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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의 고향 태화관의 추억, 타이허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교가의 이 가사는 늘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지만 특히 ‘타이허’식당의 대표 장치평(경영79) 교우에게는 고대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고향이다.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경영하던 짜장면 집에서 철가방을 들었다고 한다. 방직회사 직원, 상사맨, 음식 사업을 거쳐 다양한 삶의 굴곡을 맛보았던 그는 2006년에 시작한 태양광사업의 발전에 힘입어 2009년에 법인을 설립했고 작년 5월 지금의 식당이 있는 태화빌딩을 준공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돕던 중국집 이름이 ‘태화관’이었고 그 이름의 중국발음이 ‘타이허’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낭만적 향수가 느껴지겠지만, 한국 땅에서 화교라는 신분으로 그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질곡들이 찡하게 와 닿는다. 졸업 후 다른 동기들과 달리 국적 때문에 취업의 제한까지 받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를 품위 있게 지켜주었던 힘은 ‘고려대학교’라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경영대 겸임교수로 출강할 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경영관에 ‘장치평 라운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고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식당의 지하 공간에는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큰 연회장이 있다. 수시로 선후배들이 작고 큰 행사를 열수 있도록 음식은 물론 공간까지 준비해놓은 장 교우의 마음이 넉넉하기 그지없다. 호텔 주방에서 40년을 조리한 경력의 그의 화교 친구가 만들어 내는 전가복은 정말 ‘값지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흔하디흔한 미끈한 해삼이 아니라 힘찬 돌기가 눈에 띠는 진짜 해삼, 완도에서 공수하는 싱싱한 활 전복, 향긋한 송이까지 재료의 신선하고 순수한 맛에 집중하자는 원칙 때문에 어떤 인위적인 간을 느끼기가 어렵다. 상상할 수 있는 재료의 맛 그대로에 가장 ... [2018-02-14](Hit:8)

‘고대법대’는 법대 그 이상이었다
전용호(국문86) 편집국장1920년 6월 25일자로 창간한 《개벽》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종합잡지였다. 천도교청년회에서 발행해 민족주의 성격이 강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논설과 기사도 적극 게재했다. 문학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근대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잡지였다. 1926년 8월 폐간될 때까지 숱한 검열과 탄압을 받았지만, 매호 평균 8000부 판매를 기록할 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컸다. 《 개벽》이 한국 근대사회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인문사회학자들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이 《개벽》의 창간 주역이자, 편집인, 발행인을 맡아 끝까지 활동하며 근대 잡지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가 차상찬(보전법과6회) 교우이다. 교우회보 편집국장이 된 후 그가 교우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반갑고 놀라웠다. 그는 왜 보전 법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 보전 강사로도 활동한 그가《개벽》 편집자로서 숱한 고난의 길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보성전문’과 ‘보전 교우들’에 대해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계기였다.모교의 역사는 ‘고대법학’의 역사와 함께한다. 한국 근대법학의 역사이기도 한‘고대법학’은 이제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된다. 언제나 시대 변화에 앞장서온 모교가 한국 법학의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 기대한다.다만, 차상찬의 예에서 보듯이, ‘고대법학’은 단순한 법조인양성소가 아니었다.법대 교우들은 법률가의 길을 가든 아니든, 우리 역사 굽이굽이에서 법률 실무가 이상의 역할을 담당했다. 몇몇 사람을 거명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고법’ 출신들이 이 나라 역사의 주역이었다.‘법대생’들이 재학시절 담당했던 역할까지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법전원생들이 재학하는 동안 ‘자유, 정의, 진리’의 고대정신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만... [2018-02-14](Hit:10)

