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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서른 전에 졸업은 할 수 있을까?”3학년이 되면서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이중전공과 교직이수를 동시에 진입하면서 벌어진 사달이다. 소식을 들은 선배들이 둘 중 하나는 포기하라고 말렸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런데 이대로면 5학년까지 다니고 졸업하게 생겼다는 걸, 호기롭게 개강을 맞이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쩌면 남들보다 한참 뒤처질 수 있겠단 생각에 마음이 꽤 심란했다.원래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가 남들보다 한 박자씩 느리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도 한 번 떨어지고 다음 해에 겨우 붙었고, 모교도 한 번 떨어지고 재수 끝에 입학했으니까. 대학생이 됐으니 남들이 말하는 적정 속도로 살고 싶었다. 남들은 고등학교 때 하고 다신 안 한다는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학점도 열심히 챙기면서, 졸업까지의 계획도 착실히 세워뒀다. 그러니 지금도 내 인생이 남들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가 벌써 군대까지 다녀왔다. 동기들은 학회에 들어가거나, 인턴을 하거나,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여전히 학교 활동에서 손을 못 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졸업까지의 계획만 계속 뒤엎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내 삶의 적정 속도를 잃어버린 듯했다.동아리라든지, 학생회라든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교환학생이라든지, 교생실습이라든지. 하지만 “졸업은 언제 할 거냐”며, “취업은 언제 할 거냐”며, 남들이 말하는 속도로 살아가려면,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 또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인생에는 각자의 속도가 있는데, 그동안 나는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내 삶을 꿰맞추며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심했다. 무리하게 남의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내 속도를 따라가면서 살겠다고. 방향만 옳다면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먼 훗날 “그땐 왜 그렇게 살았냐”고 후회하기보다, “그래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젊고,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까.하늘빛(국문22) 기자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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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법학04) 편집위원법무법인(유)동인 변호사최근 온라인 상에서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 서울 번화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이 몰라보게 달라진 서울의 모습에도 놀랐지만,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어느 지하철 역 앞 사람들이 일행을 기다리는 사진에서 사람들이 그야말로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어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때는 핸드폰은 있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았기에 이동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심심하다거나 지루한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하루종일 그 단조로운 하루를 어떻게 살았나 싶다.요즘은 지하철이나 버스에 탄 모두가 자신의 핸드폰을, 동영상을 시청하기에 바쁘다. 나 역시도 조금의 시간적 공백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검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뿐인가, 요즘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키오스크가 반겨준다. 식당 예약은 예약어플로, 배달은 배달어플로, 식재료 주문도 새벽배송 어플로 주문을 한다. 최근 한 종로의 술집은 주문을 카카오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받는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 편리한 세상인데, 막상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핸드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또 단체 대화방을 통해 수백명의 사람과 연락을 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람을 대면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적어지고,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은 선호도가 떨어진다. 나도 온라인상으로 가능한 일을 직접 대면하여 처리해야 할 때, 통상하게 되는 인사치레나 스몰토크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학창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을 코로나 시대에 보낸 10, 20대 들은 나보다 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사람 만나는게 불편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작년 미국의 한 의사가 연구한 결과 Z세대가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이 노년층의 두배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단골로 다니던 가게에서 주인이 아는 척을 하는 순간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는 Z세대지만, 누군가와 친밀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 것 같다. 쉽지만 어려운 사람과의 만남. 편집위원 활동을 하며, 선배님들로부터 받는 위안이 크다보니 앞으로 교우활동이 어떻게 변해갈지, 매월 교우회보를 살펴보며 생각해보곤 한다. 점차 온라인을 통해, SNS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지게 될까, 혹시 화상으로 각자 집앞의 산을 오르는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될까. 분명한 것은 모습은 변화해가겠지만 그 안에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나누고자 하는 따스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란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우회가 외로움을 덜어줄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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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앞에서 학사모를 날리고 있는 변문수 교우. 교우기고 변문수(철학68) 교우 나는 1968년 모교 문과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기나긴 여정 끝에 2024년 2월 졸업했다. 학교를 떠난 지 52년 만에 돌아와 재학생이 된 나의 기록은 고려대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니 꼭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철학과 권영우(철학93) 교수님의 권고를 존중해 쑥스럽지만 이 글을 써 본다.재입학을 결심하다 내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0년, 우리 가족은 아르헨티나 이민으로 한국을 떠났다. 나는 1년 반의 군복무를 마치고 72년에 가족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이후 험난한 과정을 거쳐 시카고로 이주, 73년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을 그곳에서 살아왔다. 2017년 아내가 뇌암이라는 큰 병을 진단받은 뒤, 나는 32년 동안 일하던 회사를 은퇴하고 아내의 병간호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1년 후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 4년 간 아내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2022년 4월,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큰 딸에게 왔다가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제라도 고대에 재입학해 공부를 하자!’ 미국에서 지난 50여 년을 살며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모두를 하였으나 대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은 벗어날 길이 없었다.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두 딸의 응원에 힘입어 재입학 원서를 냈고, 2022년 9월, 52년 만에 고려대학교 철학과 재학생이 되었다. 입학은 됐으나 앞으로 3학기의 생활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정말 시작하고 나니 이렇게 마칠 때가 왔다. 변 교우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온 두 딸과 네 명의 외손주들과 함께한 기념촬영. 아래 사진은 1968년 입학 당시 변 교우의 모습. 행복으로 충만한 날들오랜만에 돌아온 고대는 옛날의 고대가 아니었다. 우선 꽉 들어찬 건물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건물들은 본관, 서관, 중앙도서관과 대강당 정도인데,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물들로 교내가 꽉 채워져 있다. 또한 곳곳에서 보이는 여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도 낯선 풍경이었다. 그 옛날 철학과에는 한 학년에 1명 정도의 여학생이 있을 뿐이었다. 3학기 동안 젊은 친구들과 함께 보낸 모든 순간들은 학교 생활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20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어린 학우들과 대화를 나누던 식사 시간도 기억에 남는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내 나름대로 그들에게 조언을 건네던 날들은 내게 너무도 보람된 경험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70대 중반의 노인네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그리 흔한 광경은 아니니 이 얼마나 소중한가. 나보다 한참이나 젊으신 교수님들의 훌륭한 강의를 듣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들어 듣는 철학 강의는 너무나 내 마음에 와 닿았다. 50여 년 만에 듣는 강의는 당연히 쉬울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녹음을 했고, 집에 돌아와 2~3시간씩 녹음을 들으며 강의 내용을 정리하곤 했다. 드디어 졸업생이 되다이제 학과의 전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두 딸과 네 명의 외손주들이 내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왔다. 15살짜리 외손녀 카라에게 말한다. “내가 너보다 먼저 대학 졸업한다. 하하하.”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묻곤 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인가? 졸업장이 왜 필요한가? 맞다. 사실 졸업장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삶에 있어서 끝내지 못한 한 가지를 끝내는 것이 내 목표였으며, 이에 따라 졸업장이 주어진 것이다. 공부로부터 얻게 되는 지혜는 오직 나 자신 만을 위한 것,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내 것이라 믿는다. 이제 배움을 마쳤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오.” 나는 앞으로도 세상을 배워나갈 작정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시카고로 돌아가면 지난 1년 반의 학부 생활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삶의 기쁨이 펼쳐지리라 기대해본다. 이제 마음의 고향, 고려대학교 졸업생으로 기록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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