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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최봉희 교우(원예 64), 며느리와 아들, 맨 오른쪽이 신근수 교우 신근수 교우는 재학시절 고대신문 편집국장으로 모교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정신은 졸업 후에도 이어져,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파리 체류 기간 중에도 프랑스 교우회 활성화에 노력하며 후배들에 열성을 쏟는 등 모교와 교우회에 대한 큰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본업이 작가이기를 꿈꾸었지만, 민간기업에 취업 이후 중동을 거쳐 파리에 정착했다. 창작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파리에 호텔을 경영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쓸 예정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호텔 경영이 밤낮도 없는 고된 직업으로 인해 소설 쓸 시간을 내지 못해 마음속에 작가 활동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보내다가, 수년 전 호텔업을 정리하고, 마침내 고대신문 기자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작가의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그의 삶은 고대신문에서 시작되어, 졸업 후 생업을 위해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현지 교우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며, 나이 80을 앞둔 현시점에 이르렀다. 지금은 20, 30대 신입 교우들과도 스스럼없이 와인을 함께 나누어 마시는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진정한 고대 교우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9월 교우회와 모교 합동 방문단의 유럽 순방길에, 파리에서 신근수 교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생 동안 잊히지 않는 모교 재학시절의 일화나 사람이나 배움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1965년에 입학해 고대신문 기자를 하며 큰 보람, 너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평생 살아온 세월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입니다. 이때 만난 오탁번(영문64, 사범대학장 역임) 편집국장은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오 선배는 후임 편집국장으로 저를 지명했는데 덕분에 재학 기간을 바쁘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 선배는 재학 시절 중앙일보 등 3개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소설이 당선되는 신기록을 세운 작가였는데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가 1975년 동아일보 ‘불구경’, 1978년 조선일보 ‘우물안 개구리’, 1988 동아일보 ‘좋은 세상’으로 신춘문예 당선한 것은 오 선배와의 문학적 교감의 결과였기에 지금까지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제가 서른살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만 살다 보니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지난해 오 선배가 세상을 떠나셨지요. 저의 슬픔과 한은 가눌 길이 없습니다. 또 한 사람, 고대신문 때 인연 양해경 교우(경영66)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양해경 동인은 제가 고대신문 편집국장으로 추천했지만, 한국에서 으뜸가는 그룹의 경영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진로를 그쪽으로 정했었는데, 훗날 이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큰 기쁨이었습니다.“ - 졸업 후 모교 선후배님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 등, 졸업 후 사회 생활 과정에서 경험한 고려대학교에서 비롯된 인연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졸업 후 일간지 기자 생활을 거쳐 중동에서 건설회사 현장 근무를 했고, 1976년부터는 프랑스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습니다. 1985년부터는 파리에서 물랭호텔을 운영했는데, 이 시절들을 통틀어 여러 선후배님들의 따뜻한 도움이 없었다면 저의 오늘은 없습니다. 파리와 유럽 땅 여러 도시에서 여러 은사님, 교우분들과 다시 교류할 수 있었던 존경과 우정의 시간들은 저의 금쪽같은 추억으로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모교와 고대신문에서 배운 자유, 정의, 진리의 교훈은 지난 60년 동안 세계를 돌며 '국적을 초월하는 정의로운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의 출발점이었습니다.최근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왕년의 고대신문 동인들과 단톡방으로 한국과 유럽 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60년 가까이 재학 시절의 우정과 열정을 여전히 나눌 수 있다는 현재가 기적으로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 살아오는 동안 고대 졸업생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던 순간과 기억을 말씀해 주세요. “신세대 후배님들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OECD, UNESCO 등 국제기구, 기업 주재원, 교환 학생을 비롯해, 파리에서 큰 사업으로 성공한 교우님들을 만날 때, 이 분들의 진정성과 21세기 한국에 기여하고 있는 모습이 큰 감동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교우님들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나에게 고려대학교는? “고려대학교는 저에게 “한 가족”입니다.선친(신광호)은 보성전문(지금 고려대학교) 상과 졸업생으로 저의 대선배(?)님입니다. 아버님은 재학중 보성전문 농구부 주장으로 1938년 1월 전일본 종합 농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연희전문을 43-41로 이겨 우승한데 이어 1939년 결승에서 교토제대를 64-50으로 누르며 1940년 대회까지 3연승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득준(조승연 전 삼성 썬더스 고문 선친), 최해룡 선수 등의 활약은 고려대 체육회의 전설입니다.1950년대 부친의 모교 농구부 감독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인촌 묘소 앞 농구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후에 제가 모교에 진학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부는 아내(최봉희, 원예 64)와 함께 안암동 캠퍼스 커플이기도 합니다.저의 조카 또한 모교 졸업생으로 저희 가족은 3대에 걸친 모교 가족입니다. 아들과 손주들은 파리와 런던에서 살고 있지만, 고대정신과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후세대들입니다.” - 모교를 졸업하고 교우가 될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남기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모교 선후배님들은 지구촌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모교는 민족사학을 넘어 글로벌 대학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세계화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고 있는 우리 교우님들이 앞으로는 더욱 '자유-정의-진리' 전파의 첨병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대합니다.”