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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최고 인재를 개방적으로 영입해야”인터뷰 - 이호왕 명예교수

등록일 : 2020-06-18 조회 : 103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최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한탄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결하기도 하덥니다. 물론 한탄 바이러스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모두 호흡기로 감염됩니다. 폐렴도 일으키죠. 그런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도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방송사에서 찾아와 이런 저런 것도 물어보고 하지요.

의학도의 꿈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습니까?
외할아버지께서 한의사를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의학에 관심이 있었죠. 또 그 당시 의사에 대한 처우가 좋아서 어머니께서도 의대에 진학하기를 많이 권했지. 그래서 내과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쟁중에 피난 생활을 하면서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 환자들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그런 전염병의 원인이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미생물 이라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게 됐죠.

1973년에 모교 의과대학에 부임하셨습니다. 모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고려대학교에 온 건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주임교수로 온 거에요. 당시에 그자리가 비어있었거든. 주임교수라는 위치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이 있었고. 또 서울대학에는 동물실험실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 한탄바이러스가 동물에 의해서 전염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실험실을 같이 사용하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고려대 의과대학장이었던 이수종 교수가 따로 독립된 동물실험실을 만들어 준다고 했거든. 그것이 나한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었죠. 물론 고려대학이 최고의 사립 대학이었기 때문에 봉급이 아주 후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죠, 허허.

1976년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셨습니다. 등줄쥐가 매개체란 것은 어떻게 착안하셨나요?
일단 한국형출혈열이라는 병이 6·25전쟁 기간 중에 굉장히 한정된 지역에서 발생했어요. 중부전선의 일정한 지역에 주둔한 UN군 병사들에게서만 병이 돌았거든.
또 환자와 접촉한 의사나 간호사들은 증세가 없었단 말이죠. 그럼 동물에 의한 감염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없었던 병인데 왜 전쟁 중에 이 병이 이 지역에서 퍼지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평소와 달라진 점이 군인들이 모여서 진지를 세우고 오랫동안 숙식을 하게 되는거죠. 거기서 오랜기간 지내면서 식료품을 쌓아두고그 근처에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하면 필연적으로 쥐들이 모여요. 또 방공호를 만들거나 진지공사를 하면서 땅을 파게 되면 그만큼 쥐와 사람이 접촉을 많이 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쥐의 몸에 있는 기생충 이나 쥐의 배설물들을 공기중으로 매일 흡입하게 되니 그것이 원인이 돼서 발병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죠. 쥐중에서 등줄쥐를 생각한 건 우리나라 들쥐의 약 8할 정도가 등줄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추적하시다 한탄강 인근 동두천 송내리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하신 건가요?
나는 송내리를 나한테 하늘이 정해준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군인들이 있는 부대나 주변 야산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어요. 그러다가 송내리에서 10여 명의 환자가 동시에 발생한 겁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환자가 동시에 발병을 했으니 이곳에 서식하는 들쥐 중에는 틀림없이 병원체를 가지고 있는 쥐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했어요. 결국 여기서 잡은 등줄쥐에서 병원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병원체를 찾은 후에 조사를 해 보니 송내리에서 잡은 등줄쥐의 약 10%가 병원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처음 병원체를 발견했을 때 소감이 궁금합니다
정말 해도해도 안 되던 중에 병원체를 발견했어요. 미국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그 기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병원체를 찾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으로 우리가 개발했던 간접면역형광항체법이라는 방법에 기대를 걸고 있었거든 요. 그러다가 어느날 미생물학교실에 있던 연구실에 들어가는데 이평우(생물65) 조교가 “선생님! 찾았습니다!” 하면서 뛰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가서 현미경을 들여다 봤더니 세포 핵 주변에 바이러스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황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더라구요. 연구가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극적인 발견을 한 거라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이 발견을 미국에서 믿지를 않았어요. 6·25 전쟁 때 미국 육군에서도 이 병을 5년이나 연구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발견했다고 해도 믿지 못하고 연구비 지원을 끊겠다는 거야. 결국 미국육군 의학전염병연구소 바이러스연구부 소속 중령이 와서 직접 확인을 하고 나서야 믿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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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박물관 100년사 전시실에 전시돼있는 이호왕 교수의 연구 장비와 한타바이러스 백신.

바이러스의 이름을 교수님의 성함이 아니라 한탄강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때 바이러스 이름을 내 이름으로 하라고 한 사람들이 꽤 있긴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한탄강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유는 당시에 우리나라의 의학이 세계에 많이 안 알려져 있어서에요.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보고 이 바이러스가 뭐냐고 하면 한탄이다, 그럼 한탄이 뭐냐 하면 한국에 있는 강 이름이다, 이렇게 딱 나오잖아요. 이렇게 외국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에서 했다라고 알리기 위해서 개인의 이름보다는 한국의 지명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교수님께서 이런 업적을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집념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었죠. 남들이 하지 않은 방법을 내가 택해서 성공한 거에요. 그리고 송내리를 하늘이 정해준 땅이라고 했는데 그런 하늘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습 니다. 아까 고려대학교에서 동물실험실을 만들어준 이야기도 했지만,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또다시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2, 제3의 이호왕 교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옛날 로마제국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있었던 비결이 뭔지 보면 말이죠, 로마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나면 정복당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도 시민권을 줬어요. 그렇게 시민권을 주고 대우를 해주니까 많은 나라들이 로마를 따랐던거죠. 그래서 강력하게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고요.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우리도 훌륭한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디 출신이다 이런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인재를 영입해서 이 분야는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은 못 한다고 할 정도로 전문적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양성해야 합니다. 지금 바이러스를 보세요. 국경이 없잖아요. 과학에도 국경은 없습니다. 
김선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