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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흐르는 나눔 DNA의술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다나눔의 방식은 달라도 향하는 곳은 같다. 의술로 아픈 이웃의 곁을 지키고,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의 손을 잡으며, 지식으로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키워 온 고대인들. 우리 안에 흐르는 ‘나눔 DNA’를 삶으로 실천해 온 교우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글. 최기영 편집국장, 이현화 수석기자 사진. 최기영 편집국장, 진서영 기자의술을 나누다: 고대교우의료봉사회의료 봉사로 걸어온 50년 한길 국내는 나, 해외는 남편이(1976~2026)제 의료봉사의 뿌리는 1976년 서울 시흥동 산동네에 자리했던 전진상의원이었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뜻으로 세워진 그곳에서 평복을 입은 수녀님들, 약사, 사회복지사와 함께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섬기는 직분’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남편 최병한(의학68) 선생과 결혼할 때도 저희는 작은 약속을 하나 나누었습니다. 해외는 남편이, 국내는 제가 맡아 각자의 자리에서 평생 의료봉사를 이어가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남편은 2004년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중국 쓰촨, 아이티, 필리핀 타클로반, 네팔 등 세계 곳곳으로 달려갔고, 저는 이 땅의 그늘진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50년을 함께 걸어왔습니다.의사는 소외된 이웃이 있는 곳으로 가야, ‘힐링투게더 해피투게더’한 기자가 제게 “대한민국은 의료보험 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인데 굳이 의료봉사가 왜 필요하냐”고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불법 체류자, 쪽방촌 노숙인, 중증 장애인들은 여전히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봉사를 위한 봉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의사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2008년 이향애(의학65) 선배가 부인과 진료를 맡아 줄 의사를 찾던 그 부름이 제 평생의 방향을 바꾼 만남이었습니다. 1998년 모교 의대 여자교우회의 무료 진료 사업에서 시작해 2014년 정식 출범한 고대교우의료봉사회에서, 저는 이동식 ‘일일 종합병원’의 원장을 맡았습니다. 새벽부터 청소와 의약품 운반, 환자 안내까지 도맡아 준 교우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힐링투게더, 해피투게더’라는 말처럼 봉사는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나에게 찾아온 환자는 나와 똑같은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평생을 바쳐 배운 나눔의 전부였습니다. 사랑하는 고대의대 후배들에게도 오직 하나, 어떤 순간에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참된 의사가 되어 달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습니다.-최경숙(의학68) 고대교우의료봉사회 명예단장화상 입은 난민 소녀 치료 못해, 다시 태어나면 외과 의사 되고파의료봉사를 하며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곳은 2017년 찾았던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이었습니다. 콕스 바자르 인근 철조망 안 100만 난민 거주 지역의 위생과 의료 환경은 참담했습니다.그곳에서 만난 아이의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세살 때 입은 화상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팔과 관절이 굳은 아이였습니다. 여러 도움으로 아이는 한국에서 수술과 피부 이식을 받았습니다. 굳었던 팔을 펴고 웃던 아이를 보며,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소아과 대신 외과를 전공했더라면 칼을 잡고 더 많은 이를 직접 수술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다시 태어나면 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암투병, 가족에게 남은 미안함과 고마움결혼 50주년, 세 자녀 앞에서 “해준 것이 없어 늘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 주었습니다. 세 차례 암투병으로 쇠약해진 아내를 위해, 몇 년간 출근 전 밥상을 차리며 곁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저 역시 말기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곁을 지키는 시간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몫이라 믿습니다.고대교우의료봉사회가 모교의 이름을 빛내온 데 각별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려웠던 시절 세계 곳곳에서 보내온 이름 모를 도움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가진 의술과 온기를 가난하고 아픈 이웃과 나누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갚아야 할 사랑의 빚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참된 후배 의사들이 이어지기를, 병상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최병한(의학68) 교우* 암 투병 중에도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최병한 교우께 깊이 감사드립니다.마음을 나누다: 여자교우회‘다름’의 벽을 넘어 이웃으로제천 ‘세하의 집’에서 시작한 발달장애인과의 인연저에게 나눔은 ‘배려’입니다. 검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늘 사람을 단순히 사건의 대상이 아니라, 저마다의 삶과 사연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도울 때도 ‘내가 가진 것을 준다’는 생각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고 믿습니다.여자교우회는 오래전부터 발달장애인 이웃들과 인연을 이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박경이(원예76) 교우가 설립한 제천의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세하의 집’이 있습니다. 회원들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이곳을 찾아 입소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물품을 나누며 꾸준히 봉사해 왔습니다.지난 6월에도 교우들은 세하의 집을 찾아 발달장애인과 짝을 이뤄 맨발로 산책하고 함께 씨를 뿌렸습니다. 하루를 함께 보내며 그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바라보며 우리와 소통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이웃입니다.성북구·동대문구에서 봉사활동 추진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직업재활 현장이었습니다. 세탁이나 장갑 포장 같은 일을 배우고, 스스로 소득을 얻으며 독립해 살아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교육과 함께 돈을 관리하는 방법, 사기나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필요합니다.이제 여자교우회는 고우봉사회와 손잡고 그동안 이어 온 발달장애인 봉사의 폭을 넓혀가려 합니다. 세하의 집과의 인연을 이어 가는 한편, 모교와 가까운 성북구와 동대문구의 발달장애인 시설을 찾아 새로운 봉사활동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당사자의 자립을 돕는 것은 물론, 오랜 돌봄으로 지친 부모와 가족의 마음까지 보듬을 수 있는 활동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곁의 누군가를 한 번 더 바라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나눔은 바로 그런 배려에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조희진(법학81) 여자교우회장지식을 나누다: 사범대교우회세대를 잇는 교육 나눔의 힘 야학에서 시작한 교육봉사, 청소년 멘토링으로저에게 나눔은 ‘미래 세대와 함께 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이자 동행’입니다. 모교와 사회로부터 받은 배움의 혜택을 후배와 이웃에게 돌려드리는 일은 고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품는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을 전공한 사범대인에게 나눔은 단순한 물질적 후원을 넘어, 다음 세대가 지닌 잠재력을 열어 주는 실천이기도 합니다.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농촌 교육봉사와 노동야학이 활발했습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배움에 목마른 이웃에게 작은 빛을 밝히려는 열정만큼은 뜨거웠습니다. 그 ‘교육나눔 DNA’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시작한 ‘KU:CEAM(쿠쌤)’은 사범대와 교육대학원 재학생들이 강원도 고성 등 교육 소외 지역의 중학생과 일대일로 만나 학습과 진로 탐색을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학기 중에는 화상 멘토링을 진행하고, 방학에는 현장 캠프를 열어 교육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예비 교원들의 현장 지도 역량도 키울 수 있습니다.