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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선형 기자 단과대학을 찾아서[5]김기환(통계85) 공공정책대학장 국가정책 및 행정의 산실인 정부세종청사와 국책 연구단지의 입주로 대한민국 행정수도의 면모를 갖춘 세종시.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초여름 햇볕만큼이나 강렬한 학생들의 학구열이 모교 세종캠퍼스를 가득 채운다. 국내 최고의 정책교육 및 연구기관을 목표로 하는 공공정책대학을 찾았다. 김기환 학장은 모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정보통계학과 교수를 역임한 후 지난 2020년 공공정책대학장에 취임했다.공공정책대학 소개를 부탁드립니다공공정책대학은 2017년 만들어진 단과대학입니다. 기존의 공공행정학부, 북한학과, 응용통계학과 등을 통합해 출범했고, 현재는 정부행정학부, 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 경제통계학부, 빅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부설 연구기관으로 공공정책연구소와 경제통계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의 장점을 기반으로, 불확실성을 보완하기 위해 통계를 포괄하는 데이터사이언스와 AI 관련 전공을 접목해 학문을 정량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전공으로 공공정책대학원에 국토 및 도시정책협동과정을 신설하고, 지난 2020년에는 도시재생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세종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공공정책대학만의 특징이 있을까요?기본적으로 세종시에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세종시는 모든 정부 주요 행정기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행정도시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대학에서 경제학, 행정학, 사회학, 사회 복지뿐 아니라 외교, 정치, 통계학까지 망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과학뿐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결합해 정부가 개혁적인 정책을 펼 수 있도록 공공정책대학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많은 학부 졸업생을 비롯해 대학원 졸업생들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진출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학과 연계해 공공기관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형설제’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공정책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대학이 추구하는 발전 목표가 궁금합니다저희는 ‘미래 사회 변화 및 지역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과 연구를 실현하는 공공정책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화 교육을 확대하고, 단과대만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사회정책분야의 연구를 확대하고 국가 및 지역 사회 정책 연구의 허브화가 그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학과 간 융합 교육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우리 대학에서는 ‘공정인의 날’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부생들이 본인의 전공뿐 아니라 타 전공을 들어볼 수 있게끔 소개하고, 모교 졸업생이나 외부 인사와의 대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정부행정학부의 경우 행정고시에 합격한 교우를 초청해 재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하기도 하고, 빅데이터사이언스학부같은 경우 IoT분야 명사들이 학생들에게 현직 경험을 직접 전수하기도 합니다. 전공 간 융복합의 날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높은 참여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공기관과 국책연구기관에서 요구하는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재교육 시스템 마련’을 목표로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세종시의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전 등지의 시민들까지 체계적인 재교육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국난을 맞이한 이후 빠르게 회복·성장한 나라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맞이했는지, 경제 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디지털 기반 경제와 사회 분야에서 전반적인 지식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화된 경제기반 속에서 이를 전반적으로 배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재교육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입니다.공공정책 분야 교육의 트렌드가 무엇일까요?최근 들어 융복합적인 지식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습니다.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회과학 또한 공학과 연계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공정책대학에서는 환경공학과 도시공학 등과 연계하는 프로그램 또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학생들이 전통적으로 교과서를 보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형태의 교육으로는 융합적 지식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MOOC(온라인 공개 수업), 캡스톤 디자인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식을 수용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공공정책대학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학 발전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은 준비를 통해 과거와는 달라진 교육 환경을 구축했고, 새로운 커리큘럼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실시 중인 단과대 내 학생들의 교육 시설 개선 사업이 그 일환입니다.앞으로는 공공정책대학이 주목받는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많은 기대를 부탁드리고, 공공정책대학을 졸업하신 교우님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정덕수 기자세종캠퍼스 공공정책관 건물 전경. / 공공정책관 2층 로비 열람실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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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수(영문83) 모교 교수·극작가 강의와 작품활동 병행하며 강행군가슴 속 쌓아둔 이야기 맘껏 풀어내고파문학에의 꿈 하나만으로 인생을 오롯이 한 길만 걷는 홍창수 교우. 