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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민족의 운명을 밝혀온 정의의 성화, 이젠 법전원으로
법과대학 명칭은 사라져도 ‘고대 법학’의 위대한 역사는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된다. 사진 오른쪽 건물은 법전원학생들이 공부하는 신법관, 왼쪽 건물은 해송법학도서관.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은 1905년 모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개교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충숙공 이용익 선생이 교육구국의 신념으로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는 법률전문과(현재의 법학과)와 이재학전문과(현재의 경영학 및 경제학)의 두 학과로 출발했다. 두 학과 모두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보성전문학교 졸업생들은 민족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민족사의 위기에서 근대 법학을 꽃피우다보성전문학교 법률과는 민족 최초의 법학 고등교육기관이었고, ‘고대 법학’의 역사는 곧 한국 근대 법학의 역사이다. 보전 이전에 있었던 법관양성소는 3개월 내지 6개월의 단기 속성과정으로 기술자 양성기관의 성격을 지녔다. 보성전문은 처음에는 2년제인 법률전문과로 출범했으나 1907년 1월 3년제인 법학과로 개칭됐다.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44년 3월에는 학교가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강제 개명당하고 법률과도 척식과(농학계)로 전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보전 복원 작업이 즉각 시행돼 1945년 9월 25일 재단이사회 결의로 교명이 다시 보성전문학교로 환원됐다. 이어서 1945년 10월 5일부터 보성전문학교의 종합대학 승격 준비 작업이 진행돼 1946년 8월 15일부터 각각 60명 정원의 법률학과와 정치학과를 포괄하는 정법대학이 설립됐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성전문은 1946년 9월 12일 종합대학교 고려대학교로 승격됐다.1955년부터 법과대학 명칭으로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서울이 함락되자 모교는 초대 총장 현상윤 선생이 납북... [2018-02-14](Hit:17)
‘법과대학’과 작별하며
"변화의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전병현(법학71) 법대교우회장. 모교 대학원과 하버드 로스쿨 졸업 후 M&A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기업경영에 뛰어들어 현재 ㈜윌비스 회장을 맡고 있다.자타가 공인하는 고려대학교의 아이콘 법과대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 대한 우리 법대 교우들의 아쉬움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러나 법대교우회는 ‘고대 법학’의 전통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에, 법대교우회의 진정한 핵심역량은, 우리 법대시절 교우는 물론 법전원 졸업교우, 나아가 고대 전체 교우들의 역량을 잘 엮고 섞는 역할을 해내는 능력이라고 믿는다."고대 법학’의 역사와 전통 법전원이 자랑스럽게 승계할 것"명순구(법학81) 모교 법과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장.1995년 모교 교수로 임용돼 교무처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7월 법전원장이자 모교의 마지막 법대학장에 임명됐다.사람이 죽으면 상속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이 폐지되면 그 모든 역사와 전통은 누가, 어떤 수준으로 승계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 법과대학을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법과대학을 포괄승계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의 가장 큰 과제는 법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연구하고 교육할 학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로스쿨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직업인으로서의 법률가뿐만 아니라 후속 학문 세대로서의 법학인도 양성해야 한다."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다"Dr. Seuss - 미국 소설가손수호(법학97·법전원1기) 교우. 모교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을 모두 졸업하고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며, CBS 김현정의 뉴스쇼 ‘탐정 손수호’ 코너에... [2018-02-14] (Hit:23)

