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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 현승종 은사님의 발자취를 따라 …현승종 전 이사장을 추모하며

등록일 : 2020-06-18 조회 : 92

현승종 전 이사장은 모교 법대 교수로 28년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현승종 전 이사장의 학문을 계승해 로마법과 민법을 전공한 조규창 전 모교 교수의 추모사를 게재한다.

 

고도산업사회에 대비할 목적으로 학교당국은 1964년에 신입생 인문교육 강화를 위해 교양학부를 창설했는데, 선생님이 학부장에 임명되셨다. 어느 학생이 학부장실에 불쑥 들어와 “선생님 저는 법과대학 신입생입니다. 법률을 공부하자면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 어느 것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학생을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면서 “우리나라 법제도가 주로 독일법제를 참고하고 있으므로 독일어 공부가 우선 요구되나 현행법에 대한 프랑스법의 보충적 기능을 간과할 수 없으므로 프랑스어 공부도 필요하겠지. 그러나 우선 법학도로서 현행법을 열심히 공부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독재정권에 항거한 4·18의거 시에 경찰집단의 무력행사에서 학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교문에서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하신 선생님의 학생을 사랑하는 모습은 언제 어디에서나 발견하기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은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이들의 인격형성과 교육에 전념하신 진정한 스승이셨다.

 

법사학·법사상사 분야 독보적 업적 

교육자이신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은 법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루셨다. 현행법제도는 우리의 역사생활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발달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서구법문화의 소산이므로, 현행법제도의 정확한 이론인식과 이념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한 학문적 과제로서, 서구법의 생성, 변천, 발달과정에 관한 역사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현행법의 기초가 되는 로마법과 게르만법연구에 전념하시어 이에 관한 저서와 많은 논문을 발표하셨다. 선생님은 법사학자로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법은 또한 역사적 현상이다”라는 기본명제에서 출발하여 서구 대륙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로마법과 현행법제도에 압도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르만법 연구에 전념하셨다.

 선생님은 개인의 인격적 독자성과 윤리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로마법의 자유주의원리와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생존을 지향하는 게르만법의 사회공동체사상을 대비하고 상호 배치되는 두 개의 법 가치를 실정법해석론과 입법론의 지표로 설정하셨다.

 

비교법 연구로 법학도의 시야 넓혀

선생님의 연구는 단순히 외국법 제도의 발달사나 법사상의 고립적 조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자기인식과 자기성찰의 대상으로 제시하려는 학문적 의도가 잠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오늘날 한국의 법문화상태를 “계수한 서구법제도와 전통적인 법의식의 충돌”로 파악하시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구법제도에 맞추어 우리의 의식세계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서구법제도를 우리의 국민정서인 법감정, 법의식과 특히 “유용한 전통적 가치관”에 적합하도록 변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저서와 논문에서 끊임없이 강조하셨다.

 선생님의 연구 활동은 계속되었고 비교법연구에 착수하시어 입문서를 저술하셨다. 비교법 연구는 법규범의 세계에서 법학도의 시계(視界) 확장과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의 제시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오늘날 시공개념을 초월한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사회가 당면한 경제, 사회 및 환경문제는 거의가 유사하며 이는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접국이 함께 해결하여야 할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교법적 방법이 요구되며 이 점에서 선생님은 현실문제해결을 위한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셨다.


언제나 중용 지킨 교육자이자 행정가

끝으로 선생님은 현행민법제정에 참여하신 데 이어 민법해석학에 착수하시어 민법개설서의 저술과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셨는데, 선생님의 최후의 역작으로 채권총론을 들 수 있겠다. 선생님의 문체는 평이하고, 법이론은 실제생활사실에 밀착되어 난삽한 논리적 조작이나 추상적 사변적 공허함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교조적 극단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중용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논리는 상실해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셨음이 틀림없다. 선생님의 논문저서가 많은 후학들에게 끊임없이 참조 인용되고 있음은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과 권위를 말해준다. 이외에도 선생님은 교육자, 교육행정가로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다.

 고려대학교에서 선생님의 문하생이 된 것은 졸자의 다시없는 긍지이며 자랑이었다. 선생님께 인사드린 수년이 지났다. 청와대 뒷산이 보이는 동아일보 사옥의 인촌기념회 이사장실 문 앞에서 “선생님 저입니다. 오늘은 이진기 교수와 백경일 교수와 함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라고 했을때, “어! 조 군인가, 어서들 들어오게” 하시며 반겨주신 은사님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조규창(법학·석69졸) 전 법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