삶 자체는 단순해 보여도 그의 가슴 속에는 그가 창조해낸 많은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느라 들끓는 용광로 하나가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는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그가 불리고 싶은 직업은 그저 ‘작가’일 뿐이다.영문학도, 희곡에 눈뜨다노트에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문학 소년이었던 홍 교우는 정희성 시인 등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던 용산고의 문예반에서 꿈을 키웠다. 국문과를 지망하는 그에게 담임 선생님은 비교 문학의 매력을 어필하며 영문과를 권했다. 어수선하던 시국, 그는 ‘시’와 ‘글쓰기’로 시대를 버텨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여석기 교수님의 희곡 강의를 듣게 되고 말 그대로 개안(開眼)을 하게 된다. 이후, 영문과의 다양한 희곡 수업들을 듣고 한때 영어연극반에서 공연제작에 참여하면서 그는 정말 열심히 글을 썼다. 글 속에 그의 세상이 있었고, 희곡을 쓰며 인생을 그려나갔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욕심이 없었기에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직장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생활이 팍팍하고 정신이 빈곤에 허덕일 때, 아버지가 소개해준 연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만나서 세상 물정 모르고 시를 읽어주는 홍 교우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고 한다.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구그 후 석.박사과정은 망설임 없이 국문학을 택했다. 시를 쓰고 글을 쓰던 그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다.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 그의 첫 장막극 <오봉산 불지르다>가 무대에 오르게 된다. 마당극 스타일에 판소리 형식이 가미되어,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창을 못하고, 소리를 하는 노래꾼은 연기가 약해서 애를 먹었지만 그 작품은 그 해 동아 연극상 후보에 오르고, 동숭 아트센터에서 장기 공연도 했다. 그가 아끼는 다른 작품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는 세상의 부조리와 개인 간의 관계성 등을 실감 나는 현실적 상황으로 엮어낸 흥미롭고 의미 있는 주제의 연극이다. 최신작 <누란누란>은 알이 쌓여있듯 위태로운 상황을 뜻하는 제목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그린 작품이다. 꼼꼼한 취재로 실감 나는 현장을 묘사할 수 있었던 건 홍 교우가 대학 현장에 있기도 하지만, 늘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가벼이 바라보지 않는 습성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엔 메시지를 자주 표면에 드러내곤 했었어요. 하지만 사실 인간에 대한 천착을 놓치면 그런 것들은 의미가 약해집니다.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이 알아볼 수 있는 등장인물을 그리는 일에 공을 들이는 편이죠.”올 여름, 쟁쟁한 대학로의 극단들이 참여하는 ‘76페스티벌’ 축제에서 홍창수 작가의 <원무>가 무대에 오른다. 몇 년 전 <원무인텔>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공연되었던 작품으로, 이번엔 원제를 되살리고 극을 보완하여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도 극작가로글감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홍 작가. 창조적 작업을 하다 보면 글을 쓰는 중에 다음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늘 기다리고 있다. 학기 중에 작품을 쓰고, 방학 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하는 강행군 덕분에 두 번이나 과로로 쓰러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아직 쉬고 싶지 않다. 은퇴 후에 시간을 마음대로 쓰면서 저장해놨던 작품 창고를 열어 글로 엮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 뿐이다. 그는 바쁜 중에도 6년째 83학번 동기들을 위한 ‘세계명작희곡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한 달에 한 편씩 좋은 작품을 골라 배역을 정해서 함께 읽으며 토론도 하고 세 번이나 공연도 올렸다. 친구이며 작가인 교수가 지도해주는 귀한 모임에 친구들은 고맙게 참여하지만, 정작 홍 교우 본인은 친구들 덕분에 막연하고 추상적이던 관객들의 시선을 구체화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자기가 더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다시 태어나면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홍 교우이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새로운 직업을 찾느라 신발을 바꿔 신을 것 같지는 않다. 다음 생이 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하고픈 얘기들로 원고지를 채우며 ‘작가 홍창수’로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글/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사진/김영숙(서문83) 아트에세이스트25년 만에 만난 남녀가 서로의 기억을 파헤치는 2인극 문제작 <원무>.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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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권진규 전>(위 사진)과 기후 위기 연극을 함께 관람한 여문방 교우들. 교우모임 소개 여교우문화방(여문방)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데, 지난 2년은 반대로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게 느껴지는 시기였다. 코로나로 인한 혼자만의 시간은 길었고, 각종 문화예술계 행사들은 중단되거나 축소되었다.하지만 최근 코로나의 기세가 조금씩 사그라지며 중단되었던 다양한 문화예술계 행사들이 재개되고 있다. 채우지 못했던 예술과 사람에 대한 갈증을 함께 해소해나가고 있는 여교우문화방(이하 여문방)을 만나보자.함께하면 더 즐거운 문화생활여문방은 지난 4월 김영숙(서문 83) 교우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모교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미술사 책을 다수 펴낸 다작의 미술에세이스트다. 