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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곰탕 한그릇
“울적하고 힘들던 시절 길모퉁이 식당에 들어가 따끈한 곰탕으로 몸을 녹이면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는 것만 같았다.” ‘도하정’의 이건영(체교99) 대표가 말하는 따뜻한 곰탕 한 그릇의 힘이다. 마포역에서부터 제법 꼬불꼬불한 골목을 걸어 식당에 도착하니 시원한 미소의 잘생긴 젊은 주인이 손님을 반겨준다. 이 집이 카페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벽면의 유리 냉장고에 가지런히 도열된 김치통들이 한식집임을 말해준다.이대표는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육공원을 만드는 게 대학 때부터의 꿈이었단다. 한 번도 바뀌어 본 적이 없는 그 꿈을 위해 전초전으로 시작한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든시절 ‘공부하는 식당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접하게 된다. 인터뷰 내내 그가 고르는 어휘들이 그의 만만치 않은 독서량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음식을 담는 남다르게 예쁜 놋그릇도 특별하지만, 곰탕집이라면 있을 법한 식탁위의 소금이 없다. 테이블에서 손님이 음식을 완성하게 하고 싶지 않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그때 다른 맛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 후, 정해진 황금비율 레시피를 따르는 도하정만의 곰탕제조 비법이 있다. 온도를 정확하게 세팅하고, 고아내는 시간을 조절하려고 가스가 아닌 전기 인덕션만을 사용한다. 주방이 오픈되어 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가스 냄새가 음식과 섞이는 것이 싫단다. 주인의 까다로움에 손님들이 행복해 지는 철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푹 고아낸 양지국물 맛이 너무 깔끔해서 마치 맑은 평양냉면 육수를 먹는 기분이다. 요리 준비 중 수작업으로 기름기를 제거하는 작업이 제일 오래 걸린단다.벽면에 걸린‘우리’라는 액자가 눈에 띈다. 혼밥과 혼술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에게 ‘밥은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철학을 양보하고 싶지 않단다. 우리가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두고 두... [2018-06-12](Hit:729)

포토 뉴스 - 설성반점 문 닫다
“이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30여 년간 고대생과 함께 했던 설성번개반점이 지난 5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설성반점은 빠른 배달과 낮은 가격 그리고 푸짐한 양으로 학생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24시간 동안 열었기에,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술과 해장국을 찾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했다. 사진 이정훈 기자 [2018-06-12](Hit:545)

서울에서 맛보는 정통 쓰촨식 훠궈
신사동 가로수길의 ‘레인보우 테이블(No.1 red)’. 차가운 은빛으로 통일된 감각적인 실내에는 패션 잡지에서 뜯어낸듯 세련된 흑백 모델 사진들이 가득 붙어있다. 이 모든 조합이 범상치 않은 주인의 취향을 짐작케 해준다. 음식맛보다 궁금한 이 집의 셰프는 노문과 87학번 민해연 교우. 깊은 눈동자의 가녀리고 아름다운 외모에 한번 놀라고, 메뉴가 와인과 치즈가 아니라 보글보글 끓여 먹는 핫팟 (hot pot) 요리라는데 한번 더 놀라고, 그녀의 아버지가 중국인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혈육이 반반인 어머니, 그리고 남편이 러시아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하지만 역시 마지막으로 놀라는 건 정말 중국 현지에서 맛보았던 훠궈의 바로 그 신비한 매운 맛이다. 중국 쓰촨 스타일의 마라핫팟 훠궈와 일본식 두유핫팟, 한국식 된장핫팟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마라(麻辣)’ 는 중국어로 맵고 얼얼한 맛을 뜻하며 한약재로도 쓰이는 향신료로 입에서 어느 한순간만 맵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훠궈에 들어가는 12가지 향신료를 모두 쓰촨에서 직접 공수하고, 맛을 내기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대가로 특별히 홍보한것도 아닌데 잡지와 블로그 등에는 그녀의 음식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한국인 계부 덕분에 한국에 오게 된 그녀가 택한 곳은 고려대학교. 한국말을 못했던 탓에 친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며 자신도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제삼자가 보기엔 신선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적응하며 대학생활을 보낸 그녀의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었고 지금도 사진에 대한 정열이 남다르다. 사진작가 헬무트 뉴턴의 사진집과 작품들이 그래서 군데군데 걸려있었나 보다.시원한 칭따오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훠궈의 쌈박한 맛은 겨울이 아니라 오히려 한... [2018-05-16](Hit:561)

