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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명고> 혁신은 다시 혁신돼야 마땅하다

등록일 : 2019-12-17 조회 : 59

김현섭(건축공92) 편집위원
모교 건축학과 교수

직업병일 것이다. 내가 어딘가 여행을 가게 되면 늘 카메라를 챙기고 셔터를 눌러대는 것은…. 그래도 건축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게 업이니 당연하지 않나. 새로운 도시에 가면 먼저 철도역과 시청의 위치 관계를 파악하고 번화가를 확인하라. 물론 강이든 산이든 자연 형세도 중요하다.
이정도의 굵직한 콘텍스트를 염두에 둔다면, 그곳 도시와 건축의 감상은 일단 준비된 셈이다. 좀 더 욕심을 내고픈가. 그렇다면 구도심과 신도심의 변천을 개략적으로 살피고, 대표적인 랜드마크 건축물을 기준점에 넣으며, 공원이나 광장 같은 시민들의 공간도 주목해보라. 아 유 레디? 그럼 이제 자유다. 마음껏 도시와 건축을 거닐자.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로운 도시를 갈 때면 꼭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대학이다. 내 여행의 대개가 연구를 위한 것이기에 대학이 목적지인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로서 방문지역 ‘지성의 산실’을 가봐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감도 느끼는 까닭이다. 허나 이런 이유 못지않게 내 전공이 건축역사인 게 역시나 중요하다.
대학도 도시구조의 주요 요소에 포함될 수 있다. 서구의 경우 도시 자체가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 많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젊은 도시들도 대학이 도시조직과 깊이 결부된 경우가 빈번하다.
얼마 전 미국 위스콘신의 매디슨에 갔다가 굳이 힘들여 그곳 주립대 캠퍼스를 들렀는데, 대학 본관이 멀찌감치 주의사당을 마주하면서도 축을 살짝 틀고 있어 흥미로웠다.
한편, 대학은 자체의 캠퍼스 계획이나 개별 건축물로도 중요하다. 건축 교과서에 거론되는 건축물 중 다수가 대학 내에 있는데, 실제로 대학은 건축실험의 장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하버드대학교 카펜터센터(Carpenter Center, 1963)든, 현재 활동하는 대표적 ‘스타키텍트’인 프랭크 게리의 MIT 스타타센터(Stata Center, 2004)든 사례는 무수하다.
그래, 직업병이다. 가족 휴가에도 내가 굳이 주변 대학을 들르는 것은…. 우리 모교 고려대학교가 많은 이들에게 그런 방문지가 되면 좋겠다. 선도적 연구가 활발해 세계적 연구자들이 줄곧 방문하고, 대한민국 ‘지성의 산실’로 도처의 학생들이 견학하는 곳, 그리고 도시적 맥락 속에 공공성의 표상으로 지역 주민이든 관광객이든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
모교의 캠퍼스와 건축물은 그런 창의성과 다양성의 활동을 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왕이면, 현실적 제약이 이래저래 크겠지만, 시대에 목소리를 낼만한 혁신적 건축물도 가끔은 한 번씩 지어지면 좋겠다. 고풍스런 캠퍼스에 녹아들면서도 새 시대를 이끌어갈 건축물 말이다. 혁신은 다시 혁신돼야 마땅하다. 우리는 많이 왔지만 아직 가야할 길도 많이 남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