현장에서 함께하는 모교 재학생과의 동행후배들의 교육봉사에는 교우들도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매년 기금마련 행사를 통해 십시일반 뜻을 모아, 후배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봉사에 전념하도록 지원합니다. 직접 현장을 찾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장일태(의학77) 나누리의료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교우들은 현장에서 격려금과 물품을전달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하며 후배들과 멘티들을 응원했습니다. 기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마음을 나누는 선후배의 동행이야말로 쿠쌤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앞으로는 고우봉사회와 손잡고 교우들이 직접 교육 나눔의 주체로 나서려 합니다. 우선 성북·안암 인근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현직·퇴직 교사와 교육 전문가 교우들이 교과·진로 멘토링과 특강을 제공하고, 재학생 쿠쌤 봉사단과 함께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학습 돌봄 체계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나아가 사범대가 축적해 온 교육봉사 모델을 고우봉사회의 사회공헌 플랫폼과 연결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하고 싶습니다. 시대에 따라 나눔의 방식은 달라져도, 배움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사범대의 ‘교육 나눔 DNA’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김미숙(지교81) 사범대교우회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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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수록 더 커져요고우봉사회 기부자 메시지고우봉사회의 출범과 함께 교우들의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부터 미래를 위한 투자, 공동체를 향한 책임까지 나눔의 이유와모습도 저마다 다르다. 한 사람의 실천이 또 다른 참여를 부르는 ‘나눔의 릴레이’, 그 대열에 함께한 교우 9인의 메시지를 전한다.글. 이현화 수석기자, 서윤주·오진수 기자1호최 준 영나눔은 고대정신이다“모교의 건학 이념인 자유, 정의, 진리와 더불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나눔의 가치 역시 중요한 고대정신입니다. 이번에 기부한 봉사차량이 고우봉사회의 나눔을 우리 사회 곳곳에 실어 나르는 뜨거운 엔진이 되길 바랍니다.” -최준영(경영82) 현대차그룹 정책개발담당 사장2호구 승 회나눔은 당연한 보답이다“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모교와 사회, 교우 선후배님들로부터 받은 큰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고우봉사회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고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길 바랍니다.” -구승회(경영82) 교우회 감사3호김 태 훈나눔은 씨앗이다“제가 스무 살에 암 투병을 하며 받았던 따뜻한 도움을 이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으로 돌려 주려 합니다. 누군가의 어두운 터널 끝에서 따뜻한 등불이 되어 줄 고우봉사회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김태훈(경영03) 포르투갈교우회장4호여자교우회나눔은 공감과 배려다“10만 여자교우 여러분, 작은 나눔과 배려가 모이면 우리 이웃의 삶을 바꾸는 큰 힘이 됩니다. 직접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관심으로 함께해 주세요.” -조희진(법학81) 여자교우회장5호사범대교우회나눔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내가 가진 지식과 마음을 나눌 때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는 줄어들고 더 밝은 미래가 열립니다. 후배들이 펼쳐 가는 교육봉사에 교우 여러분도 따뜻한 마음으로 동행해 주세요.” -김미숙(지교81) 사범대교우회장6호최 광 열나눔은 연결이다“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닥칠 수 있습니다. 주변과 사회의 도움을 기대하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촘촘한 안전망이 되어 주는 사회를 바라며, 고우봉사회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최광열(경영79) KYC재단 이사장7호옥 정 훈나눔은 온기다“민족고대가 사회 곳곳으로 나눔의 영역을 넓혀 가는 뜻깊은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 손길이 우리 공동체의 취약계층까지 닿아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옥정훈(불문92) (주)네이즈 대표이사8호문 규 영나눔은 행복의 선순환이다“진정한 행복은 나눔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은 나눔이 모여 우리 사회에 희망을 더하고, 그 희망이 모여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번 기부가 교우 사회에 나눔의 기쁨을 널리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규영(농학70) 아주복지재단 이사장9호권 오 섭나눔은 선택이 아닌 책임이다“‘너는 얼마가 더 있어야 기부를 시작하겠느냐’는 꿈속 질문에 바로 다음 날 동사무소를 찾아 2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한 사람의 나눔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만큼, 더 많은 사람이 그 뜻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눔으로 만들어 갈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 교우 여러분도 꼭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권오섭(지질78) 메디힐 회장·모교 의대발전위원장
나눔은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이헌정(의학89) 교우회보 편집위원‧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원봉사가 꼭 거창한 일일 필요는 없다.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봉사활동으로 우울증을 극복한 환자 정신과 진료실에서 면담과 약물치료와 함께 자주 권하는 것이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다. 특히 불면이나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아침 산책을 권한다. 아침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은 수면의 질을 높이고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를 꾸준히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혼자 산책을 지속하기 어렵다면 정기적으로 집 밖에 나갈 수밖에 없는 활동을 만들어 보도록 권한다. 그중 하나가 자원봉사다.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만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권유로 시작한 자원봉사가 저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줬어요. 정말 감사해요.” 한 환자가 기억난다. 그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차츰 활기를 되찾았고 우울증에서도 회복했다. 이후 꾸준히 봉사에 참여하며 여러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까지 건강하게 만들었을까? 실제로 자원봉사가 정신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적지 않다. 2016년 영국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정신적 안녕감을 보였으며, 이러한 차이는 중년 이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8년에 발표된 국내 노인 대상 연구에서도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높은 생활 만족도와 낮은 우울 수준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2020년 미국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일정 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삶의 목적의식과 긍정적 정서가 높고 우울 증상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연구만으로 자원봉사가 우울증을 직접 치료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남을 돕는 행동을 한 뒤 긍정적인 감정과 활력을 경험하는 현상을 흔히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부르는데, 마라토너가 극심한 피로속 에서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와 유사하다. 움직이고, 사람을 연결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보면 봉사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첫째, 봉사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집 밖으로 나서게 한다. 