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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1년째 가르치며 한글 우수성 실감 … 현지인 교사 양성이 꿈
코로나19로 최근 한국에 들어와 지내는 정덕영 교우를 교우회관에서 만났다. 오른쪽 사진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정덕영 교우.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한다. 고유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던 그들은 2009년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2010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그 8만여 명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우가 있다. 정덕영(교석61회) 교우는 현재 찌아찌아족의 유일한 한글 교사이다. 2009년, 그는 찌아찌아족에게 공식 문자로 한글을 제안했던 훈민정음학회에서 찌아찌아 마을의 한글 교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가 직장을 다니면서도 꿈꿨던 ‘가지 않은 길’이었다. 모교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일반 기업을 다니다 퇴직한 후 결혼 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정 교우는,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초등학교 세 곳, 고등학교 두 곳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친다.공식문자로 한글 채택한 찌아찌아족인도네시아는 약 350개의 민족이 550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여러 민족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만든 만큼, 민족마다 고유한 언어와 문자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찌아찌아족도 그들의 언어인 찌아찌아어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표기하는 문자가 없다.“부톤섬에 50년 전에는 30여개의 민족이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민족들은 소멸됐어요. 자기의 문자와 문화가 없으니까 민족이라고 규정할 만한 것이 없는 거죠. 문자나 언어를 보존하는 것만이 민족이 이 땅에 있게 하는 결정적인 도구입니다. 한글은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좋기 때문에 희망이 있어요.” 정 교우는 찌아찌아어에 대한 문서화 작업을 하고 있다. 언어를 문자로 기록해 보존하는 ... [2020-09-14](Hit:5)

‘청춘 담론’ 펼치며 등장 … 젊은 인문학자이자 저술가로 주목받아
그가 모교에 다닐 시기 사회는 청년 담론으로 들끓었다. 88만 원 세대부터 3포 세대까지, 젊음에 대한 쉬운 정의가 범람했다. 그래서 ‘진짜’ 청춘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출간했다. 2012년 첫 번째 책 《청춘 인문학》을 펴낸 후 밀레니얼 세대 문화평론가이자 작가로 주목받는 정지우(국문06) 교우. 이후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꾸준히 글로 남기고 있다.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 10권의 단독저서와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등 2권의 공저를 펴냈다. KBS1라디오 <생생매거진>에서 고정코너를 진행하는 등 대중과 직접 만나는 활동도 펼쳐 왔다.2010년대 대한민국을 휩쓴 문장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정 교우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이고 내가 청춘인데, 그 책들이 이야기하는 청춘과 내 청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거예요.” 《청춘 인문학》에는 ‘삶의 복권을 위한 청춘 혁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청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하나뿐인 청춘과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탐색했다.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필명을 쓴 정 교우는 자신이 그 책의 저자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20대가 썼다고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너희들이 뭘 알아,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청춘의 시선으로 풀어 읽은 고전들정 교우는 유달리 서양 고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작가를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철학, 심리학, 사회학 공부하는 게 재밌었어요. 자연스럽게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죠.” 가장 애착이 가는 책 역시 《고전에 기대는 시간》. 즐겨 읽은 작품 12편을 발췌해 자전적 기록을 담았다.대표작 《분노사회》에서도 인문학적 ... [2020-09-14](Hit:6)

