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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술 마시는 것만큼, 술 만드는 것도 좋았습니다”
경기도 광주 무앤베베 양조장에서 자신이 만든 수제맥주를 들고 있는 최도영 교우. 요즘 수입 맥주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는 맥주가 수제맥주이다. 제주위트에일, 강서에일, 강남에일, 만리재페일에일 등 다양한 지명을 딴 수제맥주가 나오면서 수제맥주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나이 쉰을 넘겨 맥주 브루어(양조사)가 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최도영(심리84) 교우가 있다. 현재 최도영 교우는 ‘무앤베베 브루잉’에서 브루어로 일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의 무앤베베 양조장에서 최 교우를 만났다.  50세에 떠난 독일 맥주 유학“우연히 전통주 강의를 듣게 됐죠. 그렇게 몰입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술 마시는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술을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최도영 교우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사찰음식 홍보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통주 강의를 계기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술을 만들었다. 직접 빚은 전통주와 맥주를 가까운 스님들에게 드렸더니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150여 년 전통의 베를린 양조교육연구소(VLB)로 떠난 건 2016년 봄이었다. 나이 50세에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이다.“많이 답답했어요. 진정한 나를 찾는 것도 중요했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죠.”독일에서의 6개월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됐기에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감은 줄었지만, 주입식 영어를 배워 온 입장에서는 어렵긴 매한가지였다.“그래도 읽고 쓰는 건 괜찮았어요. 13과목에 시험이 총 30번쯤 되고 보고서가 6회에요. 시험 전날 밤새도록 공부하는 게 어려웠죠. 나이도 나이였고….”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권 ... [2020-11-17](Hit:18)

꿈이 유예된 청춘들에게 위로와 공감 건네는 영화 감독
오늘도 예술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교우가 있다. 정대건 교우는 동시대의 현상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젊은 감각으로 해석해낸다. 다큐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 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하고, 2020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이자 첫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한 정 교우를 경기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아리 ‘돌빛’에서 영화의 매력에 빠져내향적인 정 교우는 입학 후 영화에 푹 빠졌다. “저는 동기들과 중앙광장에서 맥주를 마시기보단 백주년기념관 2층 시청각 관람실에서 DVD를 빌리며 살았죠.” 영화에 대한 본격적 공부를 시작한 것은 제대 후 ‘돌빛’이라는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동아리 방학 워크숍에서 정 교우의 시나리오는 적극적 지지를 받아 다큐 영화 제작로 제작됐다. 그렇게 2012년도에 ‘투 올드 힙합 키드’가 개봉한다.“10대에는 그냥 음악이 좋았어요. 막연하게 대학가서 진로를 탐색해야지 했는데, 흐지부지 됐죠.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큐 영화로 제작했어요.” 영화는 10년 전 ‘힙합’이라는 꿈 아래 결성된 멤버들의 현재 모습과 그들만의 힙합을 담은 이야기를 다룬다. 꽤 인기 있는 랩퍼인 허클베리 피와 JJK, 바쁜 직장생활 속 앨범을 준비중인 현우, 공무원 준비생인 지훈 등 그들이 직접 출연해 현장감있다. 정 교우 또한 주연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서울독립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6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본교 KU시네마트랩에서도 상영됐다. 이 길로 정 교우는 영화의 매력에 매료되어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 연출 부문에 진학한다.랩으로 부른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2006년 10월 마지막 날, ‘조지훈 시비 건립 기념 제1회 시낭송회’에서 정 교우는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라는 시를... [2020-11-17](Hit:12)