정리 한윤상 교우회 수석부회장신근수 교우는...<경력> 경복고 문예반 고대 불문과(65학번) 고대신문 편집국장 서울신문 기자 파리 물랭호텔 사장<수상> 1975년 동아일보 <불구경>(희곡) 1978년 조선일보 <우물안 개구리>(희곡) 1988년 동아일보 <좋은 세상>(희곡)으로 당선 현재 <모든 세상의 인연> 집필중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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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 대표 권순영(농화학65) 교우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땐 보이지 않던 사람 만나”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선뜻 손 내밀기를아프가니스탄의 ‘콩 박사’로 통하는 권순영 교우. 모교 농화학과를 졸업한 권 교우는 내전 속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프간 사람들을 보고 식품영양학자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이에 콩을 재배하고 먹는 문화가 없던 아프간에 콩을 전파해 자립을 이끌고 있다. 권 교우는 미국 LA에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Nutrition and Education International)’을 설립하고, 20년 넘게 아프간 콩 재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이 같은 노고에 권 교우는 지난 5월 모교 119주년 기념식에서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권 교우와 서면 문답을 진행했다.- 아프간에 콩 사업을 하는 데에 영향을 준 교우님의 모교 재학 시절 경험이 궁금합니다“모교 재학 중 육군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통역 요원으로 대민 활동을 했지요. 대학생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를 실현할 기회가 훗날 모교를 졸업하고 30여 년 만에 아프간에서 찾아왔지요.” - 20여 년 간 아프간 콩 사업을 해 오셨습니다. 콩 사업을 하게 된 아이디어와 진행 상황이 궁금합니다“처음 아프간에 방문한 2003년, 현지는 각종 전쟁을 거치며 어린이와 출산모 등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능력과 지식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이때 ‘고단백 식품인 콩을 재배하게 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영양실조의 원인은 단백질 부족이니까요.”“우선 아프간 농축산부로부터 적극적인 협조 약속을 받았고, 콩 시험재배에 성공해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UN 세계식량계획, 미국·일본·캐나다·한국 정부 등에서 도움을 받았죠. 2004년 40톤으로 시작한 콩 생산 규모는 2020년 6000톤으로 성장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탈레반의 세력 하에 있는 아프간의 특성상 사업에 위기는 없으셨는지요?“지난 2021년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며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탈레반이 사무소에 침입해 직원들을 집단 구타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콩 산업 체계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죠. 현재는 서방의 지원이 끊겨 난관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정세 변화로 당초 2030년 콩 생산 연간 30만 톤을 달성할 것이란 목표는 2035년 정도로 수정됐습니다.”- 현재 아프간 외 해외에서의 콩 사업의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나요?“올해 8월 필리핀 정부 농업부로부터 적극적인 협조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간다에서는 올해 여름 1차 시험 재배를 성공했고, 내년 2차 시험 재배를 준비 중입니다.”- 교우회보를 보시는 교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뜻이 있다면, 나를 돕는 이는 언제나 있다.’ 제가 이런 일에 뛰어들기 전,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72차례 아프간을 왕복했습니다. 탈레반 전쟁, 폭탄 테러, 외국인 납치 사건 등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죠.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만났습니다.”“혹 이 기사를 읽는 교우님들이 나보다 못 배운, 못 가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자 한다면 선뜻 나서기를 권합니다. 서로 도울 때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NEI 홈페이지: www.neifoundation.orgNEI 후원문의: contact@neifoundation.org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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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프렌즈 오진승(의학04) 교우 친구 셋이 만든 ‘닥터 프렌즈’병원이나 의사를 친구처럼 친근히 느낄 수 있도록- 고등학생 시절 의사가 아닌 영화 평론가를 꿈꿨다고 알고 있습니다. 모교 의학과에 진학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영화를 좋아했던 건 맞지만, 영화 평론가가 되는 방법은 잘 몰랐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의사라는 꿈을 꿔본 적은 없었는데, 수능을 잘 보게 돼서 성적 맞춰 의대에 진학하기로 했죠. 아버지가 모교 전기공학과 78학번이세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고연전을 보고, 농구대잔치에서 고려대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모교로 진학한 것 같아요.”- 대학시절 소아과를 희망하셨다가 정신과로 전공을 바꾸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무엇일까요?“제가 어렸을 때 가와사키병을 앓았어요. 요즘은 많이 알려졌지만, 제가 아팠을 때는 불명열 질환이었죠. 어머니가 열나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을 때 고대병원 소아과에서 치료해주신 덕분에 완치할 수 있었죠. 이때의 기억으로 소아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애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아과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본과 3학년 때 정신과 보호 병동에서 한 달간 실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환자분들과 게임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이때 정신과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공을 정하게 됐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1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 일만 해도 힘들텐데,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2018년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 구독자 10만을 목표로 했어요. 