고대인의 공간 - 정문 소나무길
SK미래관 공사로 도로통행이 어려워지자 정문에서 학생회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던 소나무숲에 새로운 길 만들어졌다. 이곳에 자리잡은 100그루의 소나무는 2004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이상일(상학57) 고대경제인회장의 기증으로 심어졌다. 오래 전 선배가 심어놓은 사랑의 나무가 후배들에게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글 이정훈 기자 [2018-02-14](Hit:14)
<자명고> 소소한 이야기
김미경(독문83)편집위원방송작가1982년 겨울, 세상물정 모르고 걱정 없이 살던 스무 살의 나는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었다. 주머니 속의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늘 라면이냐 짜장밥이냐를 결정하는 주사위를 던지는 게 일이었지만, 결국 점심을 건너뛰고 당시 학교 앞에 유행처럼 번지던 카페라는 곳에서 좋아하는 팝송을 DJ에게 신청하는 호사를 누리며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금언을 실천하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 흔한 14K 졸업반지도 신청하지 못해 마음속에 바람이 휘잉 지나가던 졸업 즈음, (주)대우에서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여사원 공채라는 시혜를 베풀었다. 구름떼처럼 몰려가 시험을 치른 나와 내 친구들 중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그 경쟁률이 얼마나 어마어마했었는지 가늠이 된다.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뽑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취직용 영어책 보다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훨씬 가까웠던 때이니 ‘고대쯤 나왔는데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자세로 취업에 임했던 것 같다. 그 후, 그냥 놀거나 공부를 더 할 형편이 아니었던 터라 정말 수도 없는 회사에 원서를 보냈었다. 하지만 나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남자 동기들이 추천서를 두 세장씩 들고 골라서 입사하는 걸 부럽게 지켜보면서, 지원서를 보낸 그 많은 회사들의 거절의 편지가 담긴 우체통을 닳도록 열어 보면서 얼마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었는지. 그렇게 몇 달을 기다려 처음으로 입사한 곳은 을지로의 한 작은 출판사였다. 2층 편집실로 향하는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오르던 첫 출근의 설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이제 대학 졸업을 앞 둔 아들은 스물세 살 첫 출근을 하던 당시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영어도 제법... [2018-02-14] (Hit:7)

<자명고>4차산업혁명시대 高大의 변화
정진택(기계공79) 편집위원모교 공과대 학장·기계공학부 교수 무술년 새해를 맞아 모교는 113년, 교우회도 111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됐다. 역사 적으로 우리학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대학, 또는 최초의 근대식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그 긴 역사가 21세기에도 남다른 경쟁력이 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배출됐고 다양한 전공의 적지 않은 교수들이 봉직하고 정년하였다. 배출된 교우들도 사회 각층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조직과 국가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또한 교무처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됐고 그 결과물들이 산출되어 왔다. 그 중에는 당연히 학교를 발전시킨 성공도 있고 가슴 아픈 실패사례도 있다. 그런데그 모든 결과물들이 손실 없이 쌓여져 있고 체계 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록 쌓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무조건 긍정적인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자랑하는 긴 역사가 의미 있는 경쟁력이 되려면 그동안 쌓여 있는 경험과 자료들을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새롭게 시작된 무술년에도 4차산업혁명이란 화두는 지속될 것이다. 작금의 디지털 혁명은 산업 구조는 물론 사회 전반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디지털 혁명 시대를 이끄는 주요 기술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 기술, 얻은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통신기술, 모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 기술,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AI 기술 등 크게 4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즉 모든 기술이 데이터(자료)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어떤 조직이든 의미 있는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어야 이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이제는 생산되는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쌓아놓는 것 뿐만아니라 유의미한 데이터를 능동적으 로 수집하는 ... [2018-01-12](Hit:36)

‘서궐도’ 밑그림으로 복원되는 조선궁궐, 경희궁을 아시나요?
모교 박물관 소장 ‘서궐도안(西闕圖案)’(위 사진). 가로 402㎝, 세로 127㎝ 크기로 1800년대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아래는 서궐도안을 범본으로 동궐도 채색을 참고해 복원한 채색 서궐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 ①은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2002년 그림 속 자리에 복원됐으며, ②는 숭정문, ③은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자리엔 구세군회관이 세워져있어, 복원된 문은 현재 숭정문 앞에 있다.고려대학교박물관을 찾은 단체 관람객에게 대표 유물인 국보 동궐도를 설명하다 보면 종종 “그러면 서궐도 있겠네요? 서궐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친 궁역이 동궐임을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서궐은 잘모른다. 그만큼 우리 기억 속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다.서궐은 경희궁 별칭, 가장 훼손 심한 궁궐흔히 서울을 ‘궁궐의 도시’라고 한다. 경복 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의 5대 궁궐이 대표적이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생소한 궁이 경희궁인데 이를 일명 서궐이라 부른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동궐과 대비된 별칭이기도하다.현재 교보문고 빌딩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대문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고 바로 옆에 약간의 비탈길 도로 위로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이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안 보이는 위치에 있다.우리의 궁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파괴를 당했지만 경희궁만큼 기구한 운명을 지닌 궁도 없을 것이다. 현재 흥화 문, 숭정전 등 7동의 건물이 복원되었지만 궁이라고 할 정도의 모습은 전혀 느낄 수없다. 안내판도 경희궁이 아닌 경희궁지 (慶熙宮址)라 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경희궁은 광해군 때인 1620년에 창건 되었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 으나 1760년 영조 때 경희궁으로 개... [2018-01-12](Hit:39)