미 중심부에 남긴 고대인들의 발자취
워싱턴 교우들의 얼굴과 호랑이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50년사’ 표지 디자인 시안.워싱턴 최초의 한국 대학동창회워싱턴교우회는 1967년 장용국(경제48, 당시 주미대사관 참사관) 교우의 자택에서 20여 명의 창립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종우 당시 모교 총장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이철승(정치38), 노진환(정치47) 교우가 제의해 창립하게 되었다. 초대회장에는 노진환 교우가 추대됐다. 당시 워싱턴에는 고교 동창회 등은 있었지만, 대학 동창회로는 최초였다.위 사진은 1967년 장용국 교우 자택에서 열린 창립모임.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우 당시 모교총장(오른쪽)과 정세영(정치49)당시 현대자동차 사장(가운데). 아래 사진은 2007년 버지니아 한인식당에서 열린 연말파티.현재 400여 명의 교우들이 활동해현재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일원에 거주 중인 교우들은 400여 명에 이를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 작성된 워싱턴 교우명부에는 388명이 등재됐다. 최고 학번 민화식(의학45) 교우부터 2010년대 학번까지 참여해 세대를 뛰어넘어 어우러지고 있다. 골프모임인 호골회부터 장학회, 금란회, 산우회, 8090모임, 불자회 등 다양한 소모임이 활발하다.워싱턴에는 젊은 교우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지난해 자랑스러운 고대인 수상자 이수동 교우(가운데)와 교환학생들.워싱턴교우회를 빛낸 교우들50년사 편집진은 ‘워싱턴교우회를 빛낸 교우’ 섹션에서 후배가 선배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교우들의 삶을 조명한다. 워싱턴교우회 창립모임 장소를 제공한 장용국 교우, 고령에도 모교에서 손님이 오면 직접 마중을 나가는 영원한 현역 권동환(정치49) 교우를 비롯해 세계 정치 1번지 워싱턴에서 활약하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구두 깁는 철학교수’로 소개되는 이근택(철학56) 교우는 모교 철학... [2018-02-14](Hit:12)

격동의 근대사, 그 속에 피어난 자유·정의·진리의 불꽃을 담다
보성전문학교 설립자 이용익 선생의 흉상. 교우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세워진 이 흉상은 현재 대학원건물(구 도서관) 앞에 놓여있다.3·3동지회가 엮은 《안암골 호랑이》(가운데)는 모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인물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손병희 선생, 김성수 선생, 안호상 박사, 3·1운동 당시 보전학생대표 강기덕 교우.《안암골 호랑이》 출판기념회 축하떡 커팅. 오른쪽 두 번째가 3·3 동지회장 김현석 교우.3·3 동지회(회장=김현석·경제55)는 지난달 18일《 안암골 호랑이》(동서문화사)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안암골 호랑이》는 2016년 광복절에 진행된 “대한민국과 고려대 학교” 강연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자료 수집을 거쳐 발간 됐다. 역대 모교 경영자, 총장, 교수, 교우들의 발자취를 정리함으로써 기억 너머로 잊혀져가고, 주목받지 못했던 학교의 역사를 교우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재조명했다는 의의가 있다. 3·3 동지회는 모교 졸업생 중 국가·민족· 민주 지상주의 이념과 자유·정유·진리의 고대 정신을 추구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교우들의 모임이다.113년 역사의 초석을 닦은 세 경영자 이야기이 책은 먼저 모교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의 삶을 조명한다. 그의 삶과 보성전문학교 설립,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순사하기까지 이야기. 이어 손병희, 김성수 선생으로 이어지는 모교 초창기 학교 경영자들을 다룬다.1905년 이용익은 ‘교육구국’의 사명 아래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세웠다.이에 고종은 기뻐하며 보성(普成)이라는 교명을 지어줬다. 을사늑약에 반대했던 이용 익은 일제 압력으로 군부대신에서 사퇴, 고종의 밀명을 받아 러시아로 향했지만 자객에 의해 중상을 입고 끝내 숨을 거뒀다. 이용익은 ‘내가 죽은 후에라도 조선이 독립권을 회복하기 전에는 관을 옮겨 귀국하지 말라’... [2018-01-12](Hit:30)