저희의 예상보다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시니 더욱 신나서 다양한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어요.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게 됐어요. 의학과 관련된 드라마, 게임을 제작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시야를 더 넓힐 수 있었고, 배우는 게 많아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저희 채널은 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다루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여러 과의 대학병원 교수님들을 모셔 의학 지식을 전달하고, 정치인을 모셔 의학 관련 시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죠. 기획부터 제작까지 저희 스스로 하고 있는데, 의학 분야와 관련한 신선한 시도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방송 출연,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셨는데요, 혹시 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을까요?“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느껴요. 저희 영상을 보고 본인이 힘들었던 이유를 찾는 분들도 있고, 정신과 치료를 망설이다가 병원을 찾는 분들도 꽤 있어요. 유튜브나 방송 출연이 걸림돌이나 치료의 장애물이기보다는 많은 분들에게 정신과 상담에 대한 두려움의 문턱을 낮출 수 있어 신기하고 좋아요. 병원 말고 가끔 식당에서 알아봐 주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제가 밥을 사드리곤 합니다(웃음).”- 게임회사 유닉온과 함께 <헬프미>라는 게임 개발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처럼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다중인격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치료하는 게임을 리뷰한 적이 있어요. 전문 분야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입해서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리뷰 영상을 보고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직접 게임을 만든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작에 참여하게 됐죠.”“게임을 만들 때 환자 캐릭터가 너무 이상하거나 희화화되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안쓰럽지만, 귀엽고 멋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길 바랐죠. 그들이 앓고 있는 질환이 특이하고 별난 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마일드한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게임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정신과 치료를 캐주얼하게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교우님께 모교란 무엇인가요?“언제나 자랑스러운 곳! 강연하거나,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때 모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모교 병원에서 근무했다는 내용으로 제 소개를 시작해요. 타이틀을 항상 갖고 다니는 만큼, 자랑스러운 고대인이 돼야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유민경 기자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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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귀철 대표와 김미경 작가. 김미경(독문83) 작가 송귀철 사물놀이미르 대표 여러 사람의 손이 한 사람을 끌어올린 드문 이야기“이제 내가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정돌이’가 소설 속 화자로김형민(사학88, SBS Biz 사업부장) 교우는 그의 블로그에 쓴 《정돌이》 독후감(?) 제목을 ‘한 사람을 구한 것’이라고 달았다. 그 포스트 마지막은 “《정돌이》 한 번 읽어 보시면 좋겠다. 여러 사람의 손이 한 사람을 끌어올린 드문 예 중의 하나다”로 끝난다. 1987년 14세 송귀철 씨는 불우했던 집에서 도망쳐 서울로 올라왔다. 방황하던 경동시장 근처에서 수배중이던 운동권 고려대생 형을 만나 엉겁결에 고려대에 들어온다. 몇 년 간 정경대 학생회실과 학생회관을 집 삼고 민주광장을 마당 삼아, 고대생들이 사 주는 밥을 먹으며 고대에서 살았다. 그 캠퍼스에서 송귀철 씨는 어깨 너머로 풍물을 배웠고, 그 길로 매진해 평생의 업을 얻었다.김 교우는 이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 5월30일 후원시사회를 갖고 올 연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대현(경영85)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정돌이> 속 ‘정돌이’가 바로 소설 《정돌이》의 화자다.‘정돌이’ 송귀철 씨는 1974년생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하나다. 임실필봉농악, 호남좌도농악, 웃다리평택농악, 호남우도농악을 두루 사사하고 1998년 사물놀이 미르를 창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금 세 아들의 아버지다.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쓰고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말로 전하고, 한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그의 삶을 소설로 썼다. 한 사람의 인생 속에 통째로 들어갔다 나오는 일일 텐데,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작업을 진행했을까. “나는 영화 <정돌이>를 보면서 귀철 씨를 처음 만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영화를 보고 나서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나더북스 권무혁 대표님이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때부터 귀철 씨 인터뷰를 했어요. 만난 거는 네다섯 번 되고, 한번 만나서 길게 이야기하고 술도 마셨어요. 사이사이 문자를 많이 주고받았어요.”50년이 넘는 세월을 얘기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고 그걸 쓴다는 건 더 큰 일이다. 김미경 작가는 원고가 정리되는 대로 귀철 씨에게 보냈다. 귀철 씨는 사실이 아니거나 바로잡아야 할 내용을 알려 주는 식으로 한 권의 작업을 둘이서 해 나갔다.마음을 그리고파 소설로 작업김 작가는 KBS 극본 공모 당선으로 방송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라디오 극본, 방송 대본과 인터뷰 원고를 주로 써 왔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화가 있으니 르포나 다큐 형식의 글로 써도 됐을 것 같은데 왜 소설 형식으로 쓰고 싶었을까.