건물은 없어져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2공학관은 1964년 건축돼 1990년대 중반까지 이공대 본관으로 사용됐다. 2016년 11월 신공학관이 준공된 직후 이사를 시작해 지난해 10월 건축학과 스튜디오의 이전을 마지막으로 빈 건물로 남았다. 그리고 올해 4월말 완전히 철거됐다. 사진은 철거 전 제공학관.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제는 털어 놓을 수 있는 사건은 제2공학관에서 고사를 지냈던 일이다. 1980년 중반까지 공과대학 재직 교수 몇 분이 몇년 간격으로 타계하신 일이 있었다. 같은 건물을 쓰는 이과대학은 별 탈이 없는데 공과대학에는 몇 년에 한 번씩 불행한 일이 생기니,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홍종휘 학장님과 몇몇이 대책을 강구하던 중공과대학을 위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며칠 후 좋은 날을 잡아 돼지 머리를 제2공학관 중앙 3층에 있던 학장실에 차려놓고 여러 교수들이 모여 공과대학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공과대학에서 미신 같은 고사를 지냈다는 것은 그동안 비밀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30년쯤 훌쩍 지난 일이기에 털어 놓는다. 정성껏 고사를 지낸 후에 공과대학에는 크게 불행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김호영(기계공68) 명예교수대학에 웬 교무실?지난 4월 말 제2공학관이 완전히 철거됐다. 입학식 때 봤던 본관, 구 중앙도서관, 서관과 비교할 때 너무 허름해 당시 이공대 캠퍼스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했던 자연계의 상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강의를 듣고 연구를 했으며 과학입국과 중화학공업을 통한 조국근대화의 큰 꿈을 키워왔었다.1993년 모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 교수실이 마련되지 않아 실험실을 개조해 3명의 교수가 함께 생활했다. 당시 자연계 캠퍼스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도한 고대신문은 교수 3명의 문패가 걸린 교수실 출입문 사진에 ‘대학에 웬 교무실?’이라... [2018-05-16](Hit:815)

<자명고> 아듀, 홍보관!
김우철(사학83) 편집위원 서울역사편찬원 원장80년대 전후에 모교를 다녔던 교우들은 누구나, 높이 솟은 철탑 안테나를 이고 있던 안암캠퍼스 서쪽 구석의 건물을 기억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철골 사이사이에 까치집만 두어 채 한가로이 자리 잡고 있던, 그 안테나 아래의 건물 말이다. 깡통이라 불리던 간이매점 앞에서 사발면을 흡입하며 김밥을 우겨 넣으며, 그 안테나가 실제로 작동을 하느니 마니 하면서 논쟁을 벌였던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나름대로 멋을 부린 좌우 비대칭의 그 건물이 홍보관이다. 1968년 준공된 홍보관이 꼭 50년이 되는 올해 6월에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철거’라는 낱말은 지극히 가치중립적인 말이건 만, 듣고는 왠지 야속했다. 30년만 지나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집합건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을 꼭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경박하고 스피디한 시대에 50년을 버텼으면 충분히 자기 수명을 다했건만, 듣고는 왠지 서운했다. 대학을 다니는 게 아니라 신문사를 다닌다는 주위의 비아냥을 오히려 훈장 처럼 여기던 치기 충만했던 개인사가 오버랩되어, 서둘러 제거해야 할 흉물 취급을 받는 친정의 신세가 안타까웠던 모양이다.홍보관은 명칭에서 보듯이 주요 학내 언론 기관이 모여 있던 고대 언론의 심장부였다. 여기 저기 더부살이하던 고대신문, 고대교육방송국(KUBS), 고대 영자신문사(The Granite Tower) 세 언론사가 홍보관의 준공으로 드디어 한 건물에 모여 살게 되었다. 학교당국에서는 아마도 학교를 ‘널리 알리는’ 홍보 역할 정도나 기대하고 언론 3사를 모아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주인공들의 기개는 단순한 홍보에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홍보관은 위치 또한 절묘했다. 학생운동의 전성기, 최루탄 내음이 가시지 않던 민주광장을 사이에 두고 학생 회관을 가장 가까이... [2018-05-16](Hit:463)