보성전문과 고려대 이어주는 연결고리, 회화나무
법대, 경영대, 정경대, 생과대 등 4개 단과대학장이 지난달 21일 종로 조계사를 방문해 회화나무 종자를 분양 받는 ‘역사 보듬기’ 행사를 진행했다. 종로는 보성전문학교가 처음 문을 연 곳이다.  명순구 법대학장(왼쪽)이 조계사 지현 주지스님으로부터 회화나무 종자 주머니를 건네 받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채취한 회화나무 종자(오른쪽 사진)가 싹을 틔우면 안암동 캠퍼스에 심겨질 예정이다. 모교 법과대학(학장=명순구·법학81), 경영대학(학장=권수영·경영학과 교수), 정경대학(학장=이재원·통계학과 교수), 생명과학대학(학장=김규혁·임학78, 환경 생태공학부 교수)이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고려대학교 발원지에서 역사 보듬기’ 행사를 개최했다.이 행사에서 모교 참석자들은 조계사 경내 회화나무 종자를 분양 받고, 조계사 터가 고려대학교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 설치에 대해 협의했다. 이 행사는 종로 조계사가 보성전문학교의 첫 출발점이라는 것에 기인한다. 보전, 조계사 그리고 회화나무고려대학교는 1905년 보성전문학교의 이름으로 설립됐다. 보성전문학교의 최초 위치는 종로구 박동(수송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성전문학교 설립자 이용익 선생은 관립한성아어학교(러시아어 학교) 건물을 빌려 개교했는데, 곧 아어학교에 이웃한 김교헌(대종교 제2대 교주)의 가택을 매입해 학교의 면모를 갖추었다. 김교헌 가택의 위치가 현재 종로 조계사다.이후 보성전문은 조계사 인근에서 두차례에 걸쳐 이사를 했고, 1932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인수한 이후 1934년 현재의 안암동에 새로운 터를 잡아 오늘의 고려 대에 이르렀다. 결국, 고려대의 발원지는 종로 조계사 터인 셈이다.조계사 터에는 여전히 수려한 회화나무한 그루가 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학자나무라 하여 궁궐... [2018-01-12](Hit:35)

신경 발생 연구로 뇌발달 장애 치료법 찾는다
소감 부탁드린다고려대학교는 부임하면서 처음 와봤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우리학교’라고 하면 고려대가 떠오르게 되네요. 제가 15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열심히 연구해왔던 성과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교수로서 고려대라고 하면 꿈의 직장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기회가 있다면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곳이죠. 그런 곳에서 10 년 이상 꾸준히 연구도 하고 좋은 성과들로 상까지 받을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중점 연구 분야에 대해 소개해달라우선 저는 분자생물학 등의 분야를 바탕으로 신경 발생에 관해 연구하고 있어요. 분자생물학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신경 발생을 연구하면서 뇌발달 문제의 치료법에도 접근하고 있어요.전공 분야인 분자생물학과를 선택한 계기는?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특히 생물학을 좋아하 기도 했고요. 또 생물학을 비롯한 학문이 원하는 바는 미시적인 것으로 거시적인 것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시적인 수준을 강조하는 분자 생물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되었죠.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분자 양상이 큰 틀에서 어떻게 개체가 만들어지고 모양이 변화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었죠.연구를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사실 연구라는 게 장거리 달리기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적절한 호흡으로 최종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과정 전체에 대한 호기심, 성취를 느끼는 것이 보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현상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일종의 보람으로 느끼기도 하고요. 물론 연구를 하면서 순간적인 기쁨도 있지만 그게 앞에서 말했던 보람보다는 ... [2017-12-15](Hit:61)

유전자 품질 검증 기전 널리 알리고 싶어
소감 부탁드린다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상을 받는다는 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미라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교우회에서 주시는 상이다보니, 앞으로도 고려대학교의 이름을 빛낼 수 있도록 연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주요 연구 분야는?모든 세포는 필요한 유전정보를 적당한 시기와 장소에 적절한 양만을 발현하기 위한 유전자 발현조절 기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많은 유전자 발현조절 기전 중 mRNA의 질적인 조절입니다. 만들어진 mRNA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구분하고, 그 구분과정의 매커니 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이 분야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박사 과정을 밟을 때 세미나를 들었는데, 유전자 품질 검증에 대한 세미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다수가 품질 검증 중에서도 양적인 조절 연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단백질을 적게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이 부족한 시절이다 보니, 질적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저를 포함하여 딱두 명뿐입니다.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연구를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관련 연구가 2000년대에 처음 알려졌습니다.늦게 시작된 탓에, 비교적 부족한 점이 많은 편이지요. 게다가 기초 순수과학 분야다보니, 타 응용 가능성이 있는 학문들에 비해 투자가 부족합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정부에서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근시안적 투자에 그치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로 이어 져, 기초 과학 분야가 살아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다면?제일 첫 논문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2009년에 ‘Molecular Cell’이라는 학술지에 게재되었던 논문인데, mRNA의 품질검증기전에 대해 연구했었습니... [2017-12-15](Hit:63)