우울할수록 활동은 줄어들고, 활동이 줄어들수록 다시 우울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정기적인 봉사활동은 이 고리를 끊고 흐트러진 생활의 리듬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봉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함께 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특히 은퇴 후에는 직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인간관계가 크게 줄어든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것과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우리의 마음을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 된다. 셋째, 무엇보다 봉사는 삶의 의미와 자존감을 되찾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어한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 “이제 내가 할 일이 없다”거나 “나는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때 나의 시간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삶에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의미를 되찾게 한다. 나눔은 나 자신의 삶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 ‘나눔’이라고 하면 흔히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통한 나눔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봉사자는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생활의 활력을 얻으며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남을 위해 내민 손이 어느새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어쩌면 이것이 나눔이 가진 힘인지도 모른다. 내가 건넨 작은 도움으로 상대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고, 그 경험이 다시 내 삶을 움직이는 것. 그렇게 서로의 삶에 힘을 보태며 함께 건강해지는 것. 이런 나눔이 우리 고대 교우들의 삶 속에서 도 자연스럽게 피어나기를 꿈꿔 본다.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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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복지 사각지대 향하는 고우봉사회의 약속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제 막닻을 올린 고우봉사회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발달장애인부터 다문화가족 자녀, 희귀질환·중증난치질환자, 자립준비청년, 학교 밖 청소년까지. 지원의 빈틈이 남아 있는 현장을 세심하게 찾아 교우사회의 전문성과 자원을 연결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지원망을 만드는 것. 고우봉사회가 그리는 나눔의 청사진이다. 글. 이현화 수석기자, 정윤서 기자여자교우회와 성북구 관내 발달장애인 시설 봉사우리 사회의 나눔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미처 닿지 못하는 곳도 있다. 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어도 일상의 필요를 모두 채우기 어렵고, 학교나 보호체계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홀로 서야 하는 이들도 있다. 승명호 교우회장은 최근 <고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교우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바로 ‘나눔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라며 “안으로 결속하던 힘을 밖으로 돌려 우리 사회 전체와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교우회의 진정한 사명”이라 밝혔다. 고우봉사회는 출범과 함께 발달장애인, 다문화가족 자녀, 희귀질환·중증난치질환자, 자립준비청년, 학교 밖 청소년을 주요 지원영역으로 삼았다. 지원 영역을 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고우봉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교우사회가 가진 자원이다. 의료와 교육, 법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부터 단과대·직능·지역교우회가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까지, 이미 고대 안에는 다양한 나눔의 경험과 역량이 축적돼 있다. 고우봉사회는 이를 한데 모아 필요한 현장에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고자 한다.첫걸음은 발달장애인을 향한다. 보건복지부 ‘2025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전국 등록 발달장애인은 28만 8,324명이다. 서울에는 3만 7,857명이 거주하며, 모교가 자리한 성북구에는 1,544명, 인접한 동대문구에는 1,223명의 발달장애인이 등록돼 있다. 특히 학령기를 지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돌봄과 자립 지원뿐 아니라 돌봄을 이어가는 가족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발달장애인 지원에는 여자교우회가 힘을 보탠다. 오랫동안 충북 제천의 발달장애인 복지시설 ‘세하의 집’과 인연을 이어 온 여자교우회는 지난 6월 고우봉사회와 처음으로 합동 봉사에 나섰다. 향후에는 모교가 자리한 서울 성북구와 인접 동대문구 관내 발달장애인 시설로 지원 대상을 넓힐 계획이다. 성인 발달장애인 돌봄과 부모 심리지원을 강화하고, 단발성 도움을 넘어 발달장애인의 경제적 자활과 사회적 네트워크 확대를 돕는 지속 가능한 봉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참고자료 보건복지부 「2025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서울특별시 「2025 장애인
현황(장애유형별)」(2025)여성가족부 「2024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5년 생활 속 질병·진료행위 통계」보건복지부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성평등가족부 「2025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교육부터 법률·의료까지, 모교 의료원과 희귀질환 환자 지원 추진다문화가족 자녀에게는 교우들의 교육·법률 전문성을 연결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는 31만 3,070명으로, 이 가운데 9~24세가 19만 1,281명에 이른다. 다문화가족 자녀의 고등교육기관 순취학률은 61.9%로 전체 국민 74.9%보다 13.0%p 낮았다. 고우봉사회는 법조인교우회와 사범대교우회 등과 연계해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한편, 우수한 다문화가족 자녀를 ‘차세대 고대인’으로 발굴·육성하는 인재양성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희귀질환·중증난치질환자에게는 모교 의료원과 고대교우의료봉사회의 의료 전문성을 연결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5년 생활 속 질병·진료행위 통계’에서는 2024년 18세 이하 희귀·중증난치질환 진료 환자가 5만 4,201명으로, 2020년보다 2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우봉사회는 이 가운데 미성년 환자를 우선 지원하고 고려대의료원과 우리아이들병원 등 의료자원을 연계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계획이다.고우봉사회 3호 기부자인 김태훈(경영03) 포르투갈 교우회장의 사연은 희귀질환자가 겪는 어려움을 돌아보게 한다. 재학 중이던 2003년 희귀암 진단을 받은 김 교우는 수술과 항암치료 후 학교로 돌아왔지만, 2006년 암이 재발하면서 치료비 부담까지 떠안았다. 당시 사연을 접한 승명호 교우회장이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고, 김 교우는 무사히 치료를 마쳐 완치 판정을 받았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난 7월, 그는 고우봉사회에 3,000만 원을 기부했다. 김 교우는 “재학 시절 선배님으로부터 받은 기적 같은 은혜와 사랑을 이제는 모교와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성남분당교우회와 성남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지원은 경제적 지원 68.2%, 주거 지원 20.2%였으며 진로상담·취업, 건강 지원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우봉사회는 보호종료 후 주거와 생활비부터 진학과 취업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교우사회가 가진 경험과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학교 밖 청소년에게는 진로 탐색과 학업 지속을 위한 지원이 중요하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5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서는 42.4%가 진로 계획을 세우는 데, 41.2%가 자신의 진로 적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학교를 그만둘 당시 검정고시를 준비할 계획이었다는 응답은 70.7%, 대학 진학 준비는 35.7%였다. 따라서 학교 밖에서도 배움을 이어 가려는 청소년들이 학업을 지속하고 자신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지원은 이미 현장에서 시작됐다. 고우봉사회는 9월 8일 성남분당교우회와 함께 성남시청소년청년재단에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교육용 교재를 전달하고 상생협약을 맺었다. 고우봉사회 2호 기부자인 구승회 교우의 기금 1,000만 원과 황영오(전자공81) 성남분당교우회장의 기부금이 힘을 보탰다. 지역교우회와 지역 전문기관을 연결해 필요한 지원을 찾아가는 방식은 고우봉사회가 앞으로 넓혀 갈 사회공헌 모델 가운데 하나다.