생선회는 일식이 아니라 한식입니다
미식가들이 맛집으로 꼽는 해초록. 서울 대치,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작 본점이 부산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회집은 바닷가에 있어야 제맛인 듯 해초록의 자연산 회는 마치 포말처럼 싱싱하다.임갑희(원예73) 교우는 기우는 가계를 꾸리기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1982년 부산에 삼오정이라는 한식당을 열었다. 대충 하는 게 싫어서 요리 연구가 황혜성 선생에게 궁중요리를 배우고, 부경대 생선회 전문가 과정도 이수했다. 이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어설픈 일본 흉내를 내지 않는 진짜 한식으로서의 회를 내놓을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지은이름도 초록빛 바다 ‘해초록’이다. 살아있는 자연산 재료만을 쓰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는 평도 듣긴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단골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접시 바닥이 비칠 듯 맑고 투명한 생선회로 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아이디어도 독특하다. 상으로 솥째 들고 와 퍼주는 고슬고슬 뜨거운 밥에 막 김장독에서 꺼낸 듯한 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서 얹어먹으니 결코 화려하거나 젠체하는 격식뿐인 밥상이 아니라 진정한 한국인의 밥상이란 생각이 든다. 김치가 하도 맛있어 여쭤 보니 ‘해파란’이라는 브랜드로 김치 사업도 시작하셨단다. 김치가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 진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직접 만들기로 한 것. 김치는 너무 싱겁지 않게 적절한 염도가 있어야 톡 쏘는 탄산 맛이 난다고 한다. 정말 옛날에 먹던 톡 쏘는 그 김치 맛이다. 부군(정외과67)과 아드님(통계97)도 교우이며, 고대 외식교우회 회장도 맡고 계시니 어디서나 늘 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임 교우. 직원들에게 슬쩍 대표님의 장점을 물으니 ‘흉내 낼 수 없는 넘치는 열정’ 이라는 답이 돌아온다.이미 인터뷰 내내 간파하고 감탄한 바라 놀랄 것도 없... [2018-04-16](Hit:937)

<자명고>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김경훈 (농학81) 편집위원민주신문 편집국장 얼마 전 짤막한 뉴스에 시선이 멈췄다. 68년만에 국방부가 위수령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치안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하는 위수령은 계엄령과 다르다. 위수령은 자치단체장 요청으로 발령되지만, 계엄령은 국회 동의를 얻어야 선포된다. 1970~80년대 몇 차례 위수령으로 바리케이드가 처졌던 고대 교문은 독재타도와 민주쟁취의 이정표였다. 열린 교문은 자유의 활화산, 닫힌 교문은 억압의 표상이었다.위수령 폐지 뉴스에 눈길이 간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위수령으로 교문이 굳게 닫혔던 시대상황이 다시금 떠올랐다. 다음은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고대 교문(정문)은 1971년 12월 준공됐다. 개교 60주년 다음 해인 1966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학생회관 뒤에 제대로 된 교문을 세웠다. 당시 300만원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5년 후 대운동장이 들어서자 기존 모양에 크기를 확대해 지금의 자리에 새로 세웠다. 교문에서 보면 본관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설계했다. 세종캠퍼스 교문도 서울캠퍼스와 같은 모양이다.대문은 입구이자 출구다. 새끼 호랑이들이 입학해 어엿한 호랑이로 성장해 사회로 나가는 통로다. 동양문화에서 대문은 안과 밖, 음과 양, 성(聖)과 속(俗)을 모두 포함하고 구분해준다. 고대 교문 앞 대로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은 성북구 안암동과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나뉜다. 교문 맞은편 제기5구역은 지금 재개발이 한창이다. 지역민과 상생하고 캠퍼스 위상과 조화를 이루기를 고대한다.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오탁번 교우(영문64)도 1994년 펴낸 시집 ‘겨울강’에서 서울대나 연세대 교문엔 동판 문패가 있지만 고대는 없다고 읊었다. 그러나 문패는 없지만 영혼은 있다고 했... [2018-04-16](Hit: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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