김 교우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우들은 많지만, 그 교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전시회나 공연은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지만,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며 스스로의 취미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여문방이 시작되었다.신생모임이지만 활발한 활동 이어가여문방은 모교 여자 교우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전시나 연극, 영화, 뮤지컬, 음악회를 함께 감상하는 모임으로 여자교우회(회장 이재필·간호75)의 후원 하에 김영숙 교우를 중심으로 노혜숙(국문84), 김미경(독문83), 김보경(영문87) 교우들이 손을 보태어 운영하고 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모임이지만, 매 행사에 10~20명 안팎의 교우들이 함께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넓은 스펙트럼의 활동들4월 첫 활동으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_노실의 천사> 전시를 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해당 전시 감상회에는 1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권진규 작가의 조카인 허명회 모교 통계학과 교수가 특별 도슨트로 참가했다. 약 40분간 전시를 감상한 후, 인근 덕수궁에서 산책과 식사를 함께 하며 전시에 대한 서로의 감상을 나눴다.두 번째 활동은 연극 관람이었다. 여문방 교우들은 연극 <기후 비상사태: 리허설>을 함께 관람하며, 우리가 늘 느끼고 있지만 애써 외면해 왔던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번개모임을 통해 더 끈끈해져여문방 교우들은 이와 같은 정기 모임 외에도 번개 모임을 통해 활발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달 번개모임으로는 JTBC ‘팬텀싱어3’의 유채훈, 최성훈이 출연하는 <2022 시네마 파라디소> 관람을 계획 중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교우들의 도움과 문화예술에 애정을 가진 교우들의 활발한 참여로 여문방은 더더욱 끈끈한 교우의 정과 다채로운 활동들로 채워진 교우모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예슬 기자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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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를 기록하다[5] 호상건립 주역 정재훈 교우 1965년 세워진 호상(虎像)은 학생들이 발의하고 성금을 모아 건립됐다. 당시 건립추진위원회 회장 정재훈(경영61) 교우가 최근 호상 건립 당시의 사진자료를 모교에 기증했다. 정 교우는 1977년부터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6개월 전 귀국했다. 해군사관학교 15기생이었던 그는 4학년이던 1960년 7월 혼란한 사회상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생도들과 함께 상경하다가 대구에서 체포돼 퇴학을 당했다. 당시 국방부차관이었던 이희봉(보전법과31회) 법과대 교수의 권유로 편입시험을 치르고 모교에 입학했다.“고려대학교는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준 학교였어요. 내가 성장할 곳이라는 마음으로 학교의 역사를 공부해 보니 1905년 이용익 선생이 어떤 외세의 힘도 빌리지 않고 민족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설립한 학교였어요.”정 교우는 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의 대학이라는 상징이 본관 기둥에 새겨진 작은 호랑이뿐이라는 게 아쉬웠다. 1963년말 학교 심벌이자 교시탑(校是塔)으로 호랑이 상을 우리 손으로 세우자고 발의하고 이듬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 교우가 회장을 맡고 천신일(정외61), 이경우(법학61) 교우가 부회장, 총학생회장이던 구자신(경제61) 교우가 명예회장을 맡았다. 유진오 당시 총장은 학생들이 학교 상징물 건립에 나선 것을 격려하고 학교차원에서 기금 모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호상 건립은 개교 60주년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 당초 계획보다 훨씬 큰 규모의 호상 제작이 가능했다. 총모금액은 240만원. 호상건립에 176만 5000원을 쓰고 잔액은 모두 장학금으로 조성했다. 기공식은 1964년 7월 15일, 상량식은 12월 18일, 제막식은 1965년 2월 25일 졸업식 직후에 거행됐다. 호상 제작은 4·18기념탑을 조각한 민복진 작가가 맡았다. 정 교우는 민 작가에게 지구 등을 올라타고 포효하는 호랑이를 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축대와 ‘자유 정의 진리’를 상징하는 세 사람(그중 진리는 여성상으로) 조각도 그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가 작성한 초안을 보고 조지훈 선생이 호상비문을 써주셨다. 민복진 작가가 상량식 때 관련 원본 문서들을 지구본 안에 넣었다고 말했다는데 어떻게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 교우는 호상 건립 과정을 담은 귀한 사진 76점과 졸업식에서 공로패로 받은 호상 모형 트로피를 모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용호(국문86) 모교 박물관 특임교수상량식 날 호상에 올라선 학생들. 맨 꼭대기 오른손을 치켜든 이가 정재훈 교우. 1964년 7월 15일 호상 기공식. 앞줄 왼쪽부터 민복진 조각가, 이희봉, 차낙훈 교수, 김덕은 교우회 이사장, 유진오 총장, 김상만 재단이사, 정재훈 교우. 1964년 12월 18일 상량식. 앞에는 고사상이 놓여있고 사람
들이 지구본 위쪽으로 항아리 모양의 주머니를 흰 끈으로 끌
어올리고 있다. 정재훈 교우는 호상 건립 관련 원본을 지구본 안에 넣어 보존했다고 말했는데 이 장면으로 추정된다. 1965년 2월 25일 호상 준공식에 앞서 열린 졸업식에서 정
재훈 교우가 유진오 총장(왼쪽)으로부터 호상 모형의 공로패를 받았다.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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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불문67) 영화감독 “불의와 공정 다룬 내 영화들,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길” <남부군>, <하얀 전쟁>을 비롯해서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강한 색채의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감독 정지영 교우를 만났다. 왕성한 작품 활동은
물론, 영화인들의 권익을 지키고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일하고 있는 정 교우는 놀랍게도 불어불문학과 67학번이다. 그토록 많은 영화를 만들고 지금도 각본을 매만지며 새로운 소재를 기획하고 있는 그의 나이를 새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오로지
‘영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한 눈 팔지 않고 영화 한길로 부모님은 청주에서 작은 책방을 하셨다.