경기 포천시 소홀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진료 중인 교대교우의료봉사회충북 제천의 ‘세하의 집’에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씨앗을 뿌리는 여자교우회모교 운초우선교육관에 모인 쿠쌤 멘토와 멘티들흩어진 나눔을 모아 더 큰 힘으로, ‘나눔의 기부 릴레이’ 지속고우봉사회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는 교우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약정자를 포함해 1호부터 9호까지의 기부자가 ‘나눔의 릴레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참여는 고우봉사회가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나갈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여자교우회가 쌓아 온 발달장애인 봉사 경험, 법조인·사범대교우회의 전문성, 모교 의료원과 고대교우의료봉사회의 의료 역량, 지역교우회의 현장 네트워크. 고우봉사회가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은 어쩌면 ‘나눔’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교우사회 곳곳에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나눔을 실천해 온 수많은 교우가 있기 때문이다.한윤상 교우회 수석부회장은 “필요한 곳을 더 세심하게 찾고,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교우와 연결하는 플랫폼이 고우봉사회의 역할”이라며 “가까이는 성북구와 동대문구에서 시작해 지역과 직능, 단과대와 해외교우회까지 그 연결망을 넓혀 흩어져 있던 고대인의 선의를 하나의 지속 가능한 힘으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고대 교우 봉사단체 주요 활동 ♥고대교우의료봉사회 1998년 모교 의대 여자교우회에서 시작해 2014년 정식 출범했다. 지금까지 49곳에서 교우 7,074명이 참여해 노인·취약계층, 다문화가정,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쪽방촌·홈리스 등 1만5,591명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여자교우회 제천의 발달장애인 재활시설 ‘세하의 집’과 40년 인연을
이어 왔다. 도시농부 화분 키트를 제작해 독거 어르신에게
전달하고, 발달장애인들과 둘레길 걷기와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고대경제인회 1979년 창립 이후 연 2회 봉사활동을 이어 오며, 독거 어르신과 노숙자를 위한 점심 제공과 의료지원, 산동네 연탄 배달, 한부모 가정과 다문화 가정, 농산어촌 아동 지원 등 생활 밀착형 봉사를 펼쳤다. ♥AMP 크림슨 봉사단 2021년 11월 창단한 교육봉사단으로,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학생들의 진로·진학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부터 매년 5차례 강원 고성 지역을 찾아 학생 한 명과 3년간 동행하는 일대일 대면 진로진학 캠프를 운영하며, 학년별 진로·진학 컨설팅과 학업계획 수립 등을 돕는다. ♥85봉사단 2016년부터 남산원, 신아원, 보훈병원에서 정기 봉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국립묘지와 4·19 묘역, 창경궁 등에서 환경 정리 활동을 펼쳤다. 연탄 기부와 배달, 바자회, 배식 등 자선 분야에도 폭넓게 참여하며 외부 단체와의 연계를 넓혀 가고 있다. ♥87나누미 2018년부터 홀수 달 첫째 토요일마다 서울 강서구 장애인 거주시설 ‘샬롬의 집’에서 청소와 주방 정리, 식사 준비 등 생활 지원 봉사를 이어 오고 있다. 매년 김장 지원을 진행하고 가정폭력 피해쉼터에 기저귀를 후원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혀 왔다. ♥95동기회 지난해 입학 30주년을 맞은 95학번 동기회도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9월 19일에는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지역축제 ‘그라나다 한마당’ 봉사에 참여하고, 10월 30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멘토링에 나선다. 동기회가 가진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나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성남분당교우회 지역사회 공헌을 목표로 조직돼 경기도 분당노인종합복지관에서 약 1,200명분의 배식 봉사와 홀몸 어르신 도시락 배달을 이어 오고 있다. 여주소망교도소 연주 봉사와 복지관 기부금 후원, 성남시 학교밖지원센터 지원 등으로 활동을 확대 중이다.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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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 사용설명서다양성이 공존하는 ‘유연함’이 인문학의 기본이라면, 녹두문대의 DNA는 저마다 뚜렷하기 그지없는 개성 아닐까. 창립멤버 4인방부터 학부로 승격한 심리학부까지, 총 15개 학과의 전설을 모아봤다. 80년의 긴 역사만큼 켜켜이 쌓인, 어쩌면 문과대인도 몰랐던 우리들의 이야기.글. 이현화 수석기자, 조영서·박국경·정태서·서윤주·주가윤·김수린 기자도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고려대학교박물관1. 국어국문학과꺾이지 않는 붓으로, 막강 국문(1946~)특징 문필의 힘으로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모교 문화예술운동의 기수주 출몰장소 민족문화연구원, 서관 농구장추억 버튼 인권환 교수가 모교 야구부장을 맡은 1980년대 어느 날, 연대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에 가라며 휴강을 하곤 했다.국어국문학과는 ‘민족의 긍지, 한국의 미래’를 내걸고 한국학 연구를 이끌어 왔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설립을 주도했고, 국내 최대 규모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편찬을 이끌며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기록해 왔다. 전통적으로 고대문학회, 고대극회, 고대신문 등 모교 문화예술운동의 중심에도 늘 국문과가 있었다. 집회가 금지됐던 1982년 가을, 서관 농구장(현 국제관 자리)에서 열린 민속부 탈춤 공연은 국문과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운동권 학생과 사복경찰이 한데 섞여 박수를 보냈고, 공연 후 뒤풀이는 어김없이 시위로 이어졌다. 1984년 강릉 수학여행에서 처음 등장한 ‘꺾이지 않는 붓으로’란 말처럼, 그들의 붓은 시대 앞에서 한번도 꺾인 적이 없었다.자랑거리 1950년대 시인 조지훈·소설가 정한숙 교수부터 1980년대 김인환·송하춘·서연호·김흥규·최동호 등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아 시인·작가·평론가가 다수 배출됐는데, 이들은 ‘고대 국문과 사단’이라고 불렸다.알고 보니 국문과 방송계에서도 크게 활약한 국문과. <사랑이 뭐길래> 김수현(61)· <도시의 흉년> 이금림(66), <마지막 승부> 손영목(85) 작가, <전원일기>의 유길촌(58)·<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주철환(74) PD, 이규항(57)·이계진(66)·송경철(82·제35대 교우회보 편집위원장) 아나운서도 국문과 출신.2.영어영문학과세계와 한국을 잇다, 자유 영문(1946~)특징 서로 다른 관점과 개성이 만나는 ‘취향존중러’주 출몰장소 중도관, 다람쥐길추억 버튼 서지문 교수의 버지니아 울프 강의. 그는 <자기만의 방>을 읊으며 매번 똑같은 구절에서 눈시울을 붉혔다.영어권의 언어와 문학을 한국의 지식으로 바꿔 온 통로였던 영어영문학과. 오늘날에는 영미문학과 영어학을 넘어 젠더·인종·계급, 대중문화와 디지털 매체까지 탐구한다. 전통적으로 타과 학생의 수강률이 높아 자연스레 다양한 배경과 생각이 모이는 ‘마중물’이 됐고, 그렇게 서로 부대끼다보니 다양함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동시에 한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끝까지 따지는 ‘깊이 읽기’가 고대 영문과의 특징이다. 김우창 교수에게 1학년 교양영어를 들었다는 모 교우는 “영문과 학생이라면 한 시간에 원서 30쪽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스승의 조언을 아직도 기억한다.자랑거리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은 영문과 이인수 교수와 제자 김종길(46) 교수다. 한국작가회의는 김종길 교수를 ‘2026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으로 선정했다.알고 보니 영문과 민영빈(51) 교우는 재학중 영자신문 를 창간하고 훗날 시사영어사를 세웠다. 그가 설립한 국제교류진흥회(ICF)는 2012년부터 4년간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연구를 지원했는데, 이 시기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이 탄생했다. 아주경제 곽영길(영문74) 회장은 현재 언론인교우회장을 맡고 있으며, 2026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했다.3.철학과인간해방의 머리, 진리 고철(1946~)특징 모든 일에 ‘왜?’를 붙이는,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근본탐구자주 출몰장소 선배 자취방, 학생회관 매점추억 버튼 권창은 교수의 종이컵.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통렬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반전 수업’과 함께, 수업 내내 홀짝이던 종이컵의 내용물은 영원한 미스터리.