“처음에 귀철 씨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건 실화보다 더 감동이 많고 매력적인 이야기인데 실화로 풀어내도 사람들이 그저 밋밋하게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 내 감정을 좀 덧입히면서 썼어요. 소설로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책을 읽으면 인물의 심리 묘사가 곡진해 읽는이가 빨려들어간다. 한 편의 성장소설로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작품이지만, 40년 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린 글을 읽었을 때 귀철 씨 마음은 어땠을까.“책을 출판기념회 하기 전 최근에 읽었고요. 그 전에는 원고를 읽었는데 제 얘기라 조금 불편한 게 있었죠. 아름답게 써 주셨는데 그래도 옛날 기억이 좋은 기억은 아니니까.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면서 읽은 것 같아요. 와이프가 먼저 읽고 술술 잘 읽힌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더라고요.” ‘보은’ 넘어 베푸는 사람 되고파다큐멘터리 영화 작업부터 시작된 ‘정돌이 프로젝트’ 때문에, ‘다 지난 일’로 묻어두고 살 수도 있었던 과거가 큰 파도처럼 한번 다시 일어나는 느낌이 아닐까. “나이가 이제 한 50이 되다 보니까 좀 편해진 건 있어요. 시간이 오래 흘렀고 애들도 자라고 있으니까 지금은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죠.” 고려대 학생 운동사와 관련되어 자신의 인생이 어떤 ‘공공재’처럼 소환되는 것이 서운하지는 않은지 물었다.“그 시절 ‘고려대’를 떠올리면 한마디로 ‘벅차다’고 할까, 추운 데서 떨지 않고 잘 곳이 있었고 배 곯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래요. ‘보은’의 마음이 있죠. 그렇지만 이제 앞으로 내가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주은 편집국장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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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국문과를 나온 아나운서 출신으로,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깊습니다” 아나운서, 17·18대 국회의원 이계진(국문66) 교우 국어기본법 제정 하나만으로도 17대 국회는 제 일 했다 생각해우리말글 ‘폭망’의 주범은 방송, 방송이 정신 차려야이계진 교우는 2005년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의 사회를 봤다.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고 회고했다. 행사가 끝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빈 여러분, 오늘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200주년 기념식에는 제가 사회를 못 볼 것 같습니다.” ‘낙엽 타는 연기가 오르는 집을 찾아오면 된다’는 길 안내를 따라 곤지암 건업리 자택으로 찾아가 ‘친근하고 점잖은 아나운서’, ‘후원금 받지 않고 정치한 2선 의원’, ‘고발 한 번 못 당하고 물러난 당 대변인’, ‘밀짚모자가 자연스러운 농사꾼’ 이 교우를 만났다. - 선생님 이름으로 검색하니 오랜 공백을 지나 작년부터 방송 출연도 하시고, 블로그 글도 올리시고, 책도 출간하셨습니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요?“특별한 심경의 변화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주기와 연관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정치를 그만둔 뒤에 모든 공적인 활동을 안 하겠다 마음먹었고, 여기 묻혀 농사 일 하고 차 마시고 책 읽고 하는 일상이 소중했어요. 그러다 내 삶의 이야기를 좀 마무리를 하자, 빛나던 시절은 빛나던 시절대로 또 힘든 일은 힘든 일대로 내가 살아온 길을 남겨놓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한 방법일 것 같아서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고, 그걸 책으로 냈어요. 방송은 그동안 꾸준히 제의가 들어왔지만, 이 나이에 갈 곳과 가지 않아야 할 곳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에 대부분 고사해 왔지요. 앞으로 결국은 여기에서 잘 늙어 가고 내 인생의 마무리를 괜찮게 했으면 좋겠어요. 회향이 중요하거든요.”- 1973년 KBS 공채 1기로 아나운서의 길로 들어서서 SBS, 프리랜서를 거치며 30여 년 인기 있는 아나운서였지만 처음에는 무명의 시간이 있으셨던 것으로 압니다“나는 아나운서가 되면 바로 프로그램하고 빛나는 줄 알았어요. 조금 있으면 프로그램이 나한테 오겠지 한 것이 8년이었어요. 8년이면 매미가 땅속에 있는 세월 비슷해요. 그동안 나는 언제든지 내게 프로그램이 오면 당황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물 만난 듯이 방송하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수련을 많이 했어요. 이희승 국어대사전을 외다시피 읽었고, 우리말의 장단과 고저를 연구했어요. 나중에 프로그램을 맡아 잘 되니까 사람들이 어디서 하루아침에 이계진이 나온 것처럼 아는 게 저는 좀 서운하더라고요. 바쁠 때는 하루에 옷을 여덟 번 갈아입은 적도 있어요. 땅속 매미 시절에 고대 선배 이규항, 장기범 아나운서가 힘이 많이 됐어요.”-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8대까지 8년 간 정계에 계셨습니다. 그때 ‘국어기본법’을 통과시키고,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제정하셨는데요“나는 아나운서 출신이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를 나온 사람으로서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있어요. 국어기본법이 정부 입법으로 나왔다가 무산된 걸 알고 국회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걸 다시 끄집어내서, 문광위원회 여러 사람 설득하고 내가 입법 설명을 해서 통과시켰어요. 난 그거 하나만으로도 17대 국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당시에 한글날이 기념일로 추락했었어요. 그래서 한글날 국경일 재지정 법안을 내니까 보좌관이 그거 이미 낸 사람들이 또 있을 거라고 해서 그걸 같이 해서 통과시켰고요. 그리고 국어 관련해서 내가 한 일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서울시 간판 정비 사업이에요. 옛날에는 간판들이 건물을 다 가릴 정도로 크고 보기 흉했는데, 내가 파리에 견학도 다녀오고 하면서 간판 개선 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간판들이 작고 예뻐졌지요. 한 가지, 인천공항이 생길 때 공항 이름을 ‘세종인천공항’으로 하자고 했는데 시민들 반대 때문에 못한 게 지금까지도 너무 아쉬워요.”- 국문학을 전공하시고, 우리말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셨고, 꾸준히 글을 쓰신 스승이자 선배로서, 이 시대 우리말글의 세태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즘 애들이 잘 쓰는 말로 ‘폭망’이지 뭐. 어디다 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맨날 한글날 되면 우리글이 망가졌다는데 우리글은 하나도 안 망가졌어요. 자모가 어디가 망가져, 우리 말이 망가졌지. 말을 망가뜨리고 즐겨요. 그걸 즐기지 않으면 또 뒤처진 사람이 돼요. 세태가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 주범이 방송이에요. 방송 정신 차려야 합니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교우회보를 보시는 교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우리 고대 출신 교우들은 각자 이 세상을 올바로 잘 살아서 모교를 빛낼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고대는 나를 길러줬으니까.” 