또래들에 비해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일찍 싹텄던 환경이었다. 어린 시절, <오발탄>이란 소설이 시나리오로 바뀌고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변하는 신비를 경험한
그는 그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으나 커리큘럼이 영상에 대한 목마름을 충족시키기엔 많이 아쉬웠던 시대였다. 전공을 바꿔 고대 불문과에 다시 들어와 고대 연극부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예 영상을 만드는 모임을 직접 만들었다. 바로 동아리 ‘돌빛’의 전신이었다. 대학 졸업 후, 영화사에서 제작을 배우면서 만든 첫 작품이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였다. 그 이후로도 그는 영화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나마 외도라고
말하는 유일한 기간이 MBC에서 PD로 드라마를 만들었던 짧은 시간뿐이었다. 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실제 자행된 민주화
인사에 대한 고문을 다룬 <남영동1985> 포스터. 작품에 정지영의 색을 입히다 그를 세상에 알려준 영화 <남부군>은 그에게 청룡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안겨주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전후 문학을 통해 세상을 보았던 그가 선택한 작품이었지만 그는 <남부군>을 자신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었다고 말한다. 개봉 당시,
아직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린 시기는 아니어서, 만일 문제가 생겨도 ‘내 뒤에는 국민이 있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후 월남전의 실상과 참전군인의 아픔을 그린 <하얀
전쟁> 역시 동경국제영화제에서 대상과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이후로 자연스레 ‘정지영 브랜드’처럼
그에게 기대하는 영화의 색깔이 생겨난다. 결국 <남영동 1985>나 <천안함 프로젝트> 제작 등으로 그는 한동안 운신하기가 힘든 세월을 보냈다. 금속 활자 이야기를 담은 교양프로를 제작하려 해도 정지영이라는 이름 때문에 너무도 먼 길을 힘들게 돌아야 할 만큼 그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문제를 접하고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걸 못 참는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의와 공정의 문제를 다룬 제
작품을 보고 토론하길 바래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그들 편에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영동1985>을 만들 때, 그는
관객도 영화 속의 고문당하는 사람처럼
함께 아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께 느끼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향점은 위에 언급한 그의 작품 한 편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어렵게 영화 만드는 감독
순천향대학교에 이어 모교 미디어학부에서도 3년간 강의를 했지만 늘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메가폰을 든 현장이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법을 배우며 커왔듯이 요즘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상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신선하다.
의도하는 것만 보여주는 현대의 영상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할 줄 알기 위해서는 영상물의 행간을 읽는 교육도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점이 너무 아쉽고 절실했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먹고 살죠. 뭐 벌어 놓은 것도 없고... 하하!” 이렇게 말하지만, 이미 탄탄하게 만들어 놓은 제작사는 모교 언론대학원을 나온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 잘 운영하고 있다. 7년 동안 아픈 아내의 수발도 오롯이 그의 몫일 만큼 생활인의 역할도 충실하다. “아티스트 감독들은 자기 얘기를 하고자
영화를 만들죠. 그들이 주는 자극들을 받아
들이고 배우지만, 대신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대중 영화감독인 내가 합니다.”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는 소재를 재미있게 그려내느라 한국에서 가장 어렵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를 자청하는 정 교우. 주름진 얼굴과 연륜이 넘치는 품위 속에서도 그의 젊은 패기는 영원할 것 같다.
파이팅! 청년 정지영! 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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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대학을 찾아서[4] 최기홍(심리95) 심리학부장 “독립학부 출범 1년,
국내 1위 자리
굳건히 지켰습니다” “국내 최초, 유일의 단독 심리학부”, “국내대학 전공평가 3년 연속 1위” 화려한 수식어만큼이나 탄탄한 내실을 갖춰 국내 심리학 연구‧교육의 중심이 돼가고 있는
모교 심리학부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리과대학 교육심리학과로 설립됐고 1962년에 심리학과로 분리
독립하며 문과대 소속 학부로 편성됐다. 이후 연구와 취업 분야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보여주며 2021년부터는 국내 최초의
단독 심리학부가 출범했다.
모교 심리학부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균형 속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독립
학부로서의 역량을 통해 미래사회 다양한 문제들을 유연히 해결할 창의인재를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심리학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심리학부는 이때까지 3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작년에 분리 독립을 해 올해부터는 문학사와 이학사를 동시에 배출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국내대학 심리학과 평가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올해 QS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심리학부가 국내
최초로 100위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내년부터는 특수대학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산학연계 교육을 통해 브랜딩이나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분야와 심리학을 연결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를 계획입니다. 심리학부만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초기 심리학부가 설립될 때 굉장히 다양한 연구 분야가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캠퍼스 내의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의 협력도 가능했고, 각각의 영역이 다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다양성의 학문을 추구해왔던 모교 심리학부의 축적된
시간들은 넓고 다채로운 학문적
스펙트럼을 구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크게 임상 및 상담심리, 행동인지 신경과학, 문화사회성격심리, 소비자 및 광고심리, 산업 및 조직심리 분야로
나뉘는데, 다섯 가지 영역에서
열정적인 교수진과 학생들이 각자 학문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독립 학부로 출범하게 된 계기는? 우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졸업할 때 문학사와 이학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커리큘럼을 선택할 수 있고, 특히 이학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심리학부 졸업생의 취업 기회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연구의 측면에서는 융합
학문으로 나아가는 데 학부 독립이 중요한 발판이 됐습니다. 심리학을 중심으로 여러 학문을 융합한다는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과 체계를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교육환경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독립 학부가 출범할 때 공간 문제에 가장 큰 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학부 교수님들께서 라이시움, 문과대학 서관,
사범대학 신관, 운초우선교육관
등 학교 여러 건물에 흩어져 계십니다. 연구실과 실험실의 거리가 멀어서 생기는 문제도 분명
발생할 수 있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은 법학관 구관에 엘리베이터와
진입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이동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필수적이고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공간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법학관 구관의 엘리베이터와 진입경사로 설치는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신경써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 연구 분
야는 무엇인지요? 모교 심리학부에서는 중점을 두고 있는 연구 분야 하나를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연과학으로부터 인문학에까지 펼쳐진 넓은 연구 스펙트럼 중에서
대표 연구를 꼽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개해 드리고 싶은 연구는 국내 유일한 심리학부로서
BK사업단 선정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불균형 해소 및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심리과학 교육
연구단’입니다. 심리학이라는 허브 학문을 통해 다학제적 융합을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사회적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심리치료나 심리평가
등의 역량을 활용해 소외계층을
위한 서비스를 지원한다든지,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국민적 인식과 동참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든지 등의 주제를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교우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
신지요? 교우회는 심리학부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우들께서 교수자와 학생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큰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매번 감사한 마음입니다. 학부 내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으면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서 도와주시는 모습에 항상 든든함을 느낍니다.