모교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 전체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 오렌지족부터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위해 삶을 바칠 듯한 학생까지 다양한 모습이 공존했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하고, 철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다른 학과에 비해 사변적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늘 심각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버스가 끊긴 밤에는 선배 자취방에 모여 새벽까지 자유롭게 생각을 나눴고, 다음 날에는 학생회관 매점 라면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인간과 세계의 현상과 근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희열을 경험한다. 다만, 사유가 현실과 괴리되면 가치를 잃을 수 있기에,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갖춘 지혜 또한 놓치지 않았다.자랑거리 문과대학과 함께 창설, 초대 문과대학장(이종우 교수)을 배출한 ‘터줏대감’. ‘한국철학’이란 장르를 개척한 한국 유학·성리학의 대가인 윤사순(57) 교수도 ‘고철’출신. 알고 보니 철학과 홍지웅(73) 교우는 1986년 출판사 열린책들을 설립해 한국 번역문학 출판의 지평을 넓혔다. <장미의 이름>, <개미> 등 밀리언셀러를 7번이나 만든히트메이커. 아들 홍예빈(03) 교우 역시 과 후배다. 2025 사학과 해외 답사4.사학과마르지 않는 진리의 물줄기, 맹호 사학(1946~)특징 문과대의 탄생을 함께한 모교의 정신적 아지트주 출몰장소 국내외 유적지추억 버튼 신승하 교수의 중국사 수업. 도연명의 <귀거래사>, 제갈량의 <출사표> 전문을 한문으로 외워 쓰면 만점을 줬다.한국사회의 민주 공정의 발자취에 큰 공헌을 해온 곳. 김준엽 교수는 광복군 출신으로 사학과 초기 발전 방향성을 정비하고, 1987 개헌 당시 새 헌법에 민주주의적 색채를 덧입혔다.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학문의 탐구가 현 사회의 문제를 담아내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기조를 근본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학과의 역사도 한국 현대사의 발전 단계마다 역사학이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학문적 응전을 보여 준다. 1946년 ‘사학과’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뒤, 1980년대 전문성과 시대의식을 높이기 위해 한국사학과·동양사학과·서양사학과로 세분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의 사학과는 동양사학과와 서양사학과가 통합된 것인데, 학문의 글로벌화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융합적 역사학으로 발전한 것.자랑거리 서적 자료를 벗어나 역사의 장소에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매년 진행하는 춘계 국내답사와 하계 해외답사. 2025년 하계 해외 답사에서는 몽골을 방문해 현지 유목민 숙소에 머무르기도 했다.알고 보니 사학과 대한민국 연극사에도 자취를 남긴 사학과. 손숙(63) 명예교우는 고대극회 출신이며,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을 5회 수상했다. 배우자 김성옥(56) 교우 또한 <임꺽정>, <태조 왕건> 등으로 알려진 유명 배우. 5.한국사학과역사의 주인, 한국사 대동반(1946~)특징 역사의, 역사에 의한, 역사를 위한 ‘역사 바보’주 출몰장소 학생회관, 제기시장(형제집, 대성집 등)추억 버튼 춘계와 추계, 1년에 두 번 가는 문화유적답사. 답사기간 숙소에서는 쌓여가는 술잔만큼 사제간·학우간의 정이 두터워지는데 이를 ‘밤답사’라 부른다.‘역사의 주인’이란 구호는 한국사학과의 자부심이다. 스스로를 ‘韓國史 大同班(한국사 대동반)’이라 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 ‘온 세상이 함께 번영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뜻처럼, 한국사만큼은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최고’임을 자부한다. 그 배경에는 유연한 학풍이 있다. 사료와 논리가 있다면 존경하는 스승의 학설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실제로 K교수가 저서 초고를 대학원생들에게 뿌리며 “씹어라!” 했다는 일화, 지도교수의 학설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모 대학원생의 박사논문이 통과했다는 일화 등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정문 앞 제기시장에서 닭발을 뜯으며 “한국사학과 학생들은 부모님과 싸우고 입학한 역사 바보들”이란 자학개그를 날리다가도, 어느새 자체 세미나를 열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마는 그들이다.자랑거리 해방 이후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하고 한국 민족의 기원, 고대 국가 형성, 토지사유론, 분단시대론 등 새로운 연구 의제를 제시하며 한국사학계를 이끌어 왔다. 학부 졸업생의 대학원 진학률이 20~30%로 매우 높은 편.알고 보니 한국사학과 최광식(사학72) 교우는 ‘문화유산 행정의 정점’을 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교에서 학·석·박사를 마치고 고려대박물관 관장-국립중앙박물관장-문화재청장-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커리어의 주인공.6.심리학부내가 사랑한 싸이코, 호기 심리(1959~)특징 다학제적 접근을 중시하는 학문적 허브주 출몰장소 쥐방, 학생생활연구소추억 버튼 과거 교양관에 있던 학생생활연구소에서 데워 먹던 놋쇠 도시락. 학생생활연구소의 소장님이 심리학과 교수님이었기에, 겨울이 되면 난로가 설치돼 있던 학생생활연구소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사랑방으로 변했다.고대의 연인이 ‘엘리제’라면, 심리학부의 연인은 ‘프시케(Psychē)’가 아닐까? 프시케는 심리학(Psychology)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로, ‘마음’ 또는 ‘정신’을 뜻하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심리학, 특히 모교 심리학부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종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자연과학적·사회과학적·인문학적 접근을 통합적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모든 단과대학과 공통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함으로써 나와 내 곁의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탐구할 수 있다. 다학제적 접근, 깊이 있는 통찰을 배운 모교 심리학도들은 임상과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자랑거리 전국의 모든 심리학과 중 가장 먼저 학부로 발전한 심리학부. 유일하게 생물실험실인 ‘쥐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알고 보니 심리학부 리디아 고(고보경·15) 교우는 2015년 최연소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골퍼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은메달, 2020년 도쿄 올림픽 동메달,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하며 올림픽메달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7.사회학과사회악과 싸운다, 해방 악칠(1962~)특징 나쁜 사회의 ‘사회악’에서 해방한다주 출몰장소 서관 307호 최재석·이춘계 강의실, 학교 앞 막걸리집추억 버튼 전설적인 ‘베버리안’ 이순구 교수. “막스 베버의 글은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논문 한 편을 한 학기 동안읽었지만, 진도는 20%에 그쳤다.권위주의 시대부터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사회학과는 비판과 성찰의 정신을 지키며 대학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1980년대 초 사회학과 학생들은 거의 매일 시위에 나섰고, 전경에 쫓겨 학교로 돌아와 저녁이면 최루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학교 앞 막걸리집에 모여 울분을 안주 삼아 노래를 불렀다. 이 모습을 본 기성세대는 정권을 괴롭히는 사회학과를 ‘사회악과’라 불렀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이름을 부정하지 않고, “나쁜 사회에는 사회학이 사회악이 되어야 한다”라며 유쾌하게 되받아쳤다. 이것과 학부제 시절 행정반인 ‘7반’이 결합해 ‘악칠반’이라는 별칭이 탄생한 것. 개인의 이익보다 대학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공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는 지금도사회학과를 대표하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자랑거리 재직 중에는 교육으로, 퇴임 후에는 연구로 학과에 기여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까지 기부한 최재석 교수. 학과는 그 뜻을 기려 서관 307호를 ‘최재석·이춘계 강의실’로 명명했다.알고 보니 사회학과 김남정(92) 동원그룹 회장은 졸업 후 참치캔 공장 생산직으로, 경동시장과 청과물시장을 누비는 영업사원으로도 일했다. 현장에서 시작한 사회학도는 현재 수산·식품·소재·물류를 아우르는 동원그룹의 회장이 됐다.백일홍 꽃과 함께8.독어독문학과여러모로 고독해, 해방 독문(1962~)특징 새 세상을 여는 고독한 사람들주 출몰장소 다다이즘과 쉬르레알리즘, 장백서점추억 버튼 김승옥(63) 교수님이 외우게 한 “Wenn die Haifische Menschen wären….”독문과에는 오래된 언어유희가 있다. 바로 ‘고독한 독문과’. 혼자 사색하는 성향이 강해 고독(孤獨)하지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고독(高獨)이 공존한다. 사회과학전문서점인 장백서점의 난롯가에 둘러앉아 치열하게 지성을 논하고, 일명 ‘다다’에서는 돈가스와 맥주를 곁들이며 청춘을 불태웠다. ‘시급 천원+점심제공’ 조건에 끌려 장백서점 알바를 시작한 C교우는 1989년 겨울,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서점주 여동생)를 만나기도. 