홍콩에서 ‘한참’ 가실래요?
홍콩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팔색진미세트(왼쪽 사진). 코차이나 이종석 대표(오른쪽 사진)는 자신의 인생이 모교 입학30주년 행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교우모임에 적극적이다.지난해 7월 31일 홍콩 방송국 TVB의 인기 음식 소개 프로그램 온식반단(搵食飯團) 촬영 후 홍콩 연예인들과의 기념사진.‘홍콩’ 하면 떠오르는 건 쇼핑과 먹거리이다. 전 세계 비즈니스 인구들이 몰려들어 세계화 된 지오래된 홍콩의 까오룽 반도. 그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침사추이에서 바다를 따라 동쪽 으로 이동하다 보면 유명한 샹그 리라 호텔을 만날 수 있다.이번 달에는 바로 그 옆 건물 엠파이어 센터에 자리한 한국 식당 ‘한참’을 방문했다. 요리라면 내로라하는 홍콩에서 순수한 맛으로만 교포보다 현지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 2호점까지 문을연 ‘한참’을 경영하는 이종석(통계85) 교우를 만나보았다.식당에 들어가니 식사 시간이꽤 지난 낮 시간인데도 홍콩 현 지인들과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서울에서도 못 보던 비쥬얼로 개발된 팔색진미세트는 그대로 한국으로 가져가 도입해도 성공을 거둘 것 같은 창의적인 아이템이다.한국에서도 먹고픈 팔색진미세트드라이에이징으로 숙성시킨 고급의 고기 맛, 홍콩에서 한국인 주방장이 가장 많이 일하는 한인 식당이라는 점도 자랑할 만할 뿐더러, ‘한참’ 이라는 브랜드 로고는 캘리그래프계에서 매우 잘 알려진 강병인 서예가의 글씨라고 하니, 작은 곳까지 신경을 쓴 오너의 섬세함이 엿보인다.이종석 교우는 ‘고대를 빼고 나 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고대사랑이 지극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IBM 전무로 일하던 그의 인생은 모교입학 30 주년 행사 전과 후로 나뉜다. 동기 골프회 부회장, 합창단 솔리스트 등 그가 중심이 되어 치러낸 고대의... [2018-01-12](Hit:45)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
최남숙(신방88) 편집위원 EBS수능교육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30대 혹은 40대 혹은 50 대… 혹은 80대에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50대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고 조직에 몸담은 연수로 치자면 20년을 훌쩍 넘겼다. 만 시간 법칙이 라고 했던가. 한 분야에 전문가로 통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치자면 난 ‘조직에서 살아남기’ 노하우에 달인의 경지여야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서툴다.오해를 할까봐 미리 밝히면, 나는 그동안 회사 일이 재미있었다. 보람도 느꼈고 나름 성과도 냈다. 이런 내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압박감에 시달 리고 있다. 새.로.운.시.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내 회사 생활은 축구 경기로 치면 후반 20분쯤 된다. 이때쯤 축구 감독은 선수 교체를 통해 경기 속도나 흐름을 바꾼다. 내 회사 생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직에서 떨려나는 기분이 아닌 설레는 기분으로 회사 문을 나서려면 난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100세 인생이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려면 난도대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인지. 오늘은 플랜A를 생각했다가 내일은 플랜B를 생각하고 도무지 정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플랜A든 플랜B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이런 나날들을 보내던 중 지난 11월 15일간 핀란드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다. 발길 끊긴 듯한 눈쌓인 숲 속에 새 조차 날지 않고 물결마저 일지 않는 겨울 호수. 모두가 정지된 듯한 자연 속에 오직내 숨소리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하는 북국의 대자연에 파묻혀 있었다.귀국해 여행 여운이 남아 있던 차에 핀란드하면 추천하는 <카모메 식당>이라는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보았다. 핀란드에서 주먹밥 파는 일본 여 성들 이야기다.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달째 파리... [2017-12-15](Hit:159)

