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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구 교문이 닫히던 1971년, 그 가을의 침묵을 기억한다
구 교문은 1965년 현재의 4·18기념관 자리에 세워졌다가 1971년 건립된 새 교문에 정문의 지위를 넘겨줬다. 1995년 세종캠퍼스로 자리를 옮긴 구 교문. 사진 : 김호영(기계공68) 명예교수 담장을 쌓고, 마지막 대문을 지어 달면 집은 완성된다. 집을 그리는 화가들에게 대문은 이와 같이 그 집의 얼굴이고 표정이었다.내 지금 모교를 추억하고자 함에 먼저 ‘구 교문’부터 열고 들어 가는 까닭은, 그것이 학교를 말하는 순서의 시작임을 알기 때문이다.장미 울타리였다.울 밖으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석탑과 철제대문이 우뚝 솟아있었다.등교하는 아침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장군을 위한 노래가 발걸음을 재촉하였다.모교를 추억할 때마다 나는 그렇게 우뚝한 교문과 장미 울타리와 녹두장군을 먼저 떠올리고는 한다. 그것이 내 모교를 떠올리는 기억의 실마리다. 오랜만에 안암캠퍼스 학생회관 뒤뜰을 찾아가 4·18기념관 앞에 서본다.바로 이 자리가 옛날 ‘구 교문’ 이 서있던 자리다. 기록대로라면, 1971년 12월 21일, 서울캠퍼스 현 정문을 지어 이전할 때까지 그는 이 자리를 지켰다. 아니다. 옛 교문을 폐쇄하고 새로 기념관건물을 들였어도 그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 교문’을 자처하며 한 발 비켜 서있었다. 20년을 넘게 서 있다가 다시 세종 캠퍼스 정문이 되어 떠난 것은 1995년이었다.여기 왜 4·18기념관이 서있는지 까닭을 모를 사람은 없다.1960년 4월 18일, 그날 우리 고려대학교가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민주 함성의 첫 포문을 열고, 이튿날 4·19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돌탑 이전의 사립문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족고대의 신화요 전설임을 자부한다.지금은 고즈넉한 추억의 뒤안길이 되고 말았지만, 그 시절 이주변 일대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역사의 ... [2020-08-13](Hit:2)

49년 만에 전하는 교우회보 16호 - 1971년 10월 15일 군인의 모교 침탈 현장 생생히 담아
제16호(1971년 11월호) 3면 교우회 소식을 담은 3면 기사 일부는 그 다음달 12월호(제17호) 기사로 게재됐다. 김성곤 당시 교우회장의 국회의원직 상실 기사와 ‘10·15사태’ 직전에 일어난 ‘10·5 무장군인 난입사건’에 대한 교우회 공개서한 기사는 다음호에 실리지 못했다. ‘10·5 무장군인 난입사건’ 직후 교우회는 긴급 상무이사회를 소집해 정부를 규탄하며 모교 수호 의지를 밝힌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군인들의 모교 침탈에 대한 교우들의 분노가 담긴 이 ‘공개서한’ 전문은 아래와 같다.  존경하는 총장 및 교직원 그리고 6천 고대 건아 여러분. 우리 민족의 양심이며 민족의 보루인 석탑이 역사의 계율을 역행한 일부 몰지각한 군인들의 난행으로 빚어진 10·5 사태에 우리 고대인이 보여준 학원수호의 인고와 용기에 3만 교우는 진심으로 찬사와 성원을 보냅니다. 우리 교우회는 10월 10일 비상 상무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거번 6·3사태의 치욕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 무장군인 난입 사태가 발발 한데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석탑 존립의 위기로 간주, 우리 3만 교우는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할 뿐 아니라 차후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재발할 시는 우리 전고대인은 총궐기하여 최후까지 모교 사수에 몸바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다행히 당국에서 응분의 공식사과에 이어 사후 보장을 약속해준 데 다소 안도감을 가지며 계속 사태를 예의 주시할 것을 우리 3만 교우의 총의(總意)로 했습니다. 끝으로 특히 이번 사태에 총장께서 보여주신 만불사(萬不辭) 고대 수호 정신과 의기를 우리 교우는 충심으로 자랑과 보람으로 느끼며 앞으로 더욱 고대발전에 힘써 주실 것과 고대생 제군은 총장님의 대의를 받들어 70년 고대사(高大史)에 부끄럼 없는 고대인이 돼... [2020-07-14](Hit:60)