이들은 고독을 즐기다가도 일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냈다. 학부 시절 “독일어 빼고 다 잘하는 독문과”라는 농담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독일어를 마주칠 때마다 그 시절의 고생이 새삼 고맙다.자랑거리 2013년 창과 50주년을 맞아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독문과교우회 장학금’, 한 달에 한 번 재학생이 졸업한 선배들을 인터뷰하는 콘텐츠 ‘월간 독문’.알고 보니 독문과 박기석(69) 교우는 해외 출장에서 접한 디즈니랜드에서 영감을 얻어 1988년 (주)시공테크를 창업, 대한민국 전시문화 산업을 개척했다. 온·오프라인 교육산업을 선도하는 아이스크림에듀와 아이스크림미디어도 계열사다. 2025년 에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했다.9.불어불문학과오늘도 난 삐딱하게, 자주 불문(1962~)특징 주류에 순응하지 않고 삐딱하게 세상을 되묻는 지성들주 출몰장소 프랑스 문화원, 서관 2층, 모교 앞 주점추억 버튼 프랑스어 연극 공연을 올리고자 사르트르의 <알토나의 유폐자들>을 번역하던 1979년 여름방학. 10·26 사태로 인한 집회 금지로 끝내 무산됐지만, 낮에는 서관, 밤에는 모교 앞 주점에서 쌓았던선후배 간의 끈끈한 우정은 지금까지 이어진다.불문과의 정체성을 압축한 문구가 하나 있다. 문과대 창립 60주년 학과별 전시회 때 내걸었던 ‘전공 불문(專攻 不問)’이다. 국내에 프랑스계 기업이 많지 않고 프랑스어권 진출도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졸업생들은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저마다의 길을 개척해 온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뜻이다. 이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진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데카르트 이후 모든 사물과 사상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비판하는 프랑스의 지적 전통처럼, 기존의 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역시 학과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자랑거리 국내 어문학계가 번역을 학문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모교 불문과의 공이 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사학(레토릭), 번역학, 퀘벡학, 의료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회 창립을 주도했고, BK21 등 한국연구재단 연구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알고 보니 불문과 황정산(78) 교우는 당시 뜨거웠던 민족문화의 영향으로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시인이자 비평가가 됐다. 그의 형 황현산(65) 교우 역시 모교에서 학·석·박사를 마치고 문학평론가이자 모교 교수로서 후학을 길러냈다. 불문과가 배출한 대한민국 유일의 ‘평론가 형제’다. 신근수(65) 교우는 파리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소설 <우리 좋은 날>로 등단했다.10.중어중문학과호쾌한 대륙의 기상, 열혈 중문(1971~)특징 호쾌한 ‘대륙의 기질’이 흐르는 사람들주 출몰장소 중국어 사성이 울려 퍼지는 도서관 열람실추억 버튼 동기들과 중국어 잡지를 강독하고, MT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 쏘다니던 자유로운 학창 시절1972년 ‘중국어문학과’로 문을 연 중어중문학과는 냉전의 장막 너머 중국을 가장 먼저 바라본 학과다. 광복군 출신 김준엽 선생을 비롯해 중국 문제에 관심을 둔 선각자들이 창설을 이끌었다. 학생들은 중국어뿐 아니라 언어학과 고전·현대문학, 문화를 폭넓게 공부하며 중국과 중국어권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한다. 중국어가 통하는 무대는 중국 대륙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만과 홍콩, 동남아시아를 넘어 세계 곳곳의 중국어 문화권을 이해하는 시야까지 함께 키운다. 네 개의 성조를 소리 내어 익혀야 했던 탓에, 과거 도서관 어디서 든 중문과 학생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었다.자랑거리 1977년 시작된 중국어 원어연극. 1988년 ‘비상(飛上)’, 2012년 ‘탈’로 이어지며 전공 연마와 학생 자치의 전통이 됐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가 1995년 펴낸 <중한대사전>의 실제 편찬 작업을 주도했으며, 오늘날 인터넷 중한사전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국내 중국어문학 연구의 기반을 넓혔다.알고 보니 중문과 가수 겸 배우 소이(김소연·98)는 1999년 그룹 티티마로 데뷔한 뒤 밴드 라즈베리필드의 싱어송라이터, 배우와 영화감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언어와 문학을 공부한 중문학도의 감각이 대중음악과 영화라는 또 다른 언어로 이어진 셈이다.11.노어노문학과소리없이 강하다, 혁명 노문(1973~)특징 싸울 때도, 공부할 때도 열정적주 출몰장소 마마집, 상하당구장추억 버튼 까그다학파 vs 꼬그다학파. 원로교수 세 분의 러시아어 ‘когда(언제)’의 발음을 두고 벌어진 논란인데, 둘 중 하난 사투리다.1974년 국내 두 번째로 문을 연 노어노문학과. 공산권 연구의 필요성을 내다본 김준엽 모교총장이 학과 설립을 주도했다. 창과 이듬해 긴급조치 7호로 모교에 군 병력이 주둔한 상황에서, 적성국 소련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했다는 사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16년 뒤 한·소 수교가 이뤄지며 러시아 전문가 수요가 폭발했으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셈. 혁명노문답게 1980년대 노문과 학생들은 학생운동에도, 공부에도 열정적이었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와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이 이런 학풍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맨날 놀아서 노는 과’라고 놀려도 피식 웃고 마는 이들도 참기 힘든 것이 있으니,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음이다. 원어로는 딸스또이, 다스따옙스끼에 가깝다니 참고하길.자랑거리 1987년 국내 최초·최대 노한사전 편찬(87학번 이전은 러영·러일사전으로 공부), 2007년 국내 최초 우한(우크라이나-한국어)사전 편찬, 2026년 재외공관장 4명 동시 임명.알고 보니 노문과 외교가에서 활약하는 노문과 출신이 많지만, 허승철(77) 교우는 이력이 독특하다. 2007년 모교 교수로 재직 중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내고 돌아와 정년퇴임, 명예교수로 있던 중 올해 다시 루마니아 대사로 발령됐다.12.일어일문학과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자주 일문(1982~)특징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끝내 학문으로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탐구자들주 출몰장소 청산·MK문화관, 서관 103호추억 버튼 독특한 패션을 하고 다니면 으레 ‘일문과’라는 소문이 돌던 그 시절한국에서 일본을 가장 깊고 넓게 들여다보는 학문적 전초기지. 일어일문학과에는 오래전부터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학생들이 모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정식으로 개방되기 전부터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던 이들이었으니 취향도 패션도 남들보다 한발 앞설 수밖에. 일문과 학생들은 자신의 취향을 언어와 문학, 문화와 사회에 대한 연구로 발전시켰다. ‘덕후’라 불러도 좋을 만큼 깊이 파고든 지식은 때로 학술적 성과로 이어진다. 학부생이 한국일본학회에서 직접 발표하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주저자로 논문을 싣기도 한다. 대학원에서도 전통적인 문학 연구와 함께 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늘고 있다. 이곳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 파고드는 ‘덕력’도 어엿한 연구력이 된다.자랑거리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에도 일본 관련 학과가 없는 만큼, 일본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책임감도 남다르다. 부설 글로벌일본연구원은 국내 대학의 일본 연구기관 중 유일하게 전용건물을 갖췄다. 총 281권의 자료·연구총서를 펴냈으며, 세계 유일 SCOPUS 등재 일본어 기반 국제학술지 <과경/일본어문학연구>도 발간한다.알고 보니 일문과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강원식(94) 교우는 <슬램덩크> 원서로 쌓은 실력으로 2년 만에 전공필수 과목을 모두 이수했다. 이후 일본 패션지 <맨즈 논노>를 파고들며 패션에 눈을 떴고, 탐스슈즈와 캐나다구스 등 유명 브랜드들을 국내에 소개했다.13.서어서문학과자유로운 날 누가 말려, 광호 서문(1982~)특징 자유로운 영혼의 집합소주 출몰장소 서관 앞, 종로 어학원추억 버튼 중남미에서 교환학생과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가 연구실 문을 열자마자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베소(양볼 인사)’.서문과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은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만 보고도 “저 친구, 서문과구나” 하고 이들을 알아본다는 것. 한때 어문 계열을 통합 선발하던 시절, 취업에 유리해 가장 인기가 높던 영문과 대신 서문과를 택한 이들은 스페인·중남미 특유의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서에 이끌린 사람들이었다. 