주은 편집국장이계진 교우는…1973년부터 KBS, SBS 방송국, 프리랜서 등 30여 년 아나운서로 활동. 2004년 한나라당 17대 국회의원 당선 후 국어기본법, 한글날 재국경화 등 입법. 현재 제13대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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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울분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 나의 무력한 정의다” 소설가 김훈(영문68, 중퇴) 내 마음 속에 절여져 있던 간절한 것들이밖으로 새어 나와 공적 개방성에 도달하기를- 《허송세월》에 보면 큰 병을 겪으신 이야기가 있다. 병 이후로 ‘더 미룰 수 없겠다 싶어’ 소설 《하얼빈》을 쓰셨고, 이번에 산문집을 묶으셨다. 글쓰기에서 자각하여 느끼시기에 ‘내가 좀 달라졌구나’ 하는 점이 있나“퇴원해 보니, 여생의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이 모자라므로, 문장을 더욱 짧게 쓰고 수다를 떨지 말기로 결심했는데, 이것은 내가 늘 지향하던 바였다.이 세상에 바싹 다가가야 한다는 열망과, 이 세상을 끊고 돌아서야 한다는 내향성이 내 마음 속에서 늘 동시병발하고 있다. 이것은 갈등이나 충돌이 아니고, 흔들리는 균형이다. 이 긴장된 자리가 나의 제 자리이다. 《허송세월》에 실린 글들은 절반 이상이 2024년 4월에서 5월 사이에 쓴 것들이다. 이 글을 쓸 때 나는 세상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은 없다.”- 선생님께서는 소설과 에세이를 주로 쓰셨다. 그리고 ‘김훈 문체’로 독보적인 작가가 되셨다. 저는 선생님의 ‘문체’가 약간은 반칙이라고 생각해 왔다. 선생님은 논리와 인과의 문장 틀을 가져와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시거나, 감정과 정서의 영역에서 가장 논리적인 척하신다고 할까. 이 문체는 ‘내 감정/느낌/서정이 이래서 맞다/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나는 ‘옳음’과 ‘그름’을 미리 설정해 놓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옳음’과 ‘그름’을 표준으로 세상을 관찰하지도 않는다. 자유, 정의, 진리, 진보, 평등, 박애를 외치는 일은 쉽고, 무엇이 그것인지를 판단하고 또 말하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대학은 이 끝없는 어려움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일 터이다. 나는 우선 나 자신에게 간절한 기쁨과 아름다움, 연민과 희망과 절망, 고통과 짜증, 그리움과 기다림, 분노와 공포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내 마음 속에서 잘 절여져 있다가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와서 공적 개방성에 도달하기를 나는 소망한다. 완벽하고 거대한 관념적 원리로부터 연역되어 나온 언어들은 그것이 아무리 논리 정합적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읽은 책을 들이대면서 쓴 글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글쓰기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쓰시든 ‘김훈의 단호한 선언’이 되는 바가 있다. 언제나 좀 너무 단호해서 읽는 사람 마음을 밀쳐내는 데가 있었고. 그런데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는 선생님께서 ‘외롭다, 같이 웃고 싶다’고 하시는 듯한 대목들이 있었다. ‘늙기의 즐거움’에서 술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 담배 이야기로 넘어갈 때 라든지. 선생님께서는 일상에서 크게 웃을 때가 있나“나의 웃음은 대부분이 혼자서 웃는 웃음이다. 학교 마당에서 공차는 소년들, 립스틱을 바른 여고생들, 유치원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춤추는 여교사들, 저녁 술집에 모여서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 걸을 때도 춤추듯이 걷는 어린아이들, 바위 위에 올라와서 햇볕을 쪼이는 공원 연못의 거북이들, 시베리아에서 일산으로 날아온 겨울 철새들을 보면서 나는 혼자서 웃는다. 악다구니하는 정치 현수막 아래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보면 나는 좋아서 웃고, 슬퍼서 웃는다. 나에게는 혼자서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많다. 이것은 나의 ‘혼웃’이다.”-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시는 동안 겪으신 ‘심판’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혼수에서 깨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그 ‘취재수첩’을 찾으셨다는 일화로 ‘생사를 오가는 흔한 중환자 김훈’을 말끔히 씻어내셨다.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이어서, 여름 호수에 연꽃이 피는 사태는 언어로써 범접할 수 없었다.’의 ‘아름다움’과 ‘취재수첩’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르시겠나?“‘취재수첩’은 내 오랜 밥벌이가 가져다 준 직업병의 증세이다. 이것은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다. 인간들 사이의 우정과 신뢰, 그리고 친절과 상냥함, 가벼운 것들의 무게로 내 ‘취재수첩’을 채우고 싶은 소망이 여전히 나에게는 남아 있다.”- 선생님께서 집앞 나무에 깃들어 둥지를 짓는 어치 이야기를 적어 가실 때, 전작들을 다 보아서 그 감독의 ‘성향’을 아는 관객처럼 어치가 탈이 나리라는 조바심이 있었다. 어치의 알 두 개가 곯아버린 것이 가엾고 아까우셨나“이 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은 날마다 학대받고 쫓겨나고, 압살당하고 있다. 생명은 집단 폐사되고 있다. 한국의 산업 현장의 인명 훼손은 자본주의의 제단에 바치는 대규모 인신공양과도 같다. 이 고대(古代)의 풍속은 이제 법제화되어 있고 일상화되어 있다. 이것은 추호의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썩어 버린 새알 두 개를 괴로워하는 심회를 풀어낸 것을 어찌 글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스스로의 울분을 온전히 간직할 뿐이다. 이것이 나의 무력한 정의다.”정리 주은 편집국장김훈 소설가는…1948년 서울 생.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외 여럿.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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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야구부 감독 김지훈(체교92) 교우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95년 고연전 야구 경기선수들 리쿠르팅에 무거운 책임 느껴20년이 지났어도 … 통한의 그 고연전!정기전 얘기가 나오자마자 김지훈 감독의 눈이 축축해졌다. 김 감독은 92년에 모교 입학, 92, 93, 94, 95년 네 번의 정기전을 치렀다. 김 감독이 입학한 해 고대 야구부는 ‘황금의 92학번’ 전설로 내려온다. 고 조성민(경영), 손혁(체교) 현 한화이글스 단장, 홍원기(체교) 현 키움히어로즈 감독, 김종국(체교)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 김선섭(체교), 유진호 7명이 입학해 7명 모두 졸업했다. 그런 예가 없었다. 