특히 저희 학부에서는 심리학부 교우회와 연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심리학부 교우회와 함께 졸업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출신 교우들이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조사해 학부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심리학부
교우회와 협력해 잡페어(Job
Fair)를 개최했습니다. 교우 강연과 주제별 질의응답 등 학생들과 교우들이 한데 모여 교육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처럼 앞으로도
교우회와 학부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 관계를 돈독히 이어
나가려 합니다. 박형규 기자모교 심리학부의 주 공간인 법학관 구관 전경. 심리학부 연혁1959. 문리과대학 문학부에 교육심리학과 신설1962. 교육심리학과를 교육학과와 심리학과로 분리1968. 행동과학연구소 설립1998. 학부제 시행안 확정, 인문학부에 심리학과 포함2005. 부부상담연구소 신설2008. 지혜과학연구소 설립2015. 부부상담연구소를 KU마음건강연구소로 명칭 변경2021. 심리학과가 심리학부로 독립 출범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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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부교우회는 송년의 밤을 열어 매년 교우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교우모임 소개관악부교우회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관악기의 울림. 1990년대 초까지 관악부(당시 취주악부)의 사운드는 고연전의 열기를 고조시키며 호랑이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이후 관악부는 교우와 재학생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준비한 다양한 연주회를 통해 그 음악적 낭만을 이어왔다. 관악부의 100년 세월을 함께한 관악부교우회(회장 인기환·물리76)는 오늘도 다음 마디 연주를 위한 들숨을 준비한다.취주악부부터 관악부까지의 든든한 버팀목1920년 보성전문학교 시절 학생회 역할을 했던 보전친목회에서 조직한 취주악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취주악대는 학생들에게 교가, 응원가 등을 전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연희전문과의 운동경기에서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1955년 학교의 지원을 받아 취주악부가 창설됐고, 모교 제1호 동아리로 등록됐다. 1992년 고연전 응원이 전자악기로 대체되면서 학교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이 끊기게 됐고, 순수 취미 클럽으로서 자리 잡게 됐다. 그러한 배경 속 지금까지 합숙, 신춘연주회, 정기연주회 등의 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1978년 출범한 ‘취주악부 동문회’는 ‘관악합주단’, ‘윈드앙상블’, ‘관악부’로의 명칭 변경을 겪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관악부교우회로 정착했다. 현재는 윤세영(사학55) 교수를 필두로 문과대, 이과대, 공과대 등 다양한 단과대에 걸친 400명의 교우가 소속돼있을 만큼 성장했다. 70년대 이전 학번 130여 명, 80년대 학번 80여 명, 2010년 이후 학번 70여 명 등 전체 교우 학번의 분포가 고른 점도 특징이다. 단지 친목 이외에도, 2004년 창단된 졸업생 중심의 연주 단체 ‘위튜티’, 교우 밴드 등을 통해 음악 활동 또한 이어가고 있다.매년 정기 행사로 음악적 교류 지속해관악부교우회는 재학생 관악부원들과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해왔다. 선후배 합동 연주회 및 송년연주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동아리 활동을 졸업한 교우들도 계속 음악 활동에 참여한다. 2019년 송년의 밤에서는 전문 클라리넷 주자 이혜선(응용동물90) 교우의 지휘로 교우밴드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관악부의 핵심 연주회인 신춘연주회와 정기연주회를 위해 재학생들은 합숙 연습을 실시한다. 이때 교우회는 합숙 장소에 방문해 연습하는 재학생들을 격려하고, 나아가 사기 증진을 위한 맛집 투어 등을 진행해왔다.이뿐만 아니라, 매년 1회 홈커밍데이와 체육대회를 진행해 서로가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왔다.2013년에는 KBS홀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주관 제1회 문화예술제에 참가해 관악부 재학생, 위튜티, 교우밴드를 아우르는 80여 명이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했다.또한, 95주년 기념지 출판 기념회와 동아리 등록 60주년 기념 식수 사업 등으로 교우회 차원에서 관악부의 역사를 정리해오기도 했다.선후배가 하나 되는 교우회 지향해관악부교우회는 이문용(상학55) 교우가 기탁한 기금으로 수년간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또한 악기 수리비 지원, 악기 기증, 연주회 지원 등을 통해 관악부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다양한 악기 여럿이 모여 하나의 연주를 만들어내는 동아리에서 출발한 만큼 교우들도 단합과 친목을 최우선의 목표로 한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악기를 계속 연주하는 교우와 그러지 못하는 교우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기환 회장은 “이러한 괴리감을 줄이고 전체 교우가 화합할 수 있는 교우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점의 개선을 위해 관악부 교우 골프회 및 등산회 등 취미 클럽을 활발히 운영해 매월 1회 정기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100년을 발판삼아 다른 단체와의 교류까지관악부는 100년사를 발간해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취주악부인 모교 관악부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서양음악발전사 정리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보성전문에서부터 여러 번의 개칭을 거치며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운영돼왔기 때문에 흩어져있는 긴 시간의 역사를 정돈하려는 목적이다.관악부교우회는 합주의 과정을 거치며 결집된 단체이기 때문에 구성원 간의 조화와 단합이 강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젠 관악부교우회 내의 교류를 뛰어넘어 모교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했던 다른 동아리와의 교류를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전자음악이 도입되기 전인 80년대까지 고연전 응원을 이끌었던 응원단, 석탑 축전에서 음악회를 함께 진행했던 합창부, 그리고 관현악부 교우들과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권병유 기자 관악부(당시 취주악부)가 1979년 정기고연전의 응원을 이끌고 있다.