전통 용가마 고집해온 도예가…자연미 가득한 작품 국내외서 높은 평가
지헌(知軒) 김기철 교우는 자연미 가득한 도자기를 빚어온 원로 도예가이다. 모교 졸업 후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40대 중반에 도예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뒤늦게 발견한 예술적 재능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도자기 작업에 들어간 지 1년도 되지 않은 1979년 ‘불수감(佛手柑)’이라는 작품으로 제4회 공간대상을 받았다. 이후 그의 작품은 한미, 한불, 한독 수교 순회전에 한국의 대표 백자로 소개돼, 해외를 순회하게 된다. 김 교우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로마 교황청, 대영박물관, 시카고 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을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흙장난으로 시작한 도예가의 길김기철 교우는 10여 년 교편생활을 하던 시절을 “오직 생존만을 위해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침울했던 것으로만 기억된다”고 말한다. 당시 그에게 유일한 안식은 마당에 심어 둔 꽃과 나무였다. 자연은 그의 벗이었다. 교사 생활을 이어갈 때에도 시골 어딘가에서 농사짓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기와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우연히 일민미술관을 지나다가 나전칠기 장인 김봉용의 고희전을 보게 됐는데, 전시된 문화재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지. ‘내가 인생을 헛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전시관을 나오고 보니 세상은 시꺼먼 어둠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을 때, 아내와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작은 도예품들을 본 지인들이 재능이 있다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40여 일 마음 가는 대로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흙장난’이었다.1978년 김기철 교우는 현재 보원요가 있는 곤지암 한 산기슭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구웠다. 가마를 만든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하숙하고 있던 도예과 학생의 끈질긴 권유로 공간사 작품공모에 작품을 출품하게 된다. 그리고 공간대상을 받았다.“상을 받으... [2020-10-23](Hit:25)

여왕기 무실점 전승 우승 … 실력으로 여자축구부 알리겠다
지난 8월 14일 모교 여자축구부가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서 무실점 전승 우승을 거뒀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여왕기 우승을 차지해 2연패를 달성한 여자축구부의 사령탑 고현호(체교99) 감독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8년 모교 여자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고현호 감독을 세종캠퍼스에서 만났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고재욱·체육70)를 따라다니면서 선수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축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집에 고려대학교 선수 유니폼이 있어서 그걸 입고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첫 고연전의 추억이 궁금하다고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하면서 고연전을 구경했었어요. 그 때 보면서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입학해서 첫 고연전 경기를 치르는데, 선배들이 운동장 들어가면 응원 소리 하나도 안 들릴거라고 하더라구요.그때는 떨려봐야 얼마나 떨리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뛰려고 하니 팔이 떨려서 축구화 끈을 묶을 수가 없더라구요. 후반에 교체로 들어가서 25분 정도를 뛰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뭘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나요 여자축구부 감독이 된 계기는?2010년 U-17 여자축구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을 했잖아요? 경기를 봤는데 선수들이 정말 잘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여자축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교 여자축구부 경기를 봤는데 저 선수들과 축구를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모교 여자축구부에 자리가 생겨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사실 여자축구팀을 맡게 된 건 처음이라 선수들과 소통하는 부분에 ... [2020-10-23](Hit:33)

‘화난 사람들’과 함께라면 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법은 멀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최 교우. 배경은 ‘화난 사람들’이 진행해온 프로젝트. 최초롱 교우는 제55회 사법시험(2013년)에 합격했다. 재판연구원 생활을 마친 후 법원을 나와 창업에 뛰어들었다. 리걸테크를 이용한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을 만들어 사회의 분노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꽃으로 바꿔가고 있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 릴레이 탄원, 와디즈 불공정 약관 심사청구, 라돈 검출 침대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진행했다. ‘화난 사람들’은 어떤 곳인가요?법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IT서비스를 통해서 허물어보자는 미션을 가지고 태어난 ‘일상 밀착 법률 플랫폼’입니다. 문제를 가장 효과적이고 종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법적 절차를 밟는 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대로 뭔가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람들이 법을 가깝고 쉽고 편하게 느끼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제일 처음에 집중한 건 다수의 소액피해자들이 발생하는 분야였어요. 법률 구제에 들어가는 비용이 법적 절차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 보니까 사람들이 포기하거든요. 그런 소비자들이 한 데 모여 법적 대응을 함께 밟을 수 있다면 비용이 줄어들고 증거가 모이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기존에는 변호사 입장에서도 별로 하고 싶은 소송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걸 양쪽이 다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저희 플랫폼은 변호사가 공동소송 프로젝트를 올리면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참여하도록 합니다. 플랫폼을 통하다 보니까 진행상황 공지도 쉽죠. 그동안은 변호사들이 이런 것들을 모두 전산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저희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에는 사무 처리를 단순화해주는 툴을 지원하기 때문에 추가 인... [2020-10-22](Hit:42)