모두가 연대의 우세를 점치던 92년, 93년 정기전야구는 오히려 한 점 차로 고대가 승리했다. 94년 정기전은 7:5로 이겼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대학시절 마지막 정기전에서 9:5로 고배를 마셨다. 그 마지막 경기가, 20년이 지나서도 돌이키는 순간 지천명 넘긴 남자를 눈물 나게 하는 한 맺힌 게임이다.대통령기에서 힘 빼고 서서히 달구어서 정기전 가자보통 대학 야구는 봄 U-리그를 시작으로 춘계대학야구선수권, 여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가을 U-리그 왕중왕전의 흐름으로 1년이 돌아간다. 그런데 모교는 좀 다르다. 정기고연전이 그해의 ‘결승전’이 되는 분위기가 있다. 7월 말부터 8월 20일까지 밀양에서 대통령기를 끝내고 돌아와 잠깐 숨 돌리고 있는 김지훈 감독을 송추 고려대야구장에서 만났다. 대통령기에서 고대는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이번 대통령기의 경기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오히려 대통령기에서 체력을 다 소진하자는 계획이었다. 그 다음 서서히 연습량을 늘리면서 9월 말 정기전에 적절한 체력 상태로 뛸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른 팀은 무더위 때문에 경기 전에 타격 훈련도 안 할 때 우리는 오히려 조금씩 연습을 시켰다. 투수 중에도 어깨 아픈 선수들이 많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려고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았는데, 의외로 방망이가 잘 쳐 줘서 그만큼 성적을 낸 것이다. 준결승에서 우리가 치고 나가면 이길 만한 접전이었는데 진 게 아쉽다.”MZ 선수들, 달라진 대학 야구, 무거운 책임감올해 2월 모교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김 감독은 프로구단에서 선수와 코치로 20년 넘게 활약했다. 마지막 1년여 기아의 스카우터로 있을 때는 선수 지명 안목이 뛰어나 세간에서 화제가 됐다. 20여 년 만에 모교 감독으로 부임한 소감을 물었다.“우리 학교 야구부는 예전부터 규율이 엄격하기로 안팎에 유명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 MZ들이 선수로 뛰지 않나. 올 초에 부임하고 일본 전지훈련부터 합류하면서 쭉 선수들을 관찰했다. 전반적으로 선수들이 좀 위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프로 시절부터 알던 멘탈 코치를 모셔왔다. 선수들 훈련도 같이 보고 상담도 하고 하면서 확실히 좀 영향이 있다고 느낀다. 또 바이오 메카닉스를 하고 있다. 선수들 훈련 영상을 미국 전문가에게 보내 분석을 받는다.”이어 김 감독은 선수들, 특히 4학년 선수들의 ‘리쿠르팅’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내비쳤다. “이전과 달리 요즘은 고교 야구에서 프로구단으로 먼저 빠지고 남은 선수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다 보니 특히 4학년 선수들의 미래를 열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제 자신이 스카우터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스카우터 눈에 선수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도 퍼포먼스를 더 잘 이끌어 내도록 독려한다.”전력 약세는 팩트, 목표는 크로스 게임올해 고연전 얘기를 꺼냈다. 연대팀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단연 6, 7이닝을 버텨 주는 믿음직한 투수. 작년 고연전에 선발로 나왔던 강민구 연대 투수 얘기다. 김 감독이 추구하는 디펜스 야구를 하려면 센터가 강해야 한다. 그 중심이 투수다. 지금 우리 팀에 가장 아쉬는 것도 마운드에 등판했을 때 포수와 야수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강한 투수다. 솔직히 전력상 연대를 제압할 수는 없을 거라고 얘기하는 김 감독. 그래서 목표는 최대한 크로스 게임을 하면서 2, 3점 내로 붙어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끝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어떤 계획’이 있음을 내비치며 미소를 지었다.응원에 진심이 되게 하는 마력지난달 초 김동원 모교총장이 5개 운동부 감독 격려 오찬자리에서 ‘너무 가라앉지도, 너무 들뜨지도 않은, 적당한 선을 지키는 속에서의 정중동’을 말씀하셨을 때 김 감독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95년 정기전에서 너무 들떠서 경기를 내줬다고 내심 생각해 오고 있었기 때문. 모교로 부임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정기전 생각이 났고, 자신뿐 아니라 고대 출신이면 누구나 그렇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김 감독을 보고 있자니 올해 정기전에서 야구만큼은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온다. 마지막으로 교우님들에게 한 말씀 부탁했다.“처음은 제 후배들이라는 마음, 다음은 제자들이라는 마음, 마지막은 자식 같은 마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경기하겠다.” 주은 편집국장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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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아이스하키부 감독 김우영(체교07) 교우 아이스하키 관전 포인트 ‘파워플레이 찬스’긴장하지 않고 즐기는 자가 승부를 가른다‘블리드(Bleed) KU’. 우리 몸 속에 빨간 피가 흐르듯, 선수들의 몸엔 고대의 피가 흐른다. 선수들 모두 고대정신을 가졌다는 뜻으로, 모교 아이스하키부의 코칭스태프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이번 정기 고연전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다부진 말투로 ‘블리드 KU’를 설명하며 “이 한 몸 바쳐 이번 정기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겠다”고 다짐하는 김우영 감독을 만났다. 학생·국가대표·코치·감독까지 … “얼음판에선 감독, 라커룸에선 선배로”김 감독은 모교 선수와 주장, 코치, 감독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서 ‘고대의 피가 흐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3월 모교 아이스하키부 감독에 임명된 김 감독은 2007년 모교 체육교육과 입학 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2010년 모교 아이스하키부 주장, 2011~2021년 실업팀, 2021년 모교 아이스하키부 코치까지 다양한 직군을 역임했다.김 감독은 본인의 학창시절을 “후배들에게 장난도 많이 쳤지만, 확실히 운동은 열심히 한 선수로 기억될 것”이라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얼음판에서는 감독이지만, 라커룸에서 장비를 벗는 순간부터 얼음판에서 있었던 좋은 일, 안 좋은 일 다 털고 한 명의 선배로서 선수들에게 다가가려 한다”며 “좋은 하키선수, 좋은 학생선수, 나아가 좋은 사람 만들기를 목표로 감독으로서의 강약조절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감독이 됐다고 해서 무게를 잡지는 않는다”며 “코칭스태프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다 보니 선수들이 편하게 다가오고, 집에서는 하지 못하는 여자친구 이야기 등 많은 부분에서 소통하고 있다”고 선수단의 분위기를 전했다.절실한 마음으로 … 정기전 전략은 ‘몸싸움 타이밍’고연전의 무게에 대해 김 감독은 “학생 선수의 고연전은 ‘전쟁’과도 같다”며 “절실하게 승리를 원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 과정을 즐기면서 임한다면, 고생한 만큼의 결과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전했다.