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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과학도서관에서 발견한 대출카드의 추억

등록일 : 2020-06-18 조회 : 90

서금영(산림자원97) 편집위원
케이웨더 차장·과학칼럼니스트

1983년 9월 16일 자연계캠퍼스에 과학도서관이 개관했다. 연면적 2만256㎡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철근콘크리트 철골구조로 지어졌다. 중앙도서관에서 7만8842권의 도서가 이관됐고, 새로 구입한 1만 여권의 책이 채워졌다. 모교에서는 처음으로 중앙집중식 에어컨 냉방시설을 갖춘 건물이었다.
인문계 학과 중심으로 출발한 모교에서 과학도서관의 등장은 ‘과학고대’의 상징이었다. 2003년 생명과학대학 동관이 건립되면서 안암병원쪽으로 북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학생들은 노벨광장(옛 장승)이 있는 동문에서 애기능 동산을 지나 과학도서관을 들어간 뒤 이과대와 공과대, 생명과학대로 분산되는 동선이었다.
그만큼 과학도서관 로비는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알리는 주요 거점이자 학생들의 약속장소로 낙점되곤 했다. 또 과학도서관에서 이과대와 생명과학대로 가는 사잇길에는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주장을 알리는 대자보가 붙거나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서른 즈음 나는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2년간 행정고시 기술직에 도전했다. 그 기간에 과학도서관에 비치된 전공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느 날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모교에선 책을 빌리려면 책의 뒷장에 붙은 대출카드에 자신의 이름과 대출일을 적어야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전공책에서 생명공학부 김진수 교수님의 서명을 찾았다.
순간 영화《러브 레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는 중학생 시절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남학생과 활동했던 도서부 학생들을 만난다. 이때 학생들이 건낸《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대출카드에서 그 남학생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대출카드를 보면서 교수님이 내게 보낸 ‘러브 레터’처럼 느껴졌다. 학창시절 교수님은 학생들 가운데 나를 꼭 집어 질문을 건내곤 하셨다. 학생들이 쉽게 헷갈리는 내용을 물어보시고, 과제물을 걷는 일 등을 부탁하셨다. 그래서 교수님께 물어보았다. “왜 저에게만 질문을 하시나요?”
한때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할 꿈을 꾸었다는 교수님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이름을 아는 학생이 너뿐이야”라고 했다. 학기가 바뀌어도 교수님은 다른 학생의 이름을 외우실 생각은 안 하셨다. 덕분에 교수님과는 여러 추억이 생겼다. 교수님과 노래방에 가면 언제나 그렇듯 “금영아, 송창식의 ‘우리는’ G#”이라고 예약을 부탁했다.
지난달 29일 과학도서관이 리모델링을 마쳤다. 1층에 새로 마련된 전시공간 테크네에선 ‘조선의 과학’을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보았던 과학도서관의 전공 서적들이 고서(古書)가 되어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추억의 대출카드가 전시되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