11년째 가르치며 한글 우수성 실감 … 현지인 교사 양성이 꿈
코로나19로 최근 한국에 들어와 지내는 정덕영 교우를 교우회관에서 만났다. 오른쪽 사진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정덕영 교우.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한다. 고유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던 그들은 2009년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2010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그 8만여 명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우가 있다. 정덕영(교석61회) 교우는 현재 찌아찌아족의 유일한 한글 교사이다. 2009년, 그는 찌아찌아족에게 공식 문자로 한글을 제안했던 훈민정음학회에서 찌아찌아 마을의 한글 교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가 직장을 다니면서도 꿈꿨던 ‘가지 않은 길’이었다. 모교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일반 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후 결혼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정 교우는,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초등학교 세 곳, 고등학교 두 곳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친다.공식문자로 한글 채택한 찌아찌아족인도네시아는 약 350개의 민족이 550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여러 민족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만든 만큼, 민족마다 고유한 언어와 문자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찌아찌아족도 그들의 언어인 찌아찌아어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표기하는 문자가 없다.“부톤섬에 50년 전에는 30여개의 민족이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민족들은 소멸됐어요. 자기의 문자와 문화가 없으니까 민족이라고 규정할 만한 것이 없는 거죠. 문자나 언어를 보존하는 것만이 민족이 이 땅에 있게 하는 결정적인 도구입니다. 한글은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좋기 때문에 희망이 있어요.” 정 교우는 찌아찌아어에 대한 문서화 작업을 하고 있다. 언어를 문자로 기록해 보존하는 ... [2020-09-14](Hit:76)

‘청춘 담론’ 펼치며 등장 … 젊은 인문학자이자 저술가로 주목받아
그가 모교에 다닐 시기 사회는 청년 담론으로 들끓었다. 88만 원 세대부터 3포 세대까지, 젊음에 대한 쉬운 정의가 범람했다. 그래서 ‘진짜’ 청춘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출간했다. 2012년 첫 번째 책 《청춘 인문학》을 펴낸 후 밀레니얼 세대 문화평론가이자 작가로 주목받는 정지우(국문06) 교우. 이후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꾸준히 글로 남기고 있다.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 10권의 단독저서와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등 2권의 공저를 펴냈다. KBS1라디오 <생생매거진>에서 고정코너를 진행하는 등 대중과 직접 만나는 활동도 펼쳐 왔다.2010년대 대한민국을 휩쓴 문장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정 교우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이고 내가 청춘인데, 그 책들이 이야기하는 청춘과 내 청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거예요.” 《청춘 인문학》에는 ‘삶의 복권을 위한 청춘 혁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청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하나뿐인 청춘과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했다.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필명을 쓴 정 교우는 자신이 그 책의 저자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20대가 썼다고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너희들이 뭘 알아,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청춘의 시선으로 풀어 읽은 고전들정 교우는 유달리 서양 고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작가를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철학, 심리학, 사회학 공부하는 게 재밌었어요. 자연스럽게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죠.” 가장 애착이 가는 책 역시 《고전에 기대는 시간》. 즐겨 읽은 작품 12편을 발췌해 자전적 기록을 담았다.대표작 《분노사회》에서도 인문학적 ... [2020-09-14](Hit:78)