김우창 사유의 궤적을 따라 17년…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제작
창밖을 바라보는 김우창 교수(영화 스틸컷, 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최정단 교우(가운데)와 영화사시월 스태프.재학시절 만난 모교 은사의 삶을 17년째 영상에 담는 교우가 있다. 영화사시월(時 越) 최정단(영문86) 교우는 김우창 모교 영문과 명예교수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제작하고 있다.2004년 김우창 교수가 모교에서 정년퇴임할 때 촬영을 시작했다.사유의 아름다움 일깨워준 스승김우창 교수와 최 교우는 모교 영문과에서 만난 사제지간이다. 최 교우는 학부 졸업 후 모교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의 사유를 접하고 매료된 지 30여 년.“김우창 선생님은 사유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해준 분입니다.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글과 말씀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 조건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혼자 듣기 아깝다는 생각에 선생님을 뵐 때마다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인문학자의 삶과 사유의 변천사에 관심을 갖게 돼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을 결심했죠.”최 교우는 김 교수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영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제 의견을 배제하고 싶어서 내레이션을 최소화했어요. 무의식적으로 한 인간을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요” 30년간 김 교수를 옆에서 본 최 교우지만 지금도 김 교수를 말로 표현하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과 일상을 충실히 기록하고 싶어서요”책으론 다룰 수 없는 영화의 매력“영화가 진지하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김우창 선생님과 사모님은 유머감각이 풍부하신 분이에요” 그동안 최 교우는 김우창 교수의 아내, 생물학... [2020-08-13](Hit:79)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교우회보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클라이밍은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스포츠다. 가끔은 버티기 힘든 고난이 찾아오지만, 그걸 이겨내고 나면 짜릿한 완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교우회보 지령 600호 특별인터뷰로,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오늘도 땀 흘리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암벽 여제’ 김자인 교우를 종로의 실내 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났다. 김자인 교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참가한 청소년 클라이밍 캠프를 계기로 클라이밍에 입문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며 1년만에 청소년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2004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김 교우는 코로나19로 연기된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스포츠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첫 대회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김 교우는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올해 12월에 열리는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도전한다. 한창 대회를 준비하던 작년, 손가락 부상이 찾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발목이 골절됐다. 그러나 김 교우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든 재활과정을 이겨내고 있다. 최근에는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선수 생활을 20년째 해오고 있지만 언제나 입상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클라이밍을 즐기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거였죠.” 클라이밍을 할 때는 잡념이 들지 않는다. 정상을 향해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은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큰 목표를 하나 정해 놓고 그걸 쫓아간다기보다는 앞에 주어진 과정 하나에 초점을 맞추곤 하거든요.” 김 교우의 이런 성격은 모교 재학 시절에도 잘 드러났다. “운동은 물론이고 전공 공부도, 산악부 동아리 활동도, 학교 행사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애썼죠.... [2020-07-14](Hit:109)

“글로벌 고대 위상 맞춰 외국 국적 교우들도 끌어안아야”
중국은행 서울지점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황덕 교우. ‘교육부 2019 고등교육기관 대학별, 국가별 외국인 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모교의 중국인 유학생 수는 2833명이다.모교는 개교 100주년인 2005년을 전후해 영어강의를 대폭 확대하고 외국인 교원을 충원하는 등 모교의 글로벌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6년과 2017년 국내 대학 중 외국인 유학생 유치 순위 1위를 기록했다.외국인 유학생의 출신 국가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현재 중국 국적 교우의 수는 약 1300명이다.지금 재학 중인 중국인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되면 이 숫자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교우회는 이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9일 중국 국적 교우인 황덕 중국은행 한국대표를 교우회 부회장으로 위촉했다.황 교우는 중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평양건설건재대학교(현 평양건축종합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중국은행에 입행해 1997년에 한국에 부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모교 법무대학원에서 국제거래법 석사학위를 받은 후,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MBA 코스를 이수했다. 중국은행 안산지점장, 대구지점장을 거쳐 중국은행 본점 운영총감으로 근무한 이후 2010년부터 중국은행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달 9일 장경호 교우회 사무총장(왼쪽)이 황덕 교우에게 부회장 위촉패를 전했다.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저는 현재 중국은행 한국대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행은 1912년에 개행했습니다. 한국에는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와 함께 진출했으며 1994년부터 사무소를 설치하고 은행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수출, 수입, 무역금융,... [2020-07-14](Hit:123)