이번 정기전의 전략을 묻자, ‘몸싸움 타이밍을 잡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감독은 “아이스하키는 몸싸움의 스포츠”라며 “몸싸움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겁을 먹느냐 아니냐가 몸싸움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몸싸움 타이밍이 왔을 때 겁먹지 말고 대응하고, 상대와의 스틱 싸움 등 1대 1 상황에서는 이겨야 한다”는 전략을 전했다.올해 아이스하키부는 ‘스피드’를 모토로 훈련 중이다. 김 감독은 “아이스하키도 시대 흐름을 타는데, 요즘은 스피드감이 중요해 스피드를 살리는 걸 목표로 훈련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아이스하키의 과제는 ‘경기 수 늘리기’아이스하키는 현재 모교에 존재하는 5개 운동부 중 경기수가 가장 적다고 알려졌다. 전국의 대학 아이스하키부는 4개뿐이며, 실업팀은 HL 안양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처럼 가능한 경기 수가 적다 보니, 시즌이 끝나면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감독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시합 수를 늘리기 위해 해외 전지훈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캐나다에서 일본까지, 정기전 앞두고 연이은 해외 전지훈련모교 아이스하키부는 올 초 캐나다 밴쿠버·캘거리 등지에서 다수의 해외 전지훈련 경기를 진행했다. 밴쿠버에서 진행된 첫 경기 승리 후, 분위기를 타고 이어진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정기전 직전 마지막 해외 전지훈련은 일본이다. 19박 20일 동안 와세다 대학, 일본 실업팀 오지이글스 등과 총 9경기를 뛰는 일정이다. 김 감독은 “연습경기를 통해 경기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얼마나 꾸준한 경기력으로 임할 수 있을지 보고 싶다”는 기대를 전했다. 또 “일본에서의 9경기 중 목표는 6승”이라는 목표를 힘주어 전했다. 다가오는 정기전 … 모교 아이스하키의 ‘흑역사’는 잊어라연이은 해외 전지훈련 후 대망의 첫 경기는 정기 고연전이다. 고연전을 앞두고 연세대와의 전력 비교를 묻자, 김 감독의 냉철한 분석이 이어졌다. 김 감독은 “개개인의 선수로 비교를 하자면 어떤 부분은 연대가 낫고, 어떤 부분은 우리 선수가 낫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해 5대 5다”라며 “얼마나 긴장을 안 하고 즐기는가가 경기장에서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정기전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서는 “아이스하키는 반칙을 했을 때 ‘파워플레이 찬스’가 주어지는데, 그 찬스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가 정기전의 관전 포인트”라고 집었다.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모교 정기전에서 아이스하키 종목은 ‘지고 간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인식들을 노력해서 바꾸려 하고 있고, 그만큼 뛰어난 선수들도 키우고 있다”며 “이번 정기전에서 선수들을 많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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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지나인(G9) 대표 선현우(불문99) 교우 외국인 입장에서 고민 … ‘쉽게 쓴’ 한국어 교육추후 이민 2세대·이주노동자 위한 강의 준비“한글은 쉬운데, 한국어는 어려워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겪는 난관이다. 한글 문자 자체는 과학적으로 이해 가능하나, 한국어의 문장구조는 어렵다는 뜻이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교육하는 선현우 교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ite-sized(한 입 거리) 한국어’란 모토를 내걸었다. 유튜브부터 공식 온라인 강의까지, 초급부터 고급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학습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를 넘어 ‘다언어화’ 사회가 될 것이라 전망하며 한국어 교육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선현우 교우를 만났다.외국인의 눈높이에서 고민 … “교실 수업보다 이해가 쉽다”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먼저 한국어는 영어와 문장 구조가 다르고, 형용사와 동사를 구분하는 것부터 다르다. 선 교우는 “예를 들어 ‘이것은 편한(convenient) 이에요’, ‘선생님은 웃긴(funny) 이에요’ 라고 하면 안 되고, ‘편해요’, ‘웃겨요’ 라고 해야 하는데 이 개념을 깨는 데 오래 걸린다”며 “‘은, 는, 이, 가’ 등 조사, ‘바쁘다’를 ‘바브다’, ‘파쁘다’고 하는 등 된소리 구분도 어려워들 한다”고 덧붙였다.이를 어떻게 쉽게 가르칠까 고민하던 선 교우는, 본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 무엇을 힘들어했는지 떠올리며 힌트를 얻었다. 선 교우는 “제가 한국에서 외국어를 독학했던 노하우가 많이 도움이 됐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50대 가장이 한국 유학을 올 수는 없듯, 결국 자습을 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현재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bite-sized(한 입 거리)’ 한국어를 기치로 삼아 체계적인 학습 단계를 꾸몄고, 초급부터 고급까지 다양한 수업 방식을 만들어 ‘교실 수업보다 이해가 쉽다’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교재 제작과 유튜브까지 … 창의력 발휘하는 사내문화선 교우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지나인은 ‘톡투미 인 코리안(Talk To Me In Korean, TTMIK)’ 등 한국어 교육 플랫폼을 제공한다. 총 46여 종의 자체 교재 제작, 공식 사이트 외 1000여 개 온라인 강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을 두고 있다. 현재 유튜브 구독자 181만 명,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팔로워 각각 24만 명과 12만 명 등 인기를 얻고 있다.선 교우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존중한다. 직원들의 업무가 유튜브 제작·교재 제작·온라인 강의 제작 등인 만큼, ‘크리에이터(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선 교우는 “회사가 점차 체계가 잡히면서 창작자들의 창의성이 점점 억눌리는 면이 있었다”며 “이를 되살리기 위해 자율출근제를 도입하고, 또 자유롭게 퇴근해 팀워크를 다지는 ‘땡땡이 쿠폰’을 신설하는 등 자기의 리듬에 맞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주 수강층은 ‘한국 거주 외국인’선 교우가 운영하는 한국어 교육 플랫폼 TTMIK의 주 수강층을 묻자, ‘한국 거주 외국인’이라는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선 교우는 “한국이 교육 시청이나 수강 국가 중 꾸준히 2~3위를 차지한다”며 “막상 한국에 거주하다 보니 언어가 저절로 늘지는 않고, 한국어가 더 급해지고 필요성을 여실히 깨달아서 수강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한국 이외에는 주로 미국, 유럽 등지에 수강생이 분포돼 있다. 강의가 영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남아 등지에선 무료 강의는 수요가 많으나, 물가 차이 때문에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선 교우의 설명이다. 