김우창 사유의 궤적을 따라 17년…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제작
창밖을 바라보는 김우창 교수(영화 스틸컷,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최정단 교우(가운데)와 영화사시월 스태프.재학시절 만난 모교 은사의 삶을 17년째 영상에 담는 교우가 있다. 영화사시월(時 越) 최정단(영문86) 교우는 김우창 모교 영문과 명예교수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제작하고 있다.2004년 김우창 교수가 모교에서 정년퇴임할 때 촬영을 시작했다.사유의 아름다움 일깨워준 스승김우창 교수와 최 교우는 모교 영문과에서 만난 사제지간이다. 최 교우는 학부 졸업 후 모교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의 사유를 접하고 매료된 지 30여 년.“김우창 선생님은 사유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준 분입니다.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글과 말씀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 조건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혼자 듣기 아깝다는 생각에 선생님을 뵐 때마다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인문학자의 삶과 사유의 변천사에 관심을 갖게 돼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을 결심했죠.”최 교우는 김 교수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영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제 의견을 배제하고 싶어서 내레이션을 최소화했어요. 무의식적으로 한 인간을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요” 30년간 김 교수를 옆에서 본 최 교우지만 지금도 김 교수를 말로 표현하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과 일상을 충실히 기록하고 싶어서요”책으론 다룰 수 없는 영화의 매력“영화가 진지하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김우창 선생님과 사모님은 유머감각이 풍부하신 분이에요” 그동안 최 교우는 김우창 교수의 아내, 생물학... [2020-08-13](Hit:251)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교우회보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클라이밍은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스포츠다. 가끔은 버티기 힘든 고난이 찾아오지만, 그걸 이겨내고 나면 짜릿한 완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교우회보 지령 600호 특별인터뷰로,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오늘도 땀 흘리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암벽 여제’ 김자인 교우를 종로의 실내 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났다. 김자인 교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참가한 청소년 클라이밍 캠프를 계기로 클라이밍에 입문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며 1년만에 청소년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2004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김 교우는 코로나19로 연기된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스포츠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대회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김 교우는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올해 12월에 열리는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도전한다. 한창 대회를 준비하던 작년, 손가락 부상이 찾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발목이 골절됐다. 그러나 김 교우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내고 있다. 최근에는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선수 생활을 20년째 해오고 있지만 언제나 입상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클라이밍을 즐기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거였죠.” 클라이밍을 할 때는 잡념이 들지 않는다. 정상을 향해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은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큰 목표를 하나 정해 놓고 그걸 쫓아간다기보다는 앞에 주어진 과정 하나에 초점을 맞추곤 하거든요.” 김 교우의 이런 성격은 모교 재학 시절에도 잘 드러났다. “운동은 물론이고 전공 공부도, 산악부 동아리 활동도, 학교 행사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애썼죠.... [2020-07-14](Hit:216)

“글로벌 고대 위상 맞춰 외국 국적 교우들도 끌어안아야”
중국은행 서울지점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황덕 교우. ‘교육부 2019 고등교육기관 대학별, 국가별 외국인 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모교의 중국인 유학생 수는 2833명이다.모교는 개교 100주년인 2005년을 전후해 영어강의를 대폭 확대하고 외국인 교원을 충원하는 등 모교의 글로벌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6년과 2017년 국내 대학 중 외국인 유학생 유치 순위 1위를 기록했다.외국인 유학생의 출신 국가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현재 중국 국적 교우의 수는 약 1300명이다.지금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되면 이 숫자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교우회는 이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9일 중국 국적 교우인 황덕 중국은행 한국대표를 교우회 부회장으로 위촉했다.황 교우는 중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평양건설건재대학교(현 평양건축종합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중국은행에 입행해 1997년에 한국에 부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모교 법무대학원에서 국제거래법 석사학위를 받은 후,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MBA 코스를 이수했다. 중국은행 안산지점장, 대구지점장을 거쳐 중국은행 본점 운영총감으로 근무한 이후 2010년부터 중국은행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달 9일 장경호 교우회 사무총장(왼쪽)이 황덕 교우에게 부회장 위촉패를 전했다.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저는 현재 중국은행 한국대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행은 1912년에 개행했습니다. 한국에는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와 함께 진출했으며 1994년부터 사무소를 설치하고 은행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수출, 수입, 무역금융,... [2020-07-14](Hit: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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