미국 투자자 마음을 훔친 월스트리트 고대정신
모건스탠리 입사 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퇴직연금컨설턴트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병선 교우.국제대학원 1기 졸업생들과 함께.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병선 교우, 세 번째가 서진영 당시 국제대학원장.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 월스트리트를 누비는 고대출신이 있다. 중학교 때 알파벳을 처음 알고 대학 입학 전엔 외국 한번 나가보지 않은 토종 한국인이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 선정 ‘은퇴자산관리자 톱 401인’에 선정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이병선(경제90) 교우 이야기다. 봉사활동이 인연이 돼서 메릴린치를 거쳐 현재 모건스탠리 기업 퇴직연금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인으로 월스트리트를 주름잡기까지는 전문성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미국인들의 대화에 빠지지 않는 미식축구와 대학농구, 프로야구와 대중문화까지 두루 익히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아시아 컨설턴트가 낯선 미국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는 “I am not good at making small talks, but I live and breathe retirement plans 24/7(나는 잡담을 잘 하진 못하지만 24시간 내내 은퇴자산관리만 세우고 살아간다)”라고 말하며 신뢰를 쌓았다. 그 힘의 원천은 고대였다. “고대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고대는 문화이며 정신이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모교가 그리워 서울을 찾은 이 교우의 고대사랑은 끝이 없었다.월스트리트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나콜럼비아대 유학 시절 YTN 뉴욕 통신원으로서 미국 증시 소식을 아침 뉴스에 일보로 전하는 일을 한동안 담당했고, 졸업 후에는 뉴욕 라디오 코리아의 저녁 뉴스시간에 교민분들께 미국 증시와 경제 동향을 전하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2020-06-22](Hit:137)

데이터 분석해 비즈니스 모델 만드는 1세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하 교우는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발표의 정석’ 강연.밥 한 끼 사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데이터’가 남는 세상이다. 우리나라 1세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하용호 교우는 데이터가 이제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하용호 XYZ벤처파트너스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멀티전문가빅데이터에서 의미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서 만들어내는 데이터 사이언스에는 프로그래머, 통계학자, 컨설턴트의 세 역량이 합쳐져 있다. 데이터를 잘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통계학자나 머신러닝 분석가, 만들어낸 발견을 비즈니스 모델로 현업에 적용하고 결정권자들을 설득하는 컨설턴트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때는 회의하고 협의하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사람 또는 한 팀 안에서 할 수 있다면 빠른 속도로 가능해지는 거죠. 급변하는 세상에서 데이터 속에 숨겨진 비즈니스 기회를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멀티롤을 맡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이제는 새로운 의미 만들어낼 때하용호 교우는 SK텔레콤이 데이터 사이언스를 처음 도입하던 때 스카웃 돼 경험을 쌓았다. 3년 정도 후 머신러닝, 데이터를 다루는 ‘넘버웍스’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이를 카카오에 매각하면서 카카오에 합류하게 됐다. 카카오에서 다시 3년간의 일을 마친 후 지금의 새 회사를 열었다. 넘버웍스 매각으로 여러 방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면서 앞으로 뭘 해야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하 교우는 ‘계단을 차곡차곡 올라간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 [2020-06-22](Hit:201)

야구·씨름·유도 전문캐스터…가수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아나운서
“다시 태어나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이규항 교우. 아래 사진은 1969년 발매한 ‘이규항 히트앨범’. 현직 아나운서가 원로 아나운서를 만났다.현 교우회보 편집위원이 초창기 ‘고우회보 (교우회보의 옛 제호)’ 편집위원을 만났다.MBC ‘우리말연구팀’을 꾸렸던 이가 KBS ‘한국어연구회장’을 만났다. 이래저래 엮여 만난 사람은 이규항 교우.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채 마주 앉은 곳은 교우회보 편집실. 대면 인터뷰 90분, 그 앞뒤의 통화를 포함하면 170분 남짓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의 2/3는 방송언어, 특히 발음 관련한 것이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후배이자 후학인 필자는 그의 웅변에 공감하며 주억거렸다. 우국어지언어운사(憂國語之言語運士)를 자처한 이 교우의 음성언어 얘기는 다른 곳에서 전할 수 있을 터, 말머리를 돌렸다.올해 초 <가요무대>에 출연하신 걸 봤다“<가요무대>에만 다섯 차례 나갔지. 1968년 <아나운서 온 퍼레이드>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임택근 방송계장이 ‘음반 내 보라’ 권유한 말이 씨가 된 거야. ‘네잎 크로바’로 ‘무궁화대상’에서 신인가수상도 받았는데, 배호가 부른 ‘파도’도 내가 부 뻔 했지….”  이 교우의 노래는 ‘나비바람’, ‘친구여 잘 있거라’, ‘친구’, ‘그리운 사랑’ 등 30여 곡에 이른다. ‘네잎 크로바’는 금영노래방(곡 번호 845), 태진노래방(곡 번호 1364)에서 부를 수 있다. 가수 이름이 ‘이규황’ 으로 나오긴 하지만.문약(文弱)할 거 같다는 얘기 들으신 적은?“그래서 유도를 시작한 거야. 문무(文武)-재덕(才德) 겸비! 와일드(wild)와 마일드 (mild)! 균형미를 갖춘 ‘서양인의 체격과 동양인의 정신을 갖춘 신랑’이라 했던 송민호(국문46) 교수의 주례사가 좋... [2020-05-22](Hit:257)