고산자로 북쪽끝 고려대박물관에서 김정호의 서울지도를 보다
고대박물관 소장 수선전도 목판, 가로 67.5㎝, 세로 82.5㎝(왼쪽). 수선전도 인쇄본(오른쪽,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은 고대박물관 목판 수선전도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목판본 지도로 1864년에 다시 판각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려대학교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커먼 나무판 한 점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언뜻보면 볼품없는 판자처럼 보이지만 이는 보물 제853호로 지정된 수선 전도(首善全圖) 목판이다.‘수선(首善)’이란 말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고교화지행 야(故敎化之行也) 건수선자경사시(建首 善自京師始) 요내급외(繇內及外)” 즉 “옛날 교화를 행할 때에는 모범을 세우되 경사로부터 시작했으니 안에서 밖으로 미친 것이다”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경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 또는 왕이 사는 곳으로 나라의 도읍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나라의 도읍을 수선지지(首善之 地)라 표현했다. 따라서 수선은 본보기가 되는 가장 좋은 땅이란 뜻으로 조선에서도 서울을 일컫는 말로 썼다.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 계는 1394년 개경에서 한양(漢陽)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다음 해인 1395년 한양을 한성(漢城)으로 개칭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기 경성(京城)으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조선시대 수도의 공식 명칭으로 한성이 쓰였다. 조선시대 서울지도의 명칭은 수선전도을 비롯하여 한양도·한성도·경 조도·경성도·도성도 등 약 20종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김정호가 그린 서울지도 목판 정밀한 아름다움 고스란히 살아있어수선전도 목판은 고산자 김정호가 1824년에서 1834년 사이에 제작한 서울지도를 찍던 목판이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 미국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등 국내 외에 인쇄된 수선전도가 널리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우리 박물관 소장 수선 전 도 목 판... [2017-12-15](Hit:71)

덤벼라 소고기! 포쿡이 있다
“ 광 화 문 에 가 면 뭘먹지?” 세상의 모든 맛집이 다 모인 것 같지만, 딱히 한 끼의 만족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시내 한복 판. 이곳에서 맛과 분위기와 또 포만감까지 완벽하게 채워줄 맛집을 찾아냈다. 더욱이 고대 교우가 운영한다니 이 아니 반가울까. 그 세렌디피티는 디 타워 3층에 자리한 ‘포 쿡’. 알고 보니 광화문 점 한 곳만이 아니라 상암, 왕십리, 건대 등등 능력이 되어야 살아남는 맛 거리에 직영점들이 이미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내공있는 식당이다.이 식당의 주인 추동윤(사회92) 교우를 만나보았다. 산뜻한 외모와 착한 얼굴로 겸손이 그의 컨셉인 듯 자기 자랑을 절제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일 뿐입 니다.”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취재가 길어질수록 음식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뭐라 말하지 않아도 배어나온다.돼 지 고 기 를 직 접 가 공 하 는 C K (Central Kitchen)을 통한 엄격한 재료에 대한 기준, 그리고 매번 압력밥 솥에 지은 새 밥을 서빙하는 한 끼 밥에 대한 철학. 영업시간 내내 주방 안에 달구어져 있는 숯 그릴을 이용한 슬로우 푸드 개념으로 만들어 내는 소고기보다 더 맛있는 돼지고기 스테이 크, 그리고 함부로 새 메뉴를 넣기 보다는 늘 있는 메뉴에 내실을 기하느라 고민하는 자세까지 ‘잘되는 맛집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증명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이것저것 성공 비법을 물어봐도 계속 배시시 웃으며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오히려 사업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과 스포츠 얘기에 눈이 더 반짝인다. 아마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음식이라 더 따뜻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엔젤링 가득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여 남다른 비쥬얼만으로도 입에서 군침이 ... [2017-12-15](Hi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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