인쇄 중 제작중단…첫 판 빼돌려 편집인에게 보낸 후 중앙정보부 심문 받아
16호 1면에 넣은 《TIME》 1971년 10월 25일자 19면 사진. “감시당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칼빈총과 최루탄을 들고 왔다”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1971년 당시 교우회보 편집국장은 박춘길(정외57) 교우였다. 그가 제16호 제작과 인쇄중단,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과정을 49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교우회보 지령 600호 기념호 발간을 맞아 1971년 11월 5일자 제 16호의 인쇄중단사태로 회보가 교우들에게 배포되지 못한 경위를 밝혀드릴 때가 된 것 같다. 첫 판 인쇄 후 윤전기 멈춰여느 때처럼 당시 남대문로 일요 신문사에서 ‘고우회보’(당시 제호) 판을 올리고 인쇄에 들어가다 윤전기사가 전화를 받더니 중앙정보부 지시라며 윤전기를 끄고 자리를 떠버렸다. 나는 학생기자에게 인쇄 첫 번째 판을 챙겨 김덕은 교우회 이사장님께 상황을 설명드리라며 보냈다. 그러자 낯익은 고려대 출입 중앙정보부 요원이 나타나 아무 말 말고 따라오라며, 검은 지프차에 올라 을지로 3가 어느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에는 이미 고대 출입 정보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니, 치안국 정보과 이00, 성북 경찰서 정보과(사학과 선배), 학사감사실 김00(연대 정외과), 공화당 유00(나와 정외과 동기) 등이 이구동성으로 “누구 지시로 그런 회보를 만들었느냐?” 다그치며 배후를 대라고 윽박질렀다. 무장군부대가 교정으로 들이닥쳐 교련 철폐를 부르짖는 시위대를 붙잡아 꿇리고 엎드려 시키는 진압작전을 다룬 고우회보 1971년 11월 5일자 제16호가 어찌하여 인쇄중단사태를 빚었는지 짚어보려고 한다. 《TIME》지 기사 사진을 회보 1면에10월 15일 학생회관 5층 고우회보 편집실에 있는데 장... [2020-07-14](Hit:74)

우리시대의 큰 철인지성, ‘지성과 야성’의 교풍을 제시하다
사진은 1979년 제72회 후기 졸업식 김상협 전 총장 1920-19951920. 4월 20일 전북 부안에서 탄생 1942. 일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1946. 모교 정치학과 교수 1962. 문교부 장관 1970-1975. 모교 제6대 총장 1977-1982. 모교 제7대 총장 1982. 국무총리 1985. 대한적십자사 총재 1995. 2월 21일 별세. 향년 76세 새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는 치밀한 지성과 아울러 대담한 야성을 한몸에 지니면서도 능히 그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전인적(全人的) 인간이어야 하겠습니다.지성과 아울러 야성 서양과 아울러 동양 현대와 아울러 원시이 양극단들을 초월적인 입장에서 능란하게 조화통합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슈퍼맨을 우리는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1970년 모교 총장 취임사에서 남재(南齋) 김상협 총장은 박학다식한 학자요, 논리정연한 이론가였다. 매사를 크고 넓게 보는 그는 설득력이 강해, 그의 역사관 시국관은 항상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합리적이지만 상반된 모순을 전부 갖추되, 그 모순을 초월하여 통합 극복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김상협 선생은 늘 따뜻하고 넉넉하고 호방하시었던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이요, 큰 지성’이었다”는 홍일식 전 총장의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남재는 학생들에게 “대학에 와서 학점에 너무 매이지 말라. 많이 배워 학점을 잘 따야 하지만, 세상엔 크고 중요한 일이 많다. 학점보다는 잘 배워 바로 알고 잘 실천함이 더 중요하다”고 새 학기마다 학생들 에게 말했다. 남재는 한창 강의 중일 때 지각생이 들어오면 바로 강의를 멈추고 지각생을 지켜보았다. 그가 필기준비를 갖추고 나면, “준비 다 됐나”하고서 강의를 다... [2020-07-14](Hit:82)