“바둑은 제 운명인 것 같아요, 그 열정을 모교에서 배웠답니다.”
지난달 10일 제7기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에서 조혜연 교우의 우승 소식이 들려왔다.2전 3기에, 삼세번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동대문구에 위치한 그녀의 바둑 아카데미로 찾아갔다.“안녕하세요, 모교에서 오셨죠? 요즘 선배님들 응원에 늘 감사함을 느껴요”라며 명랑한 목소리로 반기는 조 교우. 그녀에게서 최근 스토킹 사건으로 힘들었음에도 선배들의 응원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밝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바둑에 흥미 가진 7살, 그 매력은?“7살에 온라인으로 바둑강의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 이후 바둑의 매력에 푹 빠졌죠” 어릴 때부터 집중력이 강했다는 조 교우, 부모님의 추천으로 만난 바둑과 함께 한지 어언 30년이다.조 교우에게 바둑의 매력을 묻자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그 작은 바둑 판 속에서 셀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나와요. 이에 대해 주체적으로 제가 수를 두고, 그 결과에 승복하죠. 어쩌면 바둑은 인생과 같아 재미있는 것 같네요.”올4월 대주배 우승에 큰 용기를 얻다“이번 대주배 우승은 30대 중반에 우승한 점에서 저에게 바둑기사로서 롱런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죠.” 11살에 입단한 조 교우는 바둑사회에서 30대란 많이 꺾이는 시기라 표했다. 조 교우는 자신의 세대에서 큰 성적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줬음에 의의를 느낀다고 한다. 2012년 이후 8년만에 첫 우승이니만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지 감히 짐작해본다.재학시절, 총장실에서 바둑 두기도“바둑은 제 운명인 것 같아요. 그 열정을 모교에서 배우지 않았을까요? 하하” 냉정한 성적 지상주의의 바둑 사회는 ‘깡’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 교우.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는 그 힘. 고대가 아니었다면, 의기소침한 저는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있었을까요? 이번 대주배도 276 수만... [2020-05-22](Hit:241)

돌고 돌아 다시 찾은 야구 … 결국 야구는 내 인생
“안녕하세요 선수 여러분. 썩코 치의 야구쑈 썩코치입니다.”스스로를 ‘썩코치’라 칭하고 구독자들을 선수라 부르는 유튜버가 있다. 야구를 좋아하면 누구든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마음껏 야구를 즐기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 13년 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야구 콘텐츠 유튜버로 제2의 야구인생을 사는 윤석 교우를 만났다.야구선수로 활약한 학창시절“여느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 이, 처음에는 재미삼아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4 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고,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게 됐죠.” 윤석 교우는 11살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중고등 리그를 거쳐 모교에서 야구 선수로 뛰었다.중견수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프로 진출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자, 4학년 정기전이 끝나고 선수 생활을 마무 리했다. 윤 교우는 그 후 졸업까지 몇 달간 ‘대학생’다운 시간을 보냈다. “야구 외의 경험을 해본건 사실상 처음이었죠. 공부를 하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모든 게 다 새로웠어요. 제가 언제 사회봉사단에서 벽화 봉사를 해보고 외국인 교환학생들을 만나봤겠어요. 이때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열심히 읽었던 거 같아요.”졸업 후 야구계를 떠나 방황하다졸업 후 윤 교우는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2년간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땄다. 그 뒤엔 한동안 야구계를 떠나 살았다. 소무 역, 해외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윤석 교우는 ‘내가 잘 알고, 잘 하는 일’인 야구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온라인에 야구 코칭을 한다고 올렸어요. 동아리에서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선수 출신한테 저렴하게 레슨을 받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유튜버 썩코치로 돌아오다윤 교우는 레슨 활동을... [2020-04-14](Hit: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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