이런 학생들이 모이며 자연스레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질이 만들어졌고, 이후 스페인과 중남미로의 교환학생 경험을 거치며 그 색깔은 더욱 짙어졌다. 이들이 정의하는 ‘세계’는 영어권에 갇혀있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어권이라는 또 다른 창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완성해 간다.자랑거리 전 세계 곳곳에서 마주치는 서문과 출신 네트워크. 모교 국제처장(송상기·86)부터 문과대학 교우회장(권영진·86), 아나운서(김현욱·92, 이슬기·05), 필리핀(이상화·87)·니카라과(조영준·88) 대사까지, “여기에도 서문과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알고 보니 서문과 김민경(09) 교우는 단순히세계문학전집이 좋다는 이유로 민음사에 입사해 편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 퀴즈온더블럭> 등에 출연할 정도로 ‘출판계 인플루언서’로 활약 중.약 18만 점의 전통 문헌을 소장하고 있는 고려대도서관 '한적실'14.한문학과동방불패를 넘어 세계불패로, 불패 한문(1986~)특징 난파선 탐험가. 한문을 번역한다는 것은 마치 난파선의 보물을 건져올리는 일과도 같다.주 출몰장소 미번역 고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추억 버튼 창과 초기, 이동환 교수가 내건 졸업 요건은 ‘사서 암송’. 1기(87학번) 졸업을 앞두고 항명이 터져나왔으니, ‘암송과 졸업논문 작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전원이 졸업논문을 선택하며 ‘사서 암송’은 그렇게 전설이 됐다.국내 학부 중 단 7개밖에 없는 소수 학문인 한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장금>, <왕의 남자>, <사도>, <왕과 사는 남자>….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사극은 한문학과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등의 역사서를 비롯한 다양한 한문 저술들이 번역되고 데이터베이스화돼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이런 명작들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 졸업생들은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도 한문학과는 꾸준한 번역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 소스의 보고를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자랑거리 근래 디지털인문학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소버린 AI(sovereign AI) 시대 한국학의 역할 창출을 위한 융합 연구, AI 모델의 한시 향유 연구, 과거시험 자료DB 구축 등 연구 방법과 시야의 확장을 위한 혁신을 계속해 나가는 중이다.알고 보니 한문학과 김언종 명예교수가 ‘한잘알:한자잘알려드림’이라는 구독자 1만 명의 유튜브 계정을 운영 중이다. 2024년 이준기(19) 교우가 재학 중 불교방송 아나운서로 합격하며 방송계에도 인재를 배출했다. 15.언어학과내가 제일 잘 나가, 자주 언어(1988~)특징 나는 문과인가 이과인가주 출몰장소 캠퍼스 내 잔디밭추억 버튼 공강시간이면 잔디밭에 앉아 낮술을 즐기던 ‘들놀이’문과대학에서 가장 늦게 생긴 학과 중 하나. 적은 인원만큼이나 호승심(好勝心)도 강했다. “다른 학과에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새로배움터에서는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학과’를 자처했고, 공강이면 잔디밭에 모여 낮술을 즐기는 ‘들놀이’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어학과의 진짜 정체성은 따로 있었다. 언어와 컴퓨터의 만남. 전산언어학과 자연어처리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언어와 컴퓨터의 접목을 목표로 출범한 학과였다. 오늘날 AI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언어학과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히 언어학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수학적·논리적 사고다. 언어를 하나의 체계로 분석하는 현대 언어학의 특성 때문이다. “수학이 싫어서 문과에 왔는데 언어학과에 와 보니 수학과 비슷했다”는 학생들의 농담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자랑거리 1980년대 중후반부터 AI 시대를 미리 준비해왔다. 언어 데이터를 다루는 강점을 바탕으로 의학·법학·정치학·북한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 연구 중.알고 보니 언어학과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우즈베키스탄 미녀’로 사랑받았던 방송인 구잘 투르수노바(07). 2012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 현재 구독자 31만 명의 유튜브 채널 ‘구잘TV’를 운영하며 여행과 일상, 한국 생활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도움 주신 분안정오(독문76), 김선경(불문78), 김철규(사회81), 이영훈(불문81), 이상우(국문82), 이진한(사학82), 장동천(중문84), 김용현(독문84), 김진규(노문85), 정병호(일문85), 송상기(서문86), 전용호(국문86), 고영건(심리89), 구본현(독문89), 송혁기(한문89), 최용(독문89), 최준식(문학碩91), 권영우(철학93), 김한웅(식품공94), 송상헌(언어96), 김정민(일문97), 안선영(영문98), 조민영(영문03), 장성현 영문과 교수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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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심장과 실천적 지성으로문과대학의 ‘내일을 만드는 힘’20년 전 ‘인문학의 위기’를 말했던 문과대는 이제 AI 시대 대학의 역할을 다시 묻고 있다. 그 답은 모교가 80년 동안 길러온 문과대학의 DNA, 그리고 새롭게 써 내려갈 다음 100년 속에 담겨 있다.글. 이현화 수석기자, 주가윤 기자 사진. 정태서 기자 도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 상징색 흰색 • 엠블럼 서관 시계탑과 성취와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수의 조합문과대학 알쓸신잡미목일명 ‘미친 목련’. 칼바람 부는 3월 초 홀로 꽃을 피워 붙은 별명이다. 원인은 컴퓨터실 냉난방 실외기의 열기로 밝혀졌지만, 실외기를 옮기고 나무를 백목련으로 교체한 뒤에도 여전히 일찍 피는 이유는 미스터리다. 1회 졸업생1950년 5월 25일, 첫 졸업생 23명을 배출했다.(국문과 8명·영문과 6명·철학과 6명·사학과 3명) 문과대는 좌파?본관을 중심으로 법대·경영대·사범대를 묶어 ‘우파’, 문과대·정경대를 묶어 ‘좌파’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 3년 만에 울린 파랑새1961년 6층 건물로 위용을 드러낸 시계탑은 한동안 ‘모형시계’였다. 일부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느라 1964년 7월에야 첫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 서관의 상징인 시계탑은 김성곤(상학30) 쌍용그룹 창업주이자 제9~11대 교우회장이 800만 환(현재 가치 약 30억 원)을 희사해 세운 것이다. 석탑모교를 상징하는 ‘석탑’이란 표현은 극예술연구회 출신 이제교(영문48) 교우가 고대신문에 발표한 시 <석탑의 불사조>에서 유래했다. 고그와트수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친 탓에 내부구조가 복잡하다. 학생들은 움직이는 계단이 등장하는 호그와트에 빗대 ‘고그와트’라 부르기도.
AI 시대, 다시 인문학을 묻다“인문학은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적·문화적 파장에 대해서 성찰하고 과학적 탐구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2006년 9월 15일, 모교 문과대 교수 121명이 발표한 <인문학위기 극복 촉구 인문학 선언문>은 마치 AI 대전환 시대를 예견한 듯하다. 오늘날 AI는 검색과 번역, 요약은 물론 글쓰기와 이미지 생성까지 인간의 지적 활동을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AI는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류가 축적해 온 방대한 언어와 사유를 학습해야 작동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AI 시대가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하는 것일까, 오히려 인문학을 다시 호출하는 것일까.20년이 흐른 지금, 이희경(영문87) 문과대학장은 더 이상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인문학은 시대에 따라 흥망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학문이죠. 인문학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김진규(노문85) 노어노문학과 교수에게도 인문학의 위기는 ‘상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인간 존재에 관한 본연의 질문에 정직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법고창신, 온고지신의 시간은 늘 다시 오거든요.” 김용현(독문84) 독어독문학과 학과장은 인문학이 아닌 ‘대학의 위기’를 말한다. “AI 발달로 취업에 유리하다고 여겼던 전공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각종 기관과 기업이 추구하고 제공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큽니다.”실제로 모교는 지난해 개교 120주년을 맞아 인공지능(AI)과 인간지능(HI)의 융합을 핵심으로 하는 ‘Next Intelligence University’를 미래 비전으로 선포했다. AI를 넘어 인간의 질문과 통찰을 키우는 교육으로 대학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중심에는 인문학이 있다. (왼쪽부터) 문과대학 이영제 연구부학장, 이희경 학장, 정유진 기획부학장, 채성식 교학부학장 문과대학, 고려대학교의 심장“영어에 ‘hot head’라는 표현이 있어요. 