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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로 재구성한 기축옥사…16세기 사상사의 지형도를 그리다2019년 동리문학상 수상작가 소설가 최학(국문70) 교우

등록일 : 2020-02-18 조회 : 233

최학 교우가 논산시 연산면 집필실 주변을 거닐고 있다. 이곳은 소설 속 주요인물인 송익필의 제자 김장생의 세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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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 확신도 자신도 잃어가고 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지난 연말 장편소설 《고변(告變)》으로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최학(국문70) 교우의 수상소감이다. 최 교우는 재학시절인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폐광>으로 등단하고, 1979년 원고료 1000만원을 내건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서 《서북풍》 당선으로 주목받는 작가였다. 그런데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에도 이렇다 할 문학상을 받지 못했던 탓에 이번 수상은 그 자신이나 지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고변》은 1589년(선조22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기축옥사)을 동인과 서인 간 붕당 정치의 관점에서 다룬 역사소설이다. 퇴계의 학맥을 이은 동인과 율곡의 학맥을 이은 서인 간 대립을 814쪽의 방대한 책 한 권에 담았다. 최 교우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것은 1980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여립 모반사건 다룬 소설 《고변》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홍경래의 난을 다룬《 서북풍》이 당선돼 1980년 1월 1일부터 작품이 연재됐어요. 연재 당시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김용덕 교수가 연락을 해서 만났더니, 자기가 기축옥사에 관해 수십년 연구를 해왔는데 이건 서인들의 음모로 조작된 사건이다, 그런데 논문으로 써도 읽는 사람이 적으니 소설로 써달라며 자료 몇 개를 주고 가셨습니다.”
최학 교우는 김용덕 교수에게 꼭 소설로 쓰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기축옥사에 얽힌 수많은 인물들의 정파와 가족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81년 대전의 중경공업전문대학(현 우송정보대) 교수로 부임해 강의를 하게 되면서 소설 창작에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작품화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온 건 조선왕조실록 한글번역과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검색어를 넣으면 수많은 자료가 나오는데 내가 이런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던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용덕 교수가 기축옥사에 관해 수십년 연구해도 언급하지 못한 부분을 나는 인터넷 덕분에 볼 수 있었는데, 광해군 10년 허균의 역모죄 관련 자료에서 허균의 첩 이름이 성옥이라고 나오고 그 애비가 송취대라고 한 부분을 읽게 된 게 《고변》을 쓰는 데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송취대는 서인의 중요 인물 송익필의 서자이다. 송익필은 이이, 성혼, 정철과 교류한 학자이자 문인으로 소설《 고변》은 그가 양반 신분에서 노비 신분으로 전락하는 사건을 겪고 이 사건을 유발한 동인에 대한 복수극을 펼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송익필의 서자인 송취대와 동생 취실은 정여립이 조직한 대동계의 일원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정여립의 말과 행동을 보고한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학계에서 의견이 갈리는 정여립의 최후에 대해 이 소설은 송취대가 쏜 화살에 맞아 숨진 것으로 그려진다. 

“조선 선비 인맥도이자 교유록”
“율곡이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584년부터 송익필이 사망한 1599년까지 15년의 시간 속에 전개된다. 그 15년 동안 동인 1000여 명이 축출된 기축옥사에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작품해설을 쓴 이남호(국문75) 모교 교수는 이황과 이이, 조식, 기대승, 성혼, 유성룡, 김장생, 남언경, 허균, 정철, 서산대사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을 “16세기 조선 시대 선비들의 종합 인맥도(人脈圖)이며 교유록(交遊錄)”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내가 써온 역사소설은 주로 민중사관에 근거해 민란을 다룬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쉰 살을 넘기면서 조선 시대 민중은 결국 한계성을 지녔고, 당대 엘리트 계층이 역사의 주동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그동안 퇴계와 율곡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 없었는데, 욕심을 내서 이 두 사람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장편소설 《고변》은 퇴계와 율곡의 문인들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기철학과 양명학, 예학 등 16세기 우리 사상사의 지형도가 그려지는 듯하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인 평론가 김봉군은 “작가 최학은 근래에 보기 드문, 공부하는 인문학자의 면모를 과시한다”라고 말했다.

고 김용덕 중앙대 교수에게 바치다
“우송대에서 정년퇴임 후 논산시 연산면에 농가주택을 개조해 집필실을 마련했어요. 연산면은 송익필의 제자 김장생의 세거지라서, 내가 이 소설을 쓴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3년 간 집필에 몰두한 결과, 1980년 김용덕 교수에게 한 약속을 지키게 됐습니다. 1991년 작고하기 전까지 쪽지를 보내 소설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이제 묘소라도 찾아가고 싶습니다.”
최 교우의 등단작 <폐광>은 정한숙(국문46) 교수의 소설창작 수업시간에 숙제로 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재학시절엔 고대문학회 활동을 했고, 2008년에는 고대문인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중국 남경 효장대학에 한국어교육을 하러 간 인연으로 중국의 백주(白酒)에 관심을 갖게 돼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라는 책을 냈다.《 고변》을 낸 출판사 새로운사람들(대표 이재욱·철학75)에서 올 4월경 ‘배갈’에 대해 집대성한 책을 낼 계획이다. 
논산/전용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