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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씨름·유도 전문캐스터…가수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아나운서이규항(국문57) 전 KBS 아나운서

등록일 : 2020-05-15 조회 : 185

“다시 태어나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이규항 교우. 아래 사진은 1969년 발매한 ‘이규항 히트앨범’.

 

현직 아나운서가 원로 아나운서를 만났다.

현 교우회보 편집위원이 초창기 ‘고우회보 (교우회보의 옛 제호)’ 편집위원을 만났다.

MBC ‘우리말연구팀’을 꾸렸던 이가 KBS ‘한국어연구회장’을 만났다. 이래저래 엮여 만난 사람은 이규항 교우.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채 마주 앉은 곳은 교우회보 편집실. 대면 인터뷰 90분, 그 앞뒤의 통화를 포함하면 170분 남짓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의 2/3는 방송언어, 특히 발음 관련한 것이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후배이자 후학인 필자는 그의 웅변에 공감하며 주억거렸다. 우국어지언어운사(憂國語之言語運士)를 자처한 이 교우의 음성언어 얘기는 다른 곳에서 전할 수 있을 터, 말머리를 돌렸다.

올해 초 <가요무대>에 출연하신 걸 봤다

“<가요무대>에만 다섯 차례 나갔지. 1968년 <아나운서 온 퍼레이드>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임택근 방송계장이 ‘음반 내 보라’ 권유한 말이 씨가 된 거야. ‘네잎 크로바’로 ‘무궁화대상’에서 신인가수상도 받았는데, 배호가 부른 ‘파도’도 내가 부 뻔 했지….”

첨부이미지 

 이 교우의 노래는 ‘나비바람’, ‘친구여 잘 있거라’, ‘친구’, ‘그리운 사랑’ 등 30여 곡에 이른다. ‘네잎 크로바’는 금영노래방(곡 번호 845), 태진노래방(곡 번호 1364)에서 부를 수 있다. 가수 이름이 ‘이규황’ 으로 나오긴 하지만.

문약(文弱)할 거 같다는 얘기 들으신 적은?

“그래서 유도를 시작한 거야. 문무(文武)-재덕(才德) 겸비! 와일드(wild)와 마일드 (mild)! 균형미를 갖춘 ‘서양인의 체격과 동양인의 정신을 갖춘 신랑’이라 했던 송민호(국문46) 교수의 주례사가 좋았어. 김상협 교수 말씀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지성과 야성’의 조화. 입학 당시 초단이었는데 3 단이었던 지섭(경제57)하고 유단자 댓 명 모아서 6·25 이후 유명무실해진 유도부를 재건했지.

‘유도부원은 B학점 이상’을 규칙으로 정했고…. 고등학교 때 살던 연지동에 깡패들이 활보하고 다닌 게 이유이기도 해. 깡패 이정재가 옆집 살았었다니까. 도복 들고 다니면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 거잖아.

축구 중계할 때 고대 유도부 덕을 본 적도 있는데…”

축구 중계와 유도부?

“임택근 아나운서가 중계할 때 옆에 있었는데, 임 아나운서가 ‘연고전’이라고 하는 거야. 연세대 출신이 편파중계를 한다고 고대 유도부원들이 중심이 되어 항의하러 중계석에 몰려왔다가, 나를 보더니 ‘선배 님’하면서 물러선 적이 있거든…” 순식간에 기술이 들어가고 승패가 갈리는 격투기 중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한 판’을 외치던 이 교우의 유도, 씨름 중계가 돋보인 이유는 ‘공인 6단’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1980년대 인기 있던 ‘천하장사 씨름대회’ 중계를 도맡아 하셨다

“중계만 한 게 아니라, 그 대회를 만든 거지. 제대로 만들면 경쟁력 있는 스포츠가 되겠더라고. 씨름인 김태성씨하고 의기투합해 천하장사 대회를 만들었고, 거기서 이만기 선수가 스타가 되었지.”

1997년 정년 이후에도 일본프로야구 중계를 하셨는데…

“선동열(경영81), 이종범 중계를 3년 동안 300경기 쯤 했지. 1977년에 야구 이론서를 번역해 ‘미국야구’로 펴낸 게 보람으로 남아 있어. 해설자나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가 한 거니까. 이 책은 이광환(경영67) 감독이 세운 ‘제주 야구박물관’에 소장되었으니까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은 거지.”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던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고대 입학한 뒤부터 줄곧 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 그땐 강의 시작할 때 사이렌이 울렸는데, 집에서 그 소리 듣고 강의실에 갈만큼 가까웠지. 요즘 학교 산책하면 옛 생각이 나. 저기서 ‘철학개론’을, 여기서는 ‘교양영어’를 들었지…. 입학 후 첫 강의였던 김진만 선생의 ‘교양영어’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 라디오에서 나오는 장기범(정치49) 아나운서의 뉴스가 얼마나 멋있던지 그걸 꼭 하고 싶었어. 대학 1학년 때 장아나운서의 뉴스가 영화에 나오는 거야.

‘범인 체포는 시간문제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지금도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지. 일류극장에서 보고, 이류 극장인 천일극장에도 가서 보고 또 보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빨리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2학년 때 KBS 시험 쳤는데, ‘필기2등, 실기 1등’이었지만 졸업생이 아니니까 합격 무효. 정한숙(국문46) 교수가 장기범 계장에게 ‘장형, 어떡할 거야’하니 ‘졸업하면 특채한다’ 약속했지만 그 분이 미국 VOA로 파견되는 바람에….”

 이 교우는 ‘어쩔 수 없이’ 1961년 시험을 다시 보고 또 합격했다.

KBS, 학교 후배인 아들 이상협(미교94) 아나운서를 보면 젊을 때 이 교우 생각이 난다

“좋은 아나운서인데, 능력에 비해 덜 알려져 아쉽지. 상협이가 <현대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을 때 내가 갖고 있던 그 잡지 창간호를 선물했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 시낭송도 잘해…” 다재다능, 부전자전이다. 부친은 ‘신인 가수상’(1968)을 받았고 아들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1997)을 받았으니까.

인터뷰 마치고 나서면서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뻔한 질문에 ‘물론, 아나운서’라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위풍당당했다.

강재형(영문82) 편집위원·MBC 아나운서 국장

 

이규항 교우는…

1961년 KBS에 입사해 36년간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KBS 아나운서실장과 제2대 한국 어연구회장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 1973년 까지 본보 편집위원을 지냈다. ‘사람이 만든 말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한국어 표준발음에 대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