우리 문과대인의 정체성에 딱 어울리죠. 불의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성찰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거든요.” 이희경 학장은 문과대학을 ‘고려대학교의 심장’이라 표현했다. 경영학이나 법학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기르는 학문과 달리, 모든 학생이 교양교육을 통해 만나는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시대의 흐름에 맞춰 문과대학의 교육도 달라지고 있다. 이영제(국문98)연구부학장은 “정체성과 깊이를 지키면서 학문간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며 “‘인문학과 법’, ‘디지털 인문학’ 등 다양한 융합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정유진(언어92) 기획부학장 역시 “좋은 질문을 만드는 비판적 지성이 ‘Next Intelligence’의 핵심”이라며 “학생들이 문제발견과 질문 설정, 데이터 설계, AI 분석과 생성, 산출물의 비판적 검증, 사회적 의미와 책임의 판단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학과간 융합 교과목과 캡스톤 교육(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형 수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재학생과 졸업생의 연결도 더욱 촘촘해질 전망이다. 권영진(서문86) 문과대교우회장은 장기 인턴십 대신 단기간 현장을 체험하며 직무를 경험하는 ‘엑스턴십(externship)’ 도입을 검토 중이다. 교우기업을 중심으로 현장 탐방과 실무자 멘토링 등을 연계해 재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권 회장은 “짧지만 밀도 있는 경험을 통해 후배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여하린(한국사25) 학생은 “현업에 있는 선배들의 강연과 멘토링이 큰 도움이 된다”며 온라인으로도 선배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길 기대했다.다음 100년을 담을 공간, 인문관올해 80주년을 맞이한 문과대학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문과대학의 오랜 염원이었던 ‘인문관’ 건립이다. 국내 대학을 통틀어 20년 만에 새로 건립하는 인문계 교육시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희경 학장은 “고려중앙학원과 김동원 총장의 인문학에 대한 깊은 존중과 미래를 내다본 결단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채성식(일문91) 교학부학장은 “새 인문관은 문과대학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인문학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학생들도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황국현(국문25) 학생은 “인문관 건립은 단순한 건물 신축을 넘어 문과대의 자존심을 세우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며 “학교가 인문학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큰 자부심과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80년 동안 뜨거운 심장으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문과대학. 20년 전 문과대 교수들이 던진 질문은 이제 인문관이라는 공간에서 다음 세대의 질문으로 이어질 준비를 마쳤다. 문과대학 80주년, ‘모두를 위한 인문학’오는 9월, 문과대학이 창립 80주년을 맞아 ‘모두를 위한 인문학’을 주제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학술행사부터 토크쇼, 전시, 영화상영까지 인문학을 쉽고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일부 행사는 지역주민에게도 개방되는 만큼, 인문학을 함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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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대학의 위대한 스승 현상윤·조지훈·김준엽1946년, 보성전문학교가 4년제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로 승격하던 그해, 초대 총장 현상윤은 문과대학을 본교 3개 단과대의 한 축으로 세우며 ‘민족 대학’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 위에 조지훈은 민족문화의 정신을 새겼고, 김준엽은 아시아를 향한 학문의 지평을 열었다. 80년이 흐른 지금도 세 명이 세운 기틀은 문학과 역사학, 언론과 무대, 교육과 출판 현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교우들의 뿌리로 살아 있다.글. 최기영 편집국장 도움. 전용호(국문86) 고려대학교박물관 특임교수문과대의 설계자, 현 상 윤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역사학자 기당(幾堂) 현상윤(1899~미상)은 보성전문학교 교수·교수부장을 지내며 보성전문에서 종합대학으로의 전환을 주도했다.1946년 초대 고려대학교 총장을 맡았다. 그는 문과대학에 사학·국문·철학 등 인문학 기반을 다지며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인문학 교육을 통한 민족 정체성 확립을 강조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훈 ‘자유·정의·진리’를 정립했다.한국전쟁 초기 끝까지 학교를 지키다 납북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그가 다져 놓은 종합대학의 기틀은 훗날 모교가 국내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1953년 그에게 수여한 박사학위는 모교 최초 박사 학위다. 건국 이후 국내에서 발급된 최초의 박사학위라는 설도 유력하다. 문과대학은 1952년 문리과대학으로 개편됐다가 1963년 다시 문과대학으로 분리되는 변화를 겪었지만, 현상윤이 세운 단과대 구조 자체는 지금도 모교의 뼈대로 남아 있다.제1세대 서양철학 교수였던 이종우(모교 5대 총장), 국문학자 홍일식(국문55, 모교 13대 총장), 역사학자 김정배(사학60, 모교 14대 총장)가 각각 문대 출신 총장 계보를 이었다. 고대 정신을 민족문화로, 조 지 훈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1947년 문과대 교수로 부임해 박목월·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펴내며 한국 서정시의 새 흐름을 열었다.1957년 고전국역위원회로 출발한 민족문화연구소(현 민족문화연구원) 초대 소장을 맡았다.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 모교의 교가는 아름답고 웅장하다. 특히, 후렴구에 나오는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은 고대인의 가슴에 영원한 모교애를 불러일으킨다.그는 또 4·18기념탑 비문과 호상비문도 작성했다.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로 시작하는 4·18기념탑 비문과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 민족의 보람찬 대학이 있어”로 시작하는 호상비문은 고대정신을 압축적으로 표상한다. 특히 호상비문은 2000년대 이후 ‘민족의 아리아’ 라는 제목의 응원곡으로 만들어져 모교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조지훈은 고대극회, 고대신문, 고대문학회를 지도하며 모교의 학생문화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조지훈 이후의 ‘문과대 문인 계보’로는 홍성원(영문56)·김훈(영문66)·유시춘(국문68) 등 소설가와 최승자(독문71)·문태준(국문89) 등 시인, 고미숙(독문78) 고전평론가, 이장욱(노문87) 소설가 겸 시인이 있다.방송·예술 분야에서도 한국 최초의 TV 프로듀서 최창봉(영문48)을 비롯해 안평선(사학57)·심현우(사학68)·유길촌(국문58)·김승수(독문67)·김우광(독문69) 등 TV 연출가, 김경옥(영문48)·고금석(독문70) 등 연극 연출가, 조성현(국문61)·김수현(국문61)·이금림(국문66) 등 극작가, 여운계(국문58)·손숙(사학63)·장두이(국문70)·예수정(독문73)·황건(노문98) 등 여러 문대 출신 배우가 배출됐다.조지훈 선생의〈승무〉친필 원고 ©고려대학교박물관 영원한 총장·마지막 광복군, 김 준 엽동양사학자이자 광복군 출신인 김준엽(1923~2011)은 게이오대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1949년 문과대 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36년간 재직하며 아세아문제연구소(현 아세아문제연구원) 설립을 주도하고 중어중문학과·노어노문학과 신설을 이끌었다.1982~1985년 제9대 총장으로서 신군부의 압력에 맞서 제적 학생 복학을 추진하다 총장직에서 물러났고, 학생들의 전대미문의 복귀 시위 속에서 ‘영원한 총장’, ‘마지막 광복군’으로 기억됐다.그가 1957년에 세운 아세아문제연구원은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아시아 지역 연구 기관 중 하나이자 대학부설 종합연구소의 선구적 사례다. 특히 북한 연구와 동북아 국제관계 연구에서 오랜 축적을 갖고 있다. 1962년 이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산권 연구도 시도했다.이는 국교 수립 이전에 중어중문·노어노문학과의 문을 열게 한 동력이었다. 지금도 동아시아·중국 연구의 거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교우들이 외교와 국제기구, 통상 무대로 진출하는 통로가 됐고, 아세아문제연구원을 통해 정경대와의 융합 연구 기반도 마련됐다.총장으로서 지조 높은 고대인의 표상으로 남은 그는 퇴임 후에도 중국 대학 내 한국학 연구소들을 후원하며 오늘날까지 한중 인문 교류의 물밑 인프라를 남겼다.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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