티가 다시 누군가의 멘토로 성장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때, 멘토링의 의미는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의 인생 목표나 가치관이 궁금합니다.“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인성입니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인 인성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35년 동안 후배들을 지켜보며 확신하게 된 부분입니다. 언젠가 뉴스에 다시 초대받는 사람이 된다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초대받고 싶어요. 지금도 후배들과 만나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결국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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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의학77) 교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겸 작가환자를 보며 자신을 마주한 성찰의 기록정신분석으로 삶을 읽고, 다시 쓰다김혜남 교우는 모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근무했다. 이후 김혜남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서 환자들과 만나오면서, 여러 의대에서 외래교수로서 학생들도 가르쳐왔다. 그러던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삶의 큰 전환점을 맞았고, 병마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등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며 독자의 큰 공감을 얻었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 교우는 정신분석 전문의와 작가로서, 환자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 삶을 담담히 들려준다. 모교 공동체에 대한 애정부터 정신분석을 통해 발견한 삶의 통찰, 그리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태도까지 차분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글. 송다연 기자- 교우님에게 모교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합니다.“모교는 제게 단순한 출신 학교가 아니라, 삶의 정체성에 가까운 공간입니다. 제 남편도 의대 동기이고, 35대, 36대 고대의대 교우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아들은 모교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년이 됐고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족 안에서도 ‘고려대’는 하나의 공동체였죠. 무엇보다 모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내가 졸업한 학교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끈끈한 교우애와 정, 그리고 서로를 챙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죠. ”- 재학 시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요.“본과 4학년 때 연극반 활동을 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남자 광대 역할을 맡아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했죠. 한 인물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무대를 뒤집어놨던 경험이 제 인생에 꽤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여러 가지 마음에 깊게 접근하게 됐거든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하고 깊다’는 것을 실감하고, 인간의 내면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계기죠.”-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은 무엇이고 처음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될까요.“제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마음을 알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정말 복잡합니다. 자기 마음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정신분석학은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해석을 통해 환자 스스로 알게 하는 과정이죠.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립니다. 일주일에 세네 번, 한 번에 한 시간씩, 보통 3~4년은 함께 가야 해요. 과거의 중요한 경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기억들이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배움은 무엇인가요.“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이후로 세상이 안개가 걷힌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영화 속 인물도 다르게 보였고요. 그리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보였어요. 병원과 회사를 여러 개 운영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도, 마음 한편에는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계시더군요.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과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상관없이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뜻한 눈빛으로 언제든 기다려주고 반겨주는 존재의 힘은 정말 큽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며 가장 크게 느낀 점도 궁금합니다.“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저는 환자를 ‘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치료 사례를 놓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정말 뜻깊었고, 그 안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인생의 앞길을 헤매다 막다른 길에 닿으면, 그 끝에 큰 거울이 하나 있는 것 같아요. 그 거울 앞에서 결국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죠.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인간은 다 비슷하구나’라는 것을요.”- 의사로서 일하시다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파킨슨병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정말 눈앞이 깜깜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미래가 조금 불확실해지고 현재가 살짝 불편해졌을 뿐, 나 자체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왜 현재를 망치고 있지?’ 그 순간,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뭐든 열심히 해보려고 했죠.그럼에도 사실 원래 책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다만 중학교 시절 수필 시간에 쓴 글 하나가 전교생 앞에서 낭독된 기억은 있어요. 잘 쓴 글은 아니었지만, 진심이 담긴 글에는 힘이 있더라고요. 잘 쓴 글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요.(웃음) 제가 글을 엄청 잘 쓴다기보다는, 진심을 담아서 써 내려간 글이라서 여러 책까지 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힘들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행동과 생각은 무엇인가요?“저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좌절합니다. 책에선 긍정적인 태도를 이야기했지만, 저조차도 잘 까먹는 거죠.(웃음) 그럴 때마다 무용과 심리학을 함께 공부했던 친한 친구를 만나요. 함께 시간을 보내며 꽃과 풀을 보고, 물방울이나 빛의 변화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사소한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이 큰 위로가 됩니다. 거창한 깨달음보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저를 다시 살아가게 해줘요.그리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삶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후회되는 선택’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선택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결국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니까요.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존재고요. 시부모님을 모시며 아이 둘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가 제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예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제가 좋아서 한 일이었고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다시 돌아가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살았을걸’하는 후회보다는, 그 시절로 돌아가도 저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요?“‘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몸으로 뛰지는 못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저도 보통 사람이거든요. 나만 고통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저도 다 똑같이 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 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친구를 만나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버스킹을 보면 환호하고 박수도 치고요. 제주도, 특히 함덕 바다를 걷는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모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경쟁이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고 지루한 시간이 오히려 행복일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사랑한다’며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행복입니다. 자신을 잘 돌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다면 충분해요. 웃고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요. 잘 견디고, 잘 행복했으면 합니다.”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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