선생의 문학과 학문은 민족문화의 보석으로 영원히 빛나리라
사진은 1959년 고려대 교정에서조지훈 1920-19681920. 12월 3일 경북 영양에서 탄생 1939. <고풍의상> <승무> 발표하며 등단 1941. 혜화전문학교 졸업 1946. 박두진·박목월과 《청록집》 간행 1948. 모교 국문과 교수 1962. 모교 한국고전국역위원장 1963. 모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1967.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8. 5월 17일 별세. 향년 49세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 <승무>문학창작과 학문연구와 사회참여의 세 분야에서 두루 탁월한 업적을 남기셨다는 데에 조지훈 선생님의 고유한 위상이 있다.고전시 계승하면서 현실의식 강한 시세계김소월과 김영랑에서 시작하여 서정주와 청록파에 이르는 계보는 한국현대시의 주류가 된다. 조지훈 선생님은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의 한국시사를 연결해 준 시인으로 한국시사에 기록될 것이다. 청록파를 중심으로 하는 계보 이외에 한국현대시사에는 이상화-이용악-유치환-이육사의 계보와 정지용-김광균-장서언의 계보와 김기림-이상-김춘수의 계보가 있다. 주류시의 특징은 전통적 운율을 현대화한 데 있다.조지훈 선생님의 시에... [2020-07-14](Hit:70)

고대인의 슬기로운 비대면 생활
코로나19로 일명 ‘유튜브 시대’가 찾아왔다. 언택트(비대면) 생활을 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유튜브 이용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여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교우들이 있다. 정보제공, 일상공유, 문화생활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유튜브를 통해 교우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심정현(지교11)모교 1세대 유튜버 밤비걸. 2013년 재학시절부터 뷰티크리에이터로 활동했다. 현재는 일상 콘텐츠로 범위를 넓혀 활동한다.정문영(식품공96)바닷가에 전원주택을 짓고 귀촌 생활을 하는 정문영 교우가 전원생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귀촌을 꿈꾸는 교우라면 알아야 할 X파일과 전원주택 관리법 등 알짜 정보를 소개한다.박남주(법학04)소위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들을 상세히 정리했다. 살아가면서 법을 몰라 피해는 보지 말자.김지혜(심리10)좋은 책을 추천받고 싶다면 놓치지 말자. 직접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작가와의 대화, 도서관 랜선 투어도 진행한다.윤석(체교08)모교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윤 교우가 야구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야구 잘 하는 방법부터 아마추어 야구 이야기까지 다룬다.한주희(국문12), 양다솔(국문12), 최혜림(사학12)세 명의 교우가 모여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주로 다룬다. 방안에서 말레이시아 여행을 떠나보자.차민진(미디어14)유명 유튜브 채널 ‘연고티비’ 출신. 현재는 대치동에서 국어 강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모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다.오진승(의학04)의사로서 친구나 가족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들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 몸에 대한 유익하고 필요한 정보들을 재밌게 알린다추영훈(경영05)올해 모교 행사가 취소되어 아쉬운 교우들을 위한 ... [2020-06-22](Hit:118)

석탑에 스민 노래의 얼 40년 … 시대를 노래하고 청춘을 증언하다
학생회관 5층 노래얼 동아리실에서 만난 교우들과 재학생 대표.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혁규, 조중래, 임창준, 손성조 교우, 김효정 노래얼 부회장, 장정현 노래얼 회장. 2018년 민주동우회 추모제에서 노래얼 선후배 첫 합동공연이 있었다. 김영남 교우(오른쪽)는 1988년 통일노래한마당에서 ‘진혼곡’으로 대상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40주년 기념공연 총무 임창준 교우가 수집한 자료들. 노래얼이 1980년대에 제작한 노래집 네 권(위), 노래얼 10년사·기념공연 팸플릿과 1986년 고연문화제 팸플릿(아래). 모교 재학생 노래 동아리 노래얼이 올해 창단 40주년이 됐다. 노래얼 출신 교우와 재학생들은 4.18의거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40주년 기념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노래얼 40주년 공연은 연기됐다.지난해 4월부터 준비해온 이들로서는 아쉬웠지만 올해 중에 40주년 기념무대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노래얼 출신의 조중래(영문82), 손성조(손병구, 국교85), 임창준(경영88), 송혁규(체교91) 교우 4명과 현재 노래얼 회장을 맡고 있는 장정현(경제19), 부회장 김효정(바이오시스템19) 학생 등 6명을 만나 노래얼 40년 역사에 대해 들었다. 1980년 석화회로 출발, 1984년에 노래얼로“노래얼은 1980년 석화회(石花會)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어요.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에 관심을 가진 선배들이 노래 동아리를 만든 거죠. 그런데 1980년대 대학가는 시대 상황에 대응하는 민중가요가 쏟아지고 그 영향으로 동아리 이름을 1984년 노래얼로 개명을 합니다. 노래얼은 80년대와 90년대까지는 민중가요 동아리 성격을 갖지만 그 이후에는 또 나름대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와 밴드 공연을 해왔습니다. 다소 ... [2020-06-22](Hit:114)