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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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樂好樂 호락호락 대중문화계 고대인을 찾아서 [26] 이지연(체교96) JTBC 골프 매거진 편집장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힘, 모교에서 배웠죠."역삼동의 스튜디오에서 한창 작업 중인 이지연 교우를 만났다. 모델의 옷을 직접 핀으로 집어가며 촬영 진두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한 고대인의 DNA가 느껴졌다.그녀는 중앙일보s 골프팀 팀장이자 JTBC 골프매거진 편집장이다. <골프 다이제스트>, <파이낸셜 뉴스>, <중앙일보>의 기자를 거쳐, 현재는 방송인이자 기획자로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그것도 여자로서 그 자리에 오르려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집념으로 넘어선 사회의 문턱 레슬링을 했던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운동은 안 해본 게 없었다. 백을 직접 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골프를 배웠던 고교 때에 이미 박세리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미래에 스포츠가 가장 핫한 직업이 될 거라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입학한 체교과에는 70명 중 여자가 딱 6명이었다. 게다가 동기들의 엄청난 운동 실력은 운동 좀 했다고 자부하던 그녀에겐 넘사벽이었다. 우연히 모교 선배 기자의 특강을 관심있게 듣게 된 그녀는 신문사로 그를 무작정 찾아갔다. 여러 조언을 듣고 진로를 정한 그날부터 그녀는 오로지 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에만 매진했다. IMF로 집안이 기울자, 그녀는 순전히 자기가 일해서 번 돈으로 학비만 겨우 마련해 영국으로 떠났다. 접시닦이, 식당 서빙 등을 하며 오로지 영어를 배우겠다는 집념으로 매달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일본 오사카에 내렸다. 두 가지 외국어를 공부해 두라는 선배의 말 때문이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그만큼 단순했다. 첫 직장에서 그녀는 차 안에 이불과 갈아입을 옷을 두고, 회사 책상 위에 누워 잠들곤 했다. 선배들은 이지연 기자를 “집에 안 가는 애”로 불렀단다. 인터뷰를 꺼리는 박세리 선수를 만나려고 한 달간 하루도 안 빠지고 연락을 했다. 감명받은 매니저의 허락에 그 길로 유성으로 내려갔지만 밤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같이 찾아온 그녀를 뜨악하게 보던 박세리 프로가 감동했는지 인터뷰에 응했고 그때부터 동갑내기 둘은 ‘집념’이라는 근성을 가진 공통점으로 절친이 되었다. 2015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역대 7번째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와 함께설렘이 전해준 열정의 원동력그녀는 휴가 때마다 세계 대회를 숱하게 다녔다. 그것도 자비로. 미셸 위의 데뷔 경기, IOC 총회, 그리고 꿈에 그리던 리우올림픽까지 기자로서의 일과 좋아하는 일의 교집합보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없었다.JTBC골프로 자리를 옮긴 뒤, 골프 관련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직접 출연도 했지만 그녀의 인생 작품은 지난해 <BOB 나눔의 프로암>이라는 행사였다. 골프를 사치가 아닌 대중적인 스포츠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머리를 짜냈다. ‘나눔’이었다. 기부를 콘셉트로 한 행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성원해주었다. 의자를 하도 열심히 날라서 기획자가 아니라 진행 요원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였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한 행사가 끝나고 나면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또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설렘이 그녀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준다. 인연과 집중, 꿈을 위한 약속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그녀는 놀랍게도 모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일하느라 연구를 대충했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결벽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래, 철저하게 논문을 썼다. 박사논문 ‘LPGA 1세대 골퍼의 삶과 정체성’은 스타골퍼이자 친구인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세 선수가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도움을 받았다. 그만큼 한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의 끈을 귀하고 소중하게 이어간다. 그게 모교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큰 선물임에 틀림없단다.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는 그녀. 능력을 120 퍼센트 이상 쓰며 일해온 까닭이다. 부족함은 시간과 체력으로 때우고 메꿨다. 그녀는 일을 계획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꼭 먼저 알린단다. “약속을 어기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제가 뭘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 그걸 꼭 지켜야 하니까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하게 됩니다.”골프를 누구나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과 약속 역시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반드시 지켜질 것이 틀림없다.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역삼동의 스튜디오에서 한창 작업 중인 이지연 교우를 만났다. 모델의 옷을 직접 핀으로 집어가며 촬영 진두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한 고대인의 DNA가 느껴진다.