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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강좌

[제355회] 고대 4·18 현장의 기억54년 전 그 4월을 맞는 所懷

등록일 : 2014-05-13 조회 : 10353

이성춘(정외58) 교우
前한국일보 논설위원

나는 1960년 초 정외과 3학년 대표였다. 덕분에 선후배들과 자주 시국 얘기를 나누었다. 3월 하순 경 대학 중 유일하게 고대가 시국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4월 18일 오전 박찬세(법학55) 선배의 <시국선언문> 낭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일제히 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태평로 국회의사당에 500여 명의 고대생이 모였다. 지도부도, 연단도 없는 곳에서 학생들이 돌아가며 애국 연설을 경쟁적으로 했다. 마치 만민공동회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이철승(법과38회) 의원을 찾아나섰다. 그는 야당의 소장파 민주투사로서 특히 젊은 층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의원은 인촌 선생의 훈화를 상기시키며 사뭇 의미 있는 충고를 했다. 유진오 총장도 종로를 찾아와 격려와 함께 귀가를 종용했다. 유 총장께서 경찰로부터 연행된 학생의 석방을 확답받자 소수의 농성파를 남겨둔채 해산했다.

학생대열이 청계천 4가에 이르렀을 때, 괴한들이 나타나 고함을 지르며 학생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그야말로 살기를 느끼게 하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4·18은 4·19로 이어져 독재 정권이 하야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나는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며 4·19정신을 잊지 않으려 했다. 학생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거리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이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겉으로 보기엔 선진국처럼 보이지만 아직 우리 정치의 내실은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다. 독재 정권이 하야한 4·19는 정치인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보지 않고, 개인의 영달이나 당리당략에 움직이는 일부 정치인들은 4·19정신을 깨달아야한다. 4·19 정신은 ‘엄중한 국민의 감시’라는 본보기로 영원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