개교 115주년 생일 맞아 모교 발전과 교우 화합 다짐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수상자 기념촬영. 왼쪽부터 구자열 교우회장, 정유근(행정67) 교우 부부, 강병창(전자공74) 교우 부부, 김종양(경영81) 교우, 정진택 총장. 크림슨어워드는 이용희 태광사 회장(가운데)에게 수여됐다(왼쪽 사진). 박상은 샘병원장(오른쪽)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모교방문축제 공로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김재형, 이영훈 교우, 구자열 교우회장, 정동민, 89동기회(대표참석 홍승두), 황창하 교우. 모범지부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뉴욕교우회(회장 하성태, 대리수상), 구자열 교우회장, 이강석 강송송파교우회장.(왼쪽 사진) 모교 교수 수상자들. 왼쪽부터 석탑기술상 이경미, 석탑강 의상 나흥식, 석탑연구상 김성철 교수장기근속 교직원 포상자 기념촬영. 왼쪽부터 김재호 법인이사장, 이희정(심리92) 직원, 크리스티안 월레이븐(Christian Wallraven) 뇌공학과 교수, 전경욱(국교78) 국교과 교수, 김상덕(역교84) 직원, 이미혜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이정훈 직원.모교(총장 정진택)와 교우회(회장 구자열)는 이달 5일 오전10시 모교 본관 앞에서 ‘개교 115주년 기념식 및 고대인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올해 기념식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기존보다 축소하여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크림슨 어워드(발전공로상), 사회 봉사상, 석탑강의·연구·기술상, 직원·교우 공로상, 모범지부 표창, 장기근속자 표창 등이 진행됐다. 정진택 총장은 식사에서 “115년 전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교육 구국의 일념으로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처럼, 21세기에도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심의 고려대학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 이라고 말했다. 구자열 교우회장은 축사를 통해 “모교의 115년... [2020-05-25](Hit:152)

‘대양의 정신’, 대서양 건너 말라위에 희망을 전하다
‘릴롱궤’. 어쩌면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이도시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 말라위 수도이다. 릴롱궤에는 대양누가병원, 대양대학교, 대양농장 등 ‘대양’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대양 상선 대표 정유근 교우의 헌신으로 가능했다.기회의 땅, 중국에서 시작된 대양상선“비행기에서 만주벌판을 바라보는데,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인상적이었습니다.저기에서 나오는 옥수수를 수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유근 교우는 교통부·해운항만청·청와대 등에서 13여 년간 공직을 수행했다.서른아홉의 나이가 됐을 때 정 교우는 퇴직을 결심한다. 지난 40여 년 삶이 배움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해 나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제 전문 분야이기도 했던 해운 사업을 준비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중국이었습 니다. 21세기는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죠.” 한중수교 이전, 한국과 중국의 왕래가 자유롭지는 않았던 시기에 정유근 교우는 홍콩, 베이징을 거쳐 길림성을 향한다. 그 곳에서 길림성장을 만나 담판을 짓는다.내륙의 옥수수들을 배를 통해 수출해주겠다는 것, 그 결과로 1992년 대련에 길림 성과 합작회사인 장백산유한공사가 설립됐다. 이는 90년대 세계 벌크운송을 이끌 었던 대양상선으로 이어진다.지성과 야성 겸비하라는 가르침 따라 살아정유근 교우는 1993년 독자적인 해운회사 대양상선을 설립했다. 대양은 전성기에 연 매출 2조원을 달성했는데, 당시 벌크화물운송에서는 세계 2위 기록이다. 또한 중국 대련에 조선소를 설립해서 해운 사업의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졸업식 때 김상엽 총장께서는 ‘여러분은 지성을 겸비했기 때문에 이제는 야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야성은 곧 다이내믹, 역동성이죠. 그 역동성이 저희 대양의... [2020-05-25](Hit: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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