그녀는 중앙일보s 골프팀 팀장이자 JTBC 골프매거진 편집장이다. <골프 다이제스트>, <파이낸셜 뉴스>, <중앙일보>의 기자를 거쳐, 현재는 방송인이자 기획자로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그것도 여자로서 그 자리에 오르려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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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과대학을 찾아서[3]홍성회(식량자원88) 보건과학대학장“코로나 사태를 교훈 삼아 첨단 바이오 보건의료 분야의 중심으로 도약하겠습니다”모교 보건과학대학은 세포부터 공동체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인간의 몸과 건강을 다루며, 관련 학문들을 통해 인류 건강증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홍성회 보건과학대학장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로서 줄기세포 및 신경재생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혈액 검사를 통해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GCC2 바이오 마커’를 개발하는 등 뛰어난 연구 성과를 통해 보건과학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보건과학대학 소개를 부탁드립니다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보건과학대학의 이미지는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방역정책, 백신, 치료제 등과 친숙해졌고, 보건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는 생각이 듭니다.보건과학대학은 현재와 미래의 질병으로부터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이학, 공학뿐만 아니라 보건학과 사회학까지 포괄하는 다학제간 초융합적 대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학부 차원에서 보건과학 중심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국내 주요 대학으로서 사회의 큰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보건과학대학은 총 4개의 학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포, 분자 수준에서의 생명현상 원리를 인간 질병의 예방, 진단 및 치료 기술개발에 응용하는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공학 원리를 보건의료 분야에 적용하여 의료기기 개발과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의 응용기술 등을 연구하는 바이오의공학부, 생활환경에서 발견되는 방사선과 같은 위해 요인과 질병의 관리 및 치료기술을 개발하는 보건환경융합과학부, 그리고 국내외 보건정책 수립과 시스템 관리를 통해 건강증진을 달성하려는 보건정책관리학부와 함께 첨단 바이오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미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과학관 B동에 위치한 보건과학대학 역사전시관.역사전시관 설립 계기가 궁금합니다코로나 사태는 보건과학대학의 역할과 방향성을 재고하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과거 없이 미래를 그려낼 수는 없기에, 보건과학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내년이면 만 60년이 되는 보건과학대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많은 선배 및 후배 교우님들의 노력 덕분에 역사전시관을 개관할 수 있었습니다.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협소하게 마련되었지만, 점차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역사전시관은 열악한 환경 속 보건의료 전문가 양성이 절실했던 과거와 첨단 보건과학 기술을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루어낸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입니다. 역사전시관 개관이 우리 보건과학대학의 미래를 설계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초대학장인 주인호 박사 흉상.송정장학금 기부식도 있었습니다 故 송정 주인호 박사께서는 세계보건기구 아프리카 지역 수석 고문관으로서 에볼라와 천연두 퇴치를 위해 헌신해 온 예방의학의 선구자이셨습니다. 더불어 모교 보건과학대학의 전신인 수도의과대학 병설 의학기술 초급대학 초대 학장까지 역임하시며 끊임없이 행동하는 지성인다운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0년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하나과학관의 B131호를 송정 주인호 강의실로 명명했습니다. 이때 고 주인호 박사의 따님이신 주혜란(의학69) 박사께서 부친과 서울여자의과대학(모교 의대 전신) 3회 졸업생인 모친 고 김경신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후배들을 위해 10억원을 기부해주셨습니다. 최근에도 역사전시관을 개관하는 데 많은 도움과 함께 송정장학금 1억원을 기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개관식과 기부식을 함께 진행했습니다.대학의 비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한마디로 ‘인프라 확충’입니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교과과정을 도입하고, 연구공간을 더 마련해야 합니다. 또 인재 양성을 위해 뛰어난 교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력을 향상시켜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건과학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마련된 인적, 물적 자원과 구성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시대의 요구에 맞는 보건과학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교우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최근 학내외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건과학대학 역사전시관 개관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보건과학을 이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및 교직원과 보건과학대학을 거쳐 간 모든 교우님들과의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물리적, 화학적 결합을 바탕으로 학령인구 감소와 고령화,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라는 시대적 위기에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대학은 단순히 사회의 변화에 맞춰 후발적으로 움직이기보다 변화 자체를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건과학대학은 현재 급격한 외부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교육체계 개선과 연구역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보건과학대학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우님들의 많은 조언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최예슬 기자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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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를 기록하다[4] -홍일식 제13대 모교 총장(하)홍일식 전 총장 인터뷰는 모교에서 진행하는 역대 총장 영상구술채록사업의 일환입니다. 