선 교우는 추후 이민 2세대를 위한 한국어 교육, 또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현실 한국어 강의 등을 준비 중이다. 10년 후, ‘다언어화’ 사회 전망선 교우는 10년 후 우리나라의 미래가 ‘다언어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선 교우는 “현재 다언어화가 진행되고 있는 싱가포르 등 국가에 가면, 손님의 국적을 유추해 영어·중국어 등을 골라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며 “미래에 우리가 한 가지 언어로만 소통할 것이란 보장은 없으니, 이번 기회에 교우분들은 외국어에 도전해 보고, 글로벌 교우들은 한국어를 배워보길 바란다”고 전했다.선 교우는 한국어 교육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고 있다. 선 교우는 “10년 전만 해도 한국어 교육은 아예 업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어엿한 업계가 생겼고, 대기업에서도 진출해 있듯 한국어 교육 콘텐츠와 창작자들이 생기는 것이 기쁨으로 다가온다”며 환하게 웃었다.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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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농구부 감독 주희정(체교95) 교우 2018년 코치 부임, 고려대 농구 천하를 열다“고연전, 초심으로 돌아가 승리하겠다”모두가 질 거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MBC배 농구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연세대는 에이스들이 복귀하며 연승으로 치고 올라온 상황이었다. 언론에서 연대가 이길 확률이 60%가 넘는다고 예측했다. 경기 시작 전 로커룸에서, 주희정 농구부 감독은 말 없이 노래 <질풍가도>를 틀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이 노래를 듣고 코트로 나선 선수들은 연세대를 64-57로 이기며 대회 통산 14번째 정상에 오르는 드라마를 선보였다. 주 감독은 2018년 모교 농구부 코치로 부임한 후 2년 만에 정식 감독이 됐고,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정규전과 플레이오프전 통합우승을 안기며 ‘대학농구 고대천하’ 시대를 열었다. 9월 정기 고연전을 앞둔 주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한 호랑이 감독님주 감독은 자칭타칭 ‘호랑이 감독님’이다. 선수들이 숨도 못 쉴 정도로 엄하게 대한다. 주 감독이 돌아서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리는 선수들도 있다. “훈련 때 긴장해서 하지 않으면 실제 시합 때 기량이 안 나오니깐요. 대신 훈련은 하루 2시간 넘지 않게 합니다. 대학교라도 아마추어처럼 하는 게 아니라, 프로처럼 할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연습하게 하는 거죠.” 그러나 주 감독은 선수 시절 혹독한 자기관리로 20년간 1000경기 이상을 뛴,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세운 ‘연습 괴물’이었다. “선수 땐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연습을 매일 했죠. 그런데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옛날 방식대로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훈련 시간에 모든 집중력을 쏟을 수 있도록 선수들이 쉴 시간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토요일은 무조건 외박을 허락하는 등 다른 대학농구팀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충분한 휴식을 준다. 선수들이 훈련에 온전히 집중하고, 쉰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농구에 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원칙은 소통과 태도주 감독의 지도자 여정이 승승장구였던 것은 아니다. 5개월의 코치생활 직후 감독 대행을 맡으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정식 감독이 아니어서 선수들과 합을 맞추기 어려웠고, 제가 선수들한테 끌려가더라고요. 정식감독이 된 2020년부터 선수들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내가 원칙을 세워서 내가 이끄는 농구팀을 만들기 시작했죠.” 소통을 중시하는 주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작정 명령하지 않고, 왜 이 기술을 써야 하는지 이해시킨다. “실수는 좋은 경험입니다.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죠. 실수를 하면 선수들이 피부로 느끼고 반성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왜 틀렸는지,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어 줍니다. 선수들도 제 말을 이해해 주면서 열심히 따라와 주고 있고요.” 그러나 주 감독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었다. “저한테 처음 오면 농구기술이 아니라 인사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농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닌데, 다들 고등학교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1대1 농구만 했더라고요. 같이 하는 법을 모르는 거죠. 그래서 프로로서의 태도, 예의범절과 인사를 먼저 가르칩니다. 조금이라도 등한시하면 엄청 혼냅니다. 배우려는 태도가 먼저 돼야 실력을 갖출 수 있으니깐요.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 신념이 그래요.” 고연전, 초심으로 돌아가 무조건 이길 것주 감독이 이끄는 농구부는 코로나 이후 2022년부터 재개된 정기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올해 연대와의 전적도 9전9승으로, 9월 열릴 정기전에서 가뿐히 승리할 거라 예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주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력은 연대와 비슷하다”며 “이전의 승리는 모두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어려운 게 정상을 지키는 겁니다. 치고 올라가는 것보다 어렵죠. 그래서 매 경기, 매 쿼터마다 이전의 승리를 잊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선수들이 잊지 않는다면 이번 정기전도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교 농구부의 강점은 빠른 속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능력이다. 지난달 mbc배 농구대회 결승전에서도 연대의 강점인 3점슛을 봉쇄하고 수비에 사활을 걸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저희의 강점인 수비농구를 할 겁니다. 공격 실력은 연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수비에 승부를 걸고, 보시는 분들이 재미있도록 빠른 속도의 경기를 할 겁니다. 스포츠에 당연한 건 없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교우분들, 후배님들 기쁘게 해드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유진 기자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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