고전 속 다양한 목소리 연구해 나갈 것
소감 부탁드린다모교를 졸업하신 선배님들,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이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고 특별합니다. 저 자신이 교우 로서 이 상을 받게 되어 더 큰 영광입니다. 이 상을 계기로 연구에 좀 더 매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중점 연구 분야에 대해 소개해달라한국고전문학과 동아시아 문화교류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전문학연구가 한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연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한국 고전문학의 위상과 성격을 연구하는 것 역시 필요 합니다. 좀 더 넓은 시선에서 문학의 비교나 문화 교류에 대해, 예를 들어 연행사와 관련된 문헌자료를 연구함으로써 과거에는 지적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서 한자 표준화 사업이나 해외에 있는 한국 고서를 조사하여 인터넷 데이터베이 스화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영문학에서 국문학으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학부생 때 복수전공으로 한국문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제적성에 좀 더 맞았습니다.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에는 지금은 정년퇴임하신 김흥규(국문67) 국문과 명예교수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학부생 시절 김흥규 교수님의 수업 중 “고전시가론”을 들으며 한국의 고전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방법이나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에 대해 좀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고, 재미있어 평생을 하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습니다.해외소장 자료를 연구하다보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일본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이 없는 것은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공개해야 한다는 세계적인 추세가 강했고 이는 과거의 유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입장을 잘 이해하는 일본 ... [2017-12-15](Hit:59)

“늘 고대생들 잘되길 빌고 있어요”
“고대의 어머니, 고모!” 한은예 여사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뒤쪽에는 고모가 학교앞을 떠나기 직전 고모집에서 피로연을 했던 권의철 교우.24년 전 학교앞 떠난 ‘고모’ 등장에 저마다 추억의 갈피 꺼낸 교우들 우리들의 ‘고모’ 한은예 여사는 24년 전 고려대 앞을 떠나셨지만 교우들은 고대 앞을 23년간 지키셨던 고모를 잊지 않았다. 87학번 교우들이 재학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고모집의 고모 한 여사를 모신 것이다. 이날 한 여사는 권의철(불문) 교우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했다. 권 교우는 고모집이 문을 닫기전 마지막날 고모집에서 피로연을 가졌던, 고모와 인연이 깊은 교우다.  교우들은 재학 시절 늘 학생운동을 마치고 고모집 에서 ‘고모’를 부르며 술 한 잔을 걸치곤 했다. 고모는 항상 그런 고대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살뜰히 챙겼다. 그랬던 고모의 등장에 교우들은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몇몇 교우들은 고모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뭉클한 표정을 지었다. 한은예 여사는 편치 않은 몸에도 오늘을 위해 꼭 왔으면 했다며 고대 앞을 떠난 후에도 늘 고대생 잘되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고 전했다. 교우들은 이에 30년 전의 그날처럼 “고 모!”를 크게 외치며 고모의 고대 사랑에 화답했다. [2017-11-15](Hit:75)

동기가 동기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다
자랑스런 친구상을 수상한 교우들. 왼쪽부터 이지문, 김진용, 노종면, 조승호, 구자덕, 권두섭, 이종섭 교우.정의로운 삶 살아가는 동기들에게 ‘자랑스러운 친구상’ 수여해이날 행사에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한 교우 들에게 자랑스런 친구상을 시상했다. 이지문(정외), 김진용(의학), 노종면(법학), 조승호 (신방), 구자덕(철학), 권두섭(법학), 이종섭(토목) 교우가 수상의 주인공이었다. 이지문 교우는 1992년 군부재자 부정선거 양심선언으로 군 부대내의 투표제 도를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 교우는 현재까 지도 공정한 사회를 위해 반부패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김진용 교우는 다일공동체 의료진료 봉사활 동을 이끌고 있다. 김 교우는 현재 가리봉동에서 외 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종면, 조승호 교우는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전개하며 공정방송을 위해 힘쓰다 해직되었다. 노교우와 조 교우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 9년만에 복직 했다. 구자덕 교우는 사회사업가로서 모든 이익을 사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권두섭 교우는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 변호사로서 다양한 노동 사건들을 맡아 최근 에는 조영래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종섭 교우는 지반특성평가기술을 개발하여 이달의 과학기 술자의 영광을 얻었다. 이날 자랑스런 친구상을 받은 권두섭 교우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 주는 상이어서 다른 어떤 상보다도 의미가 깊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7-11-15](Hit: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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