인터뷰 영상은 대학기록자료로 보존하며 온라인에 공개할 예정입니다.홍일식(국문55) 제13대 총장은 1994년 6월 15일 4년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식은 17일 열렸다. 취임사에서 ‘고대 중흥’을 목표로 제시하고 ‘대학경영의 효율화, 연구의 정예화, 교육의 창의화, 민족문화의 세계화’를 실천지표로 제시했다. 이어 홍일식 전 총장은 그해 10월 10일, 당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대학이 앞장서야 한다는 취지를 담아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 교육선언을 발표했다. 도덕성 회복과 교육의 혁신을 주창한 이 교육선언은 교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총장학의 스승, 유진오·김상협“총장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찍부터 여러 총장님을 지근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어요. 특히 유진오·김상협 두 분은 내게 총장학의 스승입니다. 유진오 총장님은 우리 고려대학교를 대학다운 대학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특히 보성전문학교 시절의 와일드한 기질에 지성을 더하고자 ‘사색하는 고대’를 내세웠습니다. 김상협 총장님 역시 그 연장선에서 ‘지성과 야성’을 제시하고 민족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균형과 종합을 내세웠어요.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를 외칠 때 내 마음속에서 큰사람은 김상협 선생님 같은 분이었습니다.”홍 전 총장은 인성 회복을 위해 《신명심보감》을 펴내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그는 이를 구심(求心) 지향적인 것이라 표현하고 동시에 원심(遠心) 지향적으로는 외국어 교육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취임하던 해 12월 국제어학원을 신설해 학생들이 외국어 2개를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게 했다. 홍 전 총장에게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는 모교의 교육철학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 교육선언과 함께 그는 대국민 성금 모금에 나섰다.“1930년대 중앙도서관을 지을 때 인촌 김성수 선생이 보성전문을 민족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만든다는 마음으로 지방의 유지를 찾아다니며 모금을 했습니다. 그 뒤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모금 운동은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가 처음입니다.”홍 전 총장은 대학이 구체적인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모금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 정세영(정치49) 교우회장은 안암동 교우회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고 있어 교우회가 많이 도와줄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한 구좌당 매월 만원씩, 1년 12만원, 3년간 내도록 하는 모금을 시작했는데 일반 국민들의 호응이 참 컸어요. 총장 임기를 마칠 때 결산해보니 현금 860억, 부동산 2700억이었고 교우와 학부모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가 아주 많았어요.”“과거 계승하며 미래 대비해야”모교의 역사와 교육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홍 전 총장의 의지는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총장 취임 직후 그는 그때까지 건물 내부에 있던 이용익·손병희 선생의 흉상을 바깥에 설치했다.“1959년 세워진 인촌 동상은 재단, 학교, 교우회 3자가 다 돈을 내서 건립했어요. 그때 교우들은 보성전문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 위기의 학교경영을 맡아준 은고자 손병희 선생의 동상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어요. 그래서 교우회 단독으로 돈을 내서 두 분의 흉상을 만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이용익 흉상은 도서관 열람실에, 손병희 흉상은 서관 현관에 설치했어요.” 홍 전 총장은 외국의 대학을 가보면 학교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의 동상이나 흉상이 모퉁이 돌 때마다 세워져 있다며, 이용익 손병희 선생의 흉상을 건물 바깥으로 옮겼다. 교우들이 뜻을 모아 세운 두 분의 흉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1996년 착공해 1998년 완공한 4.18기념관에는 ‘교사(校史)자료전시실’을 만들었다. “동기인 윤세영(사학55) 박물관장에게 보성전문 시절의 교복, 책상부터 전부 모아서 일목요연하게 고려대 역사를 볼 수 있게 교사전시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지금 우리가 해놓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릴 거라고.”그때 만든 교사자료전시실은 현재 백주년기념관 1층 ‘백년사전시실’로 옮겨왔다. 또한 자연과학 분야 변화상을 보고 미래를 대비하고자 생명공학원을 출범시켰다. 73억원의 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냈지만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교수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동서양 의학 융합연구를 목표로 추진한 한의대 설립은 결국 무산됐다. 총장 재임 중 직원노조나 학생회는 잠잠했지만 몇몇 학과 교수들과의 갈등은 아쉽고 안타까웠다고.“1986년 민연에 외국인 대상 한국어문화연수부를 만들면서 언젠가는 한국어만 가르쳐도 먹고 살 날이 올 거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우리에겐 미래를 보고 준비하는 역사철학이 필요합니다.” 홍일식 전 총장은 2001년 모교 정년퇴임 후 현재 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으로 1980년대부터 천착해온 ‘문화영토’ 개념을 연구하고 확